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혹시 평양냉면을 좋아하는가? 평양냉면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걸레 빤 물 왜 먹냐’며 혹평을 퍼붓지만,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집집마다 다른 그 맛을 즐기기도 전에 여름이 가 버리는 것을 아쉬워하곤 한다. 평양냉면도 집집마다 먹어보면 맛이 다 다르다. 어떤 집은 고춧가루와 파 다대기를 뿌려 간간하고 자극적으로(그래봤자지만...) 풀어내는가 하면 어떤 집은 육향이 아주 진한 국물로 별다른 고명 없이 완전히 기강을 잡아버리기도 한다. 비슷한 예로는 콩국수가 있다. 콩국수는 본질적으로 맛에서는 튈 만한 구석이 없는 심심한 음식이다. 콩 간 물에 국수를 담갔을 뿐인 그 단순한 음식이 기묘하게 집집마다 맛이 다 다르고 매력이 다 다르다.
(글을 시작하기가 너무 힘드네요. 한번 시작하면 곧잘 주르륵 쓰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서론이 써지지 않아서 괴로워하다가 그냥 먹고 싶은 콩국수 이야기로 시작해 봤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곳도 진주회관 콩국수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거의 패키지 투어 상품이랄까요..)
갑자기 왜 콩국수니, 평양냉면이니 심심한 음식 이야기를 하냐면, 전시도 이런 슴슴국수들처럼 집집마다(미술관마다) 다른 맛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하하)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미술관마다 큐레이션의 방향성이나 특징이 다르다. 조금 더 대중적이고 ‘순한 맛’으로 모두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는 곳이 있고, 정말 ‘아방가르드’의 끝을 달리고 있어 보고 나와도 ‘내가 뭘 본 거지?’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곳도 있다. 하지만 (평양냉면처럼) 뭔가 이해는 당장 가지 않지만, 묘한 매력이 있어 다음에 보러 왔을 때에는 다 이해해 버리고만 싶은 오기가 생기게 하는 그런 곳들도 있다.
슴슴국수들이 당기는 계절이 다가온 만큼, 초여름 특집으로(?) 집집마다 다른 맛으로 말아주는 전시의 맛을 간단히 서술해 보려고 한다. 후술 될 내용은 오직 개인적인 관점에서 서술되었으며 상당한 편애가 묻어있을 수 있고 전혀 논리적이지 못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그래도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들은 최대한 하려고 노력했으니 재밌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가장 먼저 국립현대미술관(이하 MMCA)의 본관인 서울관과 두 분관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국공립 미술관 중 가장 동시대적이면서도 대중적인 현대미술 큐레이션을 진행한다. ‘동시대적’이며 ‘대중적인’이라는 말에는 ‘지금 이 시대에 미술이 사회에 던져야 하는 질문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가장 빠르게 답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MMCA 서울관에서 매년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 전시의 선발 이유나, 주제 기획전의 서문을 읽어보면 현재 미술계에서 어떤 담론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지, MMCA가 국공립 미술관으로서 어떤 의제에 답하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최근의 기획전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2025)>은 장애를 가진 신체와 비장애 신체가 함께 공존하는 방법에 관해 묻고자 하고,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2024)>는 사물의 물성 자체에서 시작해 물질과 비물질 및 생물과 비생물의 경계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접속하는 몸(2024)>은 ‘주류’인 서구 남성적 시선에서 벗어나 아시아라는 지리적 특성과 여성의 신체성을 교차시킬 때 드러나는 다층적 이데올로기에 주목하고자 하는 기획이며, <게임사회(2023)>는 팬데믹으로 인해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 새로운 일상이 보편화되면서, 가장 가까운 사변적 현상으로서 게임의 역할에 주목하고자 하는 전시이다.
<프로젝트 해시태그> 기획을 통해 매년 젊은 아티스트들이 가장 트렌디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한다. 유일한 공모 프로그램으로, 장르와 매체를 가리지 않고 매년 두 팀을 선발하여 전시를 진행한다. 실제로 작가들의 연령대도 매우 낮은 편이며, 그만큼 일상적인 의제를 쉽게 혹은 ‘공격적’으로 풀어내는 신선한 작업을 볼 수 있다. 기술 친화적이거나 밈(meme)적인 즐거움도 쉽게 발견할 수 있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는 기획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매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시를 아카이브 하는데, 올해는 무려 보드게임이었다! 전시와 연계 워크숍까지 총망라한 보드게임으로, 생각보다 쉽게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꼭 해보세요. 아주 재밌습니다.)
층고가 높고 웅장한 건물을 십분 활용하는(+ ‘국립’의 기개가 느껴지는..) 대규모 전시도 자주 연다. 요즘 가장 ‘hype’된 전시 <론 뮤익(2025)> 전의 경우 5 전시실의 높은 층고를 활용해 해골을 산더미처럼 높이 쌓아 비현실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그 밖에도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2022)>처럼 지금 가장 전 세계적으로 ‘핫’한 작가의 개인전을 대규모로 열어 국내에 화끈하게 소개하는 등, 규모 면에서 압도적이면서도 놓치면 아까운 트렌디한 전시를 잘 가져오는 편이다. 감히 말하건대, MMCA 서울관 전시만 놓치지 않고 다 보더라도 어느 정도 미술계 트렌드를 엿볼 수 있다고까지 말해보고 싶다.
덕수궁관은 가장 ‘한국적인’ 작품에 집중한 큐레이션을 선보인다. 주로 근현대 평면 회화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의 거장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를 자주 연다. (변월룡, 이중섭, 유영국, 박래현, 문신, 박수근, 장욱진 등) 고즈넉한 궁 사이에 자리 잡은 고전적인(지어진 당대에는 혁신적이었지만 지금 보면 고전적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외관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한국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작품이라면 자수 등의 공예 작품전(<한국 근현대 자수(2024)>)이나 조각전(<문신:우주를 향하여(2022)>)을 선보이기도 한다. 현대미술처럼 큰 고민이나 질문 없이도 그저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부모님 혹은 이따금 미술관을 가는 것을 즐기는 친구들과 부담 없이 가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MMCA도 분관마다 역할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청주관은 그중에서도 ‘수장고’의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다. 실제로 미술품 보존과학 연구나 아카이빙 연구가 가장 활발한 곳이기도 하다. ‘보이는 수장고’라는 콘셉트로, 정말 미술관의 창고 한구석을 투명하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어 MMCA의 보물창고에 들어오는 기분도 든다.
그리고 가끔, 서울에서 놓친 전시 작품을 청주에서 다시 마주할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실제로 청주관에서는 MMCA의 소장품으로 여러 가지 기획 전시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에서 대규모로 진행되었던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2022)> 에서 공개된 작품 일부가 청주에서 진행된 소장품 전 <예측 (불) 가능한 세계(2024)>에서 다시 소개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공립미술관끼리 소장품을 교환하고 대여해 주는 시스템이 있다고 한다.)
MMCA만큼 대단한 전시를 기획하는 또 다른 공립 미술관을 꼽자면 서울시립미술관(이하 SeMA)을 꼽을 수 있겠다. SeMA 역시 깜짝 놀랄 만큼의 큰 전시(<미래긍정:노먼 포스터, 포스터+파트너스(2024)>, <에드워드 호퍼:길 위에서(2023)>, <장-미셸 오토니엘:정원과 정원(2022)>, <데이비드 호크니(2019)> 등)를 덜컥 데리고 와서 땡볕 날씨의 덕수궁 돌담길에 기나긴 입장 줄을 만들어버리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이 낳은 거장인 천경자 작가의 작품이 다수 SeMA 서소문본관에 소장되어 있다. 기부받은 작품을 전시한 천경자 작가 상설전시관이 있으며, 그 연장선으로서 한국의 현대 여성 작가들을 발굴하는 기획전도 꾸준히 열고 있다.
SeMA 서소문본관의 특징을 무어라 결정지어보고 싶었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Versatile’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미디어 작품을 보여주다가, 또 한국의 거장을 조명하는 전시(김성환, 박광진, 권진규, 이불 등)도 열었다가, 해외 거장 전시를 또 데려왔다가,… 게다가 꾸준히 시민 참여 교육프로그램이나 연구 활동도 하고 있다. 어쩌면 가장 ‘공공미술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일단 미술관에 들어서면 다양한 미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마치.. 아주 손맛이 좋은데 메뉴도 다양하고 가성비까지 좋아서 매일 가도 실망할 일은 절대 없어서 회사 옆에 있으면 그저 마음이 든든한 훌륭한 한식뷔페 같다고 해야 하나? (앞에서 대단한 곳이라고 추켜세워놓고 한식뷔페라고 끝맺으니 좀 민망하다.)
SeMA 북서울(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의 전시가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현실’을 명확히 바라보기 위해 다른 시간 개념을 가지고 와 설명을 덧붙이는 주제가 많았던 것 같다.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가장 ‘시간성’을 많이 건드리고 있다는 (아주 개인적인) 인상이 있다. 여태까지 인상 깊게 봤던 전시를 돌이켜봤을 때 작가의 사변적인 상상력이 두드러진 작업이 많았다고 해야 할까.
현재의 질문을 미래 혹은 상상의 세계로 던져, 인간-기계 혹은 현실-가상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거나 (<영혼은 없고 껍데기만(2024)>) 사변적 세계관(<소원을 말해봐(2024)>,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2023)>, <SF 2021:판타지 오디세이(2021)>) 안에서 질문을 키워나가는 방식일 때도 있었다. 반대로 과거에 대한 if..적 상상력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치유하고 돌보는 방식(<2024 타이틀 매치: 홍이현숙vs. 염지혜 - 돌과 밤(2024)>)이거나, 개인의 개별적인 경험을 과거부터 조명해 대안적인 현실 혹은 미래를 상상하는(<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2024)>) 전시를 떠올려 보면 그렇다. 다시 말해, 현재를 새로이 바라보기 위해 그 어떤 시간이라도 차용하고자 하는 태도를 슬쩍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나라~,라는 가사의 동요를 아는가? 일민미술관을 떠올리면 그 도깨비나라 동요가 재생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난해하지만 매력적인’ 전시를 기획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꼭 한 번에 이해하고 싶다. 국공립 미술관만큼 친절하게 작품별로 설명을 주지는 않지만, 곱씹어 읽을수록 글맛이 배어나는 전시 서문으로 관람객의 기강을 잡아버리는 곳이다. 실제로 소개하는 작가나 작품들도 매우 트렌디하다. 요즘 가장 활발히 활동하며 많은 곳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을 신선한 주제로 묶어 소개하거나, 이미 꾸준히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들의 최신작을 공개하기도 한다.
전시 내용은 꽤 전위적이거나 실험적인 편이다. 한 층을 통으로 쓰는 거대한 규모의 회화 작품이나 설치 작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볼 때에는, 내가 이해한 게 과연 맞는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는지.. 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작품 비주얼 자체는 상당히 ‘힙한’ 경우도 많아, 눈에 즐겁게 담다 보면 가끔은 이해에 다다르는 ‘돈오’가 오기도 한다. 그럴 땐 정말 짜릿하다.
개인적으로는 전시 그래픽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미술관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매번 일민에서 새로운 전시가 열린다는 메일이 올 때마다, 이번 그래픽은 얼마나 또 잘 뽑아냈을지, 어떤 멋진 스튜디오와 협업했을지 궁금해서 얼른 보러 가게 된다. 일민에서 하는 전시는 그래서 웬만하면 끝까지 미루지는 않고 바로바로 찾아가서 보는 편이다.
아트선재는 뭐랄까, ‘갓생’을 사는 부지런한 모범생 같은 이미지가 있다. 아트선재는 정말 성실하게 꾸준히 전시를 연다. 거의 쉴 틈 없이 전시를 돌린다. 전시관 규모가 큰 편도 아닌데, 동시에 두세 개의 전시를 할 때도 있다. 심지어는 전시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웨비나 형태로 전시 관련 워크숍을 하기도 한다.(실제로 <서도호:스페큘레이션스(2024)> 전시 전에는 전시 주제와 관련한 책을 선정하여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워크숍을 진행했었다.) 그런데 전시를 통해 소개하는 작가나 작품도 매우 트렌디하다.
여기서 ‘트렌디’란 ‘유행’ 의미라기보다는, 현재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의제에 맞는 작가’를 곧잘 데리고 오는 느낌이다. (2021년도에 MMCA에서 현대차 지원 작가로 선발된 문경원 & 전준호 듀오의 개인전을 2022년에 개최하거나, 이번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발탁된 호 추 니엘의 개인전을 이미 2024년에 기획했다거나.. 뭔가 아트선재에서 알게 된 작가를 어디선가 다시 보게 되거나 그 반대인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공간을 활용해 동선을 유도하고 작품을 배치하는 것이 매우 섬세하다는 인상이 있다. 게다가 큐레토리얼 노트나 작품 설명까지 너무 어렵지 않고 알차게 잘 적어준다. 주제부터 작품 배치, 큐레토리얼 노트까지 그야말로 흠잡을 곳 없는 모범생에 가깝다.
리움의 기획전은 그야말로 비싸지만,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해내는 훌륭한 파인다이닝 한 끼 같다. 리움은 일단 티켓이 비싸기 때문에 ‘돈 낸 만큼 무한으로 즐기고 오겠다’고 다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갈 때마다 ‘리움만 한 곳이 없다’고 느낀다. 일단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그 아름다운 내부 디자인에 넋을 한번 잃게 된다. 자동으로 위치를 인식해 설명을 알아서 읊어주는 오디오가이드(삼성의 위엄 같은 것이 느껴진다)도 빼놓을 수 없다. 더없이 깔끔한 UI와 훌륭한 사용성은 전시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해 주는 일등 공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파인다이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음식 맛이 아닐까? 다른 것도 훌륭하지만 리움이 가장 잘하는 것은 전시 그 자체이다. 가장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의 작품을 대규모로 들여와 넓은 공간에 무심한 듯 툭툭 얹어 보여주는 그 쿨한 태도. 같은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더라도 층별로 다른 연출을 시도하고, 공간의 개방도에 따라 스케일이 다른 작품을 다채롭게 배치해 구분이 없는 공간도 마치 구분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연출한다. 익숙한 것 같은 재료에서 가장 최적의 특별한 맛을 뽑아내는 파인다이닝처럼, 리움의 기획은 어떤 작가나 작품을 가장 최적의 방식으로 특별하게 경험하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난해하고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작업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과거에는 인사미술공간이 그런 역할을 했겠지만, 최근 몇 년간의 전시 경험을 돌이켜 봤을 때 “?” 상태로 나온 적이 가장 많았던 곳이다. 말하자면, ‘실험적인 예술’을 보러 갔는데, 내가 실험 대상이 된 그런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반대로 말하면 가장 ‘뇌 빼고’ 즐겁게 볼 수 있어서 좋을 때도 있다. 하하 저거 웃기다, 하하 저거 예쁘다 하면서. 아까 일민미술관과 비슷한데, 그렇게 하염없이 보다 보면 갑자기 ‘돈오’ 상태가 되면서 이해가 되기도 한다. 혹은 다른 작품을 이해하면서 (비슷한 주제의) 다른 작품을 연이어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언제나 쉽지만은 않다.
가장 역세권이라 위치로는 더없이 친절하지만, 전시 내용으로는 약간 덜 친절한 아르코미술관. 앞으로는 조금만 더 친절하게 말해줘야 한다~! (동물농장 톤으로)
피크닉이야말로 가장 ‘트렌디’한 미술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서 ‘트렌디’는 ‘유행’, 혹은 ‘유행에 민감하며 세련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대체로 좋아하는 것’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런데 또 너무 유행에 목숨을 거는 이미지는 아니고, 마치 유행을 신경 쓰지는 않지만,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곧잘 유행이 되어버리고 마는, LEMAIRE를 입고, 알이 작은 갈색 빈티지 복각 뿔테 안경을 끼고, 한남동에 위치한 작은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그런 이미지의 사람이 좋아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너무 뻔한가?) 제목은 고상하게 적어 놨는데, 너무 눈앞에 그려지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설명하는 데에 점잖지 못하게 많은 말을 적어 버렸다.
아무튼, 피크닉은 그런 이미지가 있다. 실제로 정말 ‘잘 닦인’ 사진전이 자주 열린다. 색감이 화려하고 피사체가 쏟아지도록 생생하게 담기는 그런 사진이라기보다는, 아릿하게 빛을 뿜어내는 새벽녘의 하늘 같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정지된 시간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자꾸 들여다보며 상상하게 되는 그런 사진들 말이다.
아무튼 피크닉 전시도 웬만하면 챙겨보는 편이다. 실제로 피크닉 전시는 실망했던 적이 아직까지는 없었다.
강남의 오아시스 같은 공간, 송은. 송은은 로비에서부터 연결된 지하의 어둡고 깊은 공간을 탁월하게 사용하는 곳이다. 전시는 언제나 1층 로비에서 층을 올라가며 시작하지만, 클라이맥스이자 마무리는 어김없이 지하층이다. 자연광이 들어와 깔끔하고 밝게 빛나는 지상 공간과 큰 대비를 주는 것은 물론, 나선형으로 휘감기며 떨어지는 공간은 단순한 층의 구분을 넘어 ‘낙하’, 혹은 ‘추락’이라는 극적인 이미지까지 자아낸다.
송은에서 하는 전시도 거의 빼놓지 않고 보러 가는 편이지만, 언제나 맨 지하층에서 어떤 연출을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정말 기대하면서 가게 된다. 한 층 한 층 상승하며 쌓아 간 전시 경험이 어떻게 지하에서 반전될지 직접 가기 전까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공간의 대비를 통해 기-승-전-결이라는 스토리텔링을 훌륭하게 이끌어가는 연출에는 반복이라는 것이 없다. 경험할 때마다 지루할 틈이 없다.
현대카드 스토리지는 정말 몇 년 전부터 놓치지 않고 꾸준히 보러 가는 곳이다. 일단 현대카드 혜택이 쏠쏠한 것도 있지만, 현대카드의 큐레이션이 정말 트렌디하기 때문이다. 미술에 대해 잘 몰랐을 때 전시로 접한 작가가 알고 보니 세계적인 거장이었다거나 하는 경험이 제법 많은데, 현대카드를 통해 알게 된 작가들이 유독 그랬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현대카드 특유의 센스 있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현대카드가 소개하는 작가들 역시 비슷한 결을 지니고 있다고 느낀다.
아래는 비교적 관람 경험이 적어(아무래도 한 달에 기본 두세 번씩은 가는 MMCA나 SeMA에 비해서는 경험의 수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다.) 짧고 간결하게만 적어 보는 곳들이다.
그야말로 자본의 맛이 느껴진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온통 새것뿐인 미술관인 데다가, 미디어 전시를 위한 설비가 잘 갖추어져 대중적이면서도 럭셔리한 인상의 기획을 잘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미디어 전시가 ‘쪼들린다’는 편견이 있었다. 현란한 시각적 효과가 지나간 뒤의 공허함을 즐기지 않았기 때문인데, 푸투라 서울에서는 공간 연출을 비롯한 다양한 장치들을 잘 활용해 시각적인 자극만으로도 기대했던 것보다 꽤 훌륭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그야말로 자본의 맛이 느껴진다(2). 공간은 작지만, 항상 꽤 알차게 전시 공간을 꾸며놓는 느낌이다. 갤러리인 만큼 작가 한 명의 최근작을 소개하는 개인전 형태의 전시를 여는데, 작은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포스터 그래픽이나 리플릿의 퀄리티가 상당히 훌륭하다. 럭셔리한 공간에 정갈하게 놓인 전시 한 점. 마치 잘 차려진 애프터눈 티 세트 같다.
거장에게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반려자를 잘 만나는 것 또한 작품활동의 일부가 아닐까? 오직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모시기 위해 지어진 곳인 만큼 공간부터 삭면추상 속으로 들어오는 것만 같다. 자연광이 밝혀주는 정방형의 공간을, 계단을 따라 빙글빙글 돌다 보면 그가 어떤 세상을 보고 그리고 꿈꾸었는지 알게 될 것만 같다. 이 공간 안에서 그의 세계를 마주하며 그 세계 속의 한 점으로 섞이는 것 같은 환상을 보게 하는 게 이 미술관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탈영역우정국 전시는 마치 매년 놓치지 않고 읽어보는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이하 ‘젊작상’) 같다. 사실 탈영역우정국을 많이 가 본 건 아니지만, 가장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면서도 동시대적인 ‘젊은’ 작업들을 많이 소개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간의 목적 자체가 대안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작업들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그런 성격의 전시가 열리는 것도 맞다. 하지만 내가 관심 있게 보는 것은 이곳에서 논의되는 ‘의제’ 그 자체이다. 이곳에서의 논의가 다른 곳에서 어떤 식으로 더 재생산되고 발전될지, 여기서 전시했던 작가가 몇 년 뒤 얼마나 더 성장한 작업을 보여줄지 궁금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치 젊작상 출신 작가들이 몇 년 뒤 이상문학상도 타고 김수영문학상도 타고 하는 것을 보며 혼자 내적 친밀감 쌓으며 흐뭇해하는 것과 같달까.
이처럼 미술관은 저마다의 방향성이나 콘셉트를 가지고 그에 맞는 기획을 하기도, 혹은 그들이 여태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기도 한다. 매주 미술관에 가지만 절대 질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이다. 마치 여름 내내 평양냉면을 먹더라도 질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글을 적으며 아쉬웠던 것은, 아무래도 가 본 미술관을 위주로 가기 때문에 아직도 가 보지 못했거나 무어라 길게 적기 어려울 만큼 경험이 적은 공간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가보지 못한 작은 갤러리들도 더 열심히 다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녀도 아직도 못 가본 곳이 너무 많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여기 적지 못한 수많은 작은 갤러리나 작은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데, 더 많은 경험을 쌓아 그 공간에 대해 언젠가 또 새로이 신나게 떠들어보고 싶다.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7월 20일까지
<기울인 몸들:•••> 전시를 추천합니다. 이 전시는 ‘마주침’, ‘소통’, ‘공존’, ‘연대’를 다룹니다. 장애, 혹은 장애로 규정되지 않는 특수성을 가진 어떤 신체, 혹은 비장애라고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어떤 신체, 혹은 앞서 설명된 그 어떤 범주에도 온전히 들어간다고 볼 수 없는 스펙트럼상의 어떠한 신체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전시입니다.
장애를 가진 몸은 사회적으로 배려를 받아야 하고, 우리는 그들이 비장애인과 동일한 수준의 삶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신체는 ‘아픈’, 혹은 ‘약한’ 것일까요? 장애학에 따르면 비장애인 역시 장애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언제나 있는 ‘잠재적 장애인’이며, 평소에는 기능에 별 이상이 없는 신체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외상 혹은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일시적으로 몸을 기구에 의지해야 하거나 기능이 저하되는 상황 역시 ‘일시적 장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전시와 함께 김초엽 작가와 김원영 변호사가 함께 쓴 책 ⌜사이보그가 되다⌟를 읽기를 권합니다. (김원영 변호사는 작가 및 안무가, 배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기울인 몸들…> 전시에도 참여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두 작가가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들의 신체를 ‘보조’하는 의료 기기와 함께 살아가는 삶에 관해 이야기하며, 모두를 위한 기술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묻는 책입니다. 여기서 ‘사이보그’란 기기로 신체 일부를 대체하거나 연장하는 자신들의 신체가 ‘사이보그’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마치 대단한 과학적 성취인 것처럼 그리는 미디어, 여전히 ‘열등한’ 혹은 ‘아름다울 수 있는 신체’라는 이분법 속에 갇힌 장애를 가진 신체 등. 우리의 보편적인 생각이 얼마나 편협하고 오만한 것인지를 꼬집는 것만 같습니다.
진정으로 ‘모두를 위한 삶’이란 어떻게 그려나갈 수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모두’란 과연 누구까지 포함되며, 우리도 모르게 ‘우리’에서 배제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규모는 크지 않지만 끊임없이 우리의 삶 혹은 우리를 둘러싼 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전시 <기울인 몸들…>을 추천합니다.
마주 앉은 둘의 신체는 맞잡은 손으로 연결됩니다. 함께 쌓아 온 시간과 관계 앞에서는 그 어떤 신체적 제약도 조건도 의미를 잃습니다. 우리가 타인을 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손을 마주 잡고,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뿐입니다. 이해는 나중의 일입니다. 서로의 신체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그것이 개별적이며 특수한 것임을 알기, 그것이 우리가 더 서로를 알아가고 헤아리며 보듬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요마카세] 토요일 : 전시 왜 봐?
작가 : GARDEN
소개 : 주말마다(사실 평일에도..) 전시를 보러 다니는 직장인의 전시 보는 이야기입니다. ‘전시 왜 봐?’라는 질문에 짧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상상해도, 무엇이 펼쳐져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들을 글로 풀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