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물건 모으는 걸 좋아했다. 학교에 들아가기 전엔 코디 스티커를 캐릭터 별로 모은다. 앨범에 차곡차곡 모으니 책 한 권 두께가 된다. 초등학교 땐 걸스카우트 미션 패치를 모은다. 미션을 할 때마다 엄지손톱만 한 패치를 준다. 바느질 미션을 하면 바느질 모양의 패치, 곤충을 관찰하는 미션엔 곤충 모양의 패치를 주는 식이다. 30개가 넘는 패치를 모두 모은 학생은 전교에 나밖에 없었다. 어깨에서 옆구리를 감싸는 긴 띠지에 빈틈없이 패치를 달고 졸업한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쓴 일기장,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 고등학생 때 본 모의고사 시험지, 수백 장의 CD 모으는 물건만 달라졌을 뿐 일평생을 모으고 또 모은다.
대학교 때 읽은 책 덕에 비우는 연습을 한다.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집안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두면 운의 흐름을 막는다는 것이 요지였다. 기운이 들어오는 현관이나 창문이 큰 공간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무조건 치워야 한다고 했다.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던 때라 당장 책에서 시키는 대로 한다. 물건을 버리는데도 기술이 있었다. 똑같은 물건은 버려라. 언젠가 쓰겠지라는 마음으로 모은 물건은 버려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버려라 등 책이 실용적인 방법도 안내해 준다. 방에 쌓아두고 절대 다시 보지 않는 모의고사 시험지, 참고서, 필기 노트, 교과서부터 버린다. 내 방을 비우니 거실과 베란다가 보인다. 우리 집 베란다는 물건으로 꽉 차 걸어 다니는 게 불가할 정도였다. 엄마가 결혼 때 혼수로 해온 그릇장이 제일 큰 자리를 차지했다. 오래된 그릇장은 나와 나이가 같았다. 20명이 한꺼번에 몰려와 30첩 반상을 차려도 남을 그릇 양이다. 그 시절 그릇은 어떤 의미였을까. 엄마도 나 못지않게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어찌어찌 설득해 베란다부터 비운다. 이때 우리 가족은 일주일 동안 거의 1톤의 쓰레기를 집 밖으로 내보낸다.
버리기만 했지 유지할 줄은 모른다. 금세 새로운 물건으로 다시 꽉 찬다. 물건을 습관처럼 산다. 정말 필요한지 고심하지 않고 갖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산다. 몇 날 며칠을 버리느라 고생했는데 사모으는 건 한순간이다. 몇 번의 이사를 거듭하면서 짐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가 가진 물건을 나열할 순 없다.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다 알지 못한다. 이미 있는 물건을 또 산다. 집 좀 치워야지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할 일은 쌓이고 머리는 아프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조차 미룬다. 꼭 해야 하는 출근과 살기 위한 운동 한 시간만 한다. 소파 위에 옷 두지 말고 걸어 놓기와 같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루틴은 쉽게 망가진다. 널브러진 집이 내 상태 같다. 물건은 제 자리를 잃고 가야 할 길이 먼 나는 멈춘다. 이렇게 고여있을 순 없다. 잘 살고 싶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한다. 매일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을 치워야 한다. 집부터 치우자. 집을 치우려니 버겁다. 방을 정리하자니 귀찮다. 서랍만 정리하자니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래 저래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차고 넘친다. 정리의 시작은 비우기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버리자. 우선 하루에 1개씩 버려보자. 핵심은 매일이다. 매일 비우는 물건을 찍고 기록해 보자.
[요마카세] 월요일 : 비워야 산다
작가: 흐름
소개 : 가볍게 살고 싶다. 뼈마저 비어있는 새처럼. 하루에 한 개씩 물건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매일 물건과 이별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