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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치앙마이에서 생긴 일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툭툭에서 디제잉이라니 낭만 한도 초과


치앙마이 여행 중 입원을 했다.

도착한 날 밤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직빵으로 맞으며 잤던 탓. 다음날 무더위에 만 7 천보를 걸으며 땀을 흘리고 에어컨 바람 아래 뭉친 근육을 풀어주러 마사지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쿨링 패치를 이마에 붙이고 잤으나 효과가 없어 얼음을 대고 누워있었다. 약국에서 산 약을 먹고 조금 나아져 ‘역시 회복이 빠르다’라고 생각하며 마라꼬치와 태국판 신라면을 먹고 쉬었다. 맥주도 마시고 싶었지만, 빠른 회복을 위해 참았다.

잘 자긴 했으나 다음날 아침,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숙소 근처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갔는데 거의 못 먹었다. 나 태국음식 좋아하는데… 마치 눈물이 흐르듯 식은땀만 계속 흐른다.

친구들이 여행자보험 했으니 병원을 가보라고 한다. 낮 12시쯤 병원에 도착했다. 동남아를 너무 열악한 환경으로만 생각했는데, 병원이 아주 깨끗하고 컸다. 이것저것 검사를 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난다. 목 상태를 확인해 보자며 어디서 손전등을 가져오신다. 아직 도구는 좀 부족한가 보다.

목에 염증이 심하다고 하시며 항생제를 처방해 주신다. 우리나라에는 링거를 맞으면 직빵이니, 수액은 안되냐고 물어본다. 줄 수 있는 건 항생제나 수액뿐인데, 수액은 물을 많이 마시면 되고, 항생제는 약으로 먹으면 되니까 굳이 맞지 않아도 된다고 하신다. ‘맞는 말이네~내 돈을 아껴주는구나!’ 하고 처방받은 약을 들고 예약해 둔 네일숍으로 향한다.

우선 아침을 적게라도 먹었으니 약을 먹었다. 친구들이 그래도 병원 다녀오더니 얼굴에 생기가 좀 도는 것 같다고 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반짝반짝 화려하게 네일과 패디를 받았다. 그런데 네일숍에도 에어컨이 빵빵하다. 끝나고 나니 컨디션이 조금 떨어져 먼저 집으로 가겠다고 하고 숙소에 돌아와 좀 잤다.

그런데 갑자기 열이 펄펄 끓어 잠에서 깼다. 몸은 추운데 열이 심하다. 일어나 물을 좀 마시는데 속이 울렁거려 변기를 붙잡고 토한다. 먹은 게 없어 나오는 것도 물과 위액뿐.

밖에서는 새가 지저귀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지만 나는 계속 변기를 붙잡고 토한다. 그러다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는데, 널어둔 빨래가 생각나 토하다 말고 뛰어가서 다 걷어왔다. 물도 못 마시고 식은땀이 흘러 도저히 안될 것 같아 다시 병원으로 향한다.

“낮에 왔었는데요, 약을 먹었는데도 열이 너무 나고 계속 토를 해요. 도와주세요…”

간호사들이 불쌍하게 쳐다보며 빨간 비닐봉지와 휴지를 가져다준다. 혹시 토하고 싶을까 봐. 이번에는 열을 재니 38.4도가 나온다. 심박도 100이 넘고 혈압도 130이 넘게 치솟았다. 그들은 봤을까 오전과는 다르게 화려해진 내 손톱을. 갑자기 조금 민망했다.

의사 선생님이 약을 먹을 수가 없으니 하루 이틀 입원해서 주사로 항생제를 맞아야 한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틀은 안 돼요, 하룻밤만 자게 해 주세요”. 아까운 치앙마이 일주일 여행. 병원에서만 보내기엔 너무 아까웠다. 일단 상황을 보자고 하셨다. 친구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기다리고 있으니 나를 휠체어에 태우고 10층 입원실로 옮겨 주셨다.

그런데 병실이 VIP 병실 같다. 넓은 1인실에 나갈 수는 없지만 발코니가 있고, 마운틴 뷰, 커다란 보호자 소파, 테이블과 의자, 냉장고, 싱크대 등 없는 게 없다. 여행자 보험을 들긴 했지만 비용이 엄청나게 나오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이다.

복도 끝에서 한국말이 들려온다. 친구들이 왔다. 괜히 더 반갑고 미안하고 고맙다. 맥주 한잔하고 마사지받고 나왔더니 내가 입원했더란다. 여기가 넓고 쾌적하니 여기서 저녁을 시켜 먹으라고 했다. 치앙마이에 와서 즐겁게 놀지 못하고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상황이 너무 어이없고 평생 놀림거리가 생겼지만, 이것도 추억이라고 떠들어본다. 제대로 로컬 체험 해본다며 긍정회로를 돌려주는 친구들 :)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며 수액 맞고 쉬니까 좀 살 것 같다. 친구들은 태국음식을 시켜 먹으며 맥주 한잔하고, 나는 같이 주문해 준 태국식 죽, 콘지와 코코넛 워터를 조금 먹어본다. 이렇게 같이 있으니 강원도 펜션에 온 것 같기도 하다. 밥을 다 먹고 정리를 하니 괜히 아쉬워 좀 더 있다 가라고 붙잡아 본다. 오늘 한 친구가 더 오기에 두 명은 숙소로 돌아가고 한 명은 여기서 같이 자주기로 했다. 혼자였으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같이 있으니 몸도 더 빠르게 회복하는 느낌이다.

다음날 아침,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다. 중간중간 간호사분들이 와서 열과 혈압 체크를 했는데, 이제 열도 없고 혈압 심박 모두 정상범위로 돌아왔다. 아침으로 야채수프를 먹고 있으니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물 잘 마시고 있나 확인하게 눈앞에서 물을 마셔보라고 하신다. 물 한 컵 꿀떡 마시는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드렸다. 목 상태를 확인해 보신다. 다시 나타난 대왕 손전등. 염증도 많이 가라앉았다고 항생제 한번 더 맞고 오후에 퇴원해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야호!!!

이제는 새로운 마음으로 치앙마이에 막 도착한 것처럼 구경해야겠다. 치앙마이를 떠나기 전에 디제잉을 한번 해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남은 시간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교훈: 여행자보험은 꼭 들자. 아프지 말자. 친구들과 함께함에 감사하자.


치앙마이에서 받은 네일아트



[요마카세] 금요일 : 오늘밤 나가 놀고 싶어지는걸?

작가 : DJ Jinnychoo

소개 : 듣다 보니 틀고 있고 틀다 보니 어느새 디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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