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 원하는 방향대로 가고 있는가?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16주 차의 내용인 “여전히 노력과 집착 사이를 헤매며: 주어진 기회를 잡을 수 있는가?”에서 N잡러가 되는 과정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얼떨결에 다가온 시험을 정신없이 치렀고, 선택에 순간 앞에 이것이 노력인가 집착인가 생각할 틈 없이 나는 나아가야 했다.
그러나 N잡러가 된 나는 여전히 어느 길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나는 꿈이 있다. 드넓은 마당에 하얀 주택이 나의 요가원이자, 집이자, 연구소이자, 안식처였으면 한다. 거기서 사람들이 오고 가며 떠들고, 수련하고, 명상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이런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어쨌든 시작된 월/수 요가강사 화/목/금 직장인 주말 과외선생님의 역할분담은 아주 적절했다. 지칠 때면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기에 모든 일이 질리지도 않고 아주 흥미로웠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계약직인 나는 계약 연장이 될까? 요가강사 타임비는 오르긴 할까? 나의 학생들이 졸업하면 더 이상 새로운 학생이 없는데 과외선생님으로 계속 직업을 유지할 수 있을까? 끝이 있다는 두려움에 나는 불안과 함께 해야 했다.
과외 선생으로서의 나:
그런 나의 불안이 얼마가지 않아 현실로 다가왔다. 한 학생은 방방 뛰며 이제 졸업했으니 나와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중국어 과외를 받던 학생은 시간 상 중국어에 할애할 시간이 없어졌다고 했고, 영어 과외를 받던 학생은 내신이 중요하니 학원에서 족집게 수업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간간이 들어오던 과외도 이젠 더 이상 나의 손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렇게 서서히 나의 학생들은 나의 품을 떠났다.
직장인으로서의 나:
6개월 파트타임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3달 뒤에 정규직 채용공고가 올라오니 그때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된다고 전달받았다. 그러나 3달 뒤, 깜깜무소식인 채용공고에 우리 팀은 인사팀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했다. 그리고 또다시 3달이 흘렀다. 돌아오는 것은 파트타임 계약 연장서였다. 그러나 정글 같은 회사에서 이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나에게 이로울지, 아쉬운 척을 해야 나에게 이로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덤덤한 척. 사실 나는 평생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싶었다. 그래야 요가와 병행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느덧, 1년이 다가왔다. 그러나 우리 팀원도 팀장님도 올라오는 채용공고에 관심을 쏟을 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파트타임 계약의 연장이었지만, 이런 마음을 쉽게 드러낼 수 없었다. 두어 차례 경험에 의하면 팀에서 인력 요청을 한다고 해도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 없어 쉽게 인력을 채용하지 못한다. 그럼 이 상황에서 나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회사의 수입 없이 요가강사로서의 삶은 지독히 현실적이었다. 그럼 또다시 돌아오는 질문은, 나는 어떤 매력적인 요가강사가 되어야 하나? 였다.
요가강사로서의 나:
그즈음, 나는 오피스텔 계약을 했다. 그 오피스텔에 요가원을 열거라는 꿈은 아직 꾸지 못한 채, 일단 공실로 2달 정도 있었다. 어떤 공간이 되었건 나는 인테리어를 원했다. 깔끔한 안식처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 발품 팔아 인테리어 업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이 힘들지만 흥분되었다. “나의 공간이 곧 생기다니!” 이런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인스타 스토리에 관련 내용을 올렸다. 그러자 한 요가원 원장님이 어느 날 나에게 물어봤다.
”선생님 요가원 차려?”
“네? 어.. 저 일단 오피스텔 계약은 했는데,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았어요. 차릴 수도 있고, 제가 살 수도 있고,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나는 사업자를 낼 용기가 없었다. 사업자, 세 글자만 봐도 거창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 조그만 공간에 어떻게 수련을 이어갈까 상상도 잘 되지 않았다. 물론, 나는 드넓은 마당이 있는 공간에 나만의 요가원을 차리고자 하는 오랜 ‘꿈’은 있었다.
다음주가 되었다. 개인레슨을 마치고 스튜디오 안에서 카운터에 계신 원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원님, 이제 다른 선생님으로 하실지, 아니면 그만두실지 결정하셔야 해요.”
“왜요? 선생님 그만두세요?”
“아, 선생님 이제 요가원 차려서 여기는 그만 두실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이지? 처음 듣는 말이다. 내가 그만둬? 언제? 왜? 내가 요가원을 차려? 내가? 스튜디오 안에 있는 나는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다. 순간 온몸이 떨리고 차가워졌다. 동공이 지진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한 번도 원장님께 내가 요가원을 차리거나, 그 요가원을 그만두거나 등을 말한 적이 없다. 그러나 회원님이 가시고 원장님께서 스튜디오로 들어오시더니 나에게 “일단 우리 회원님께는 선생님 그만둔다고 얘기했어. 그게 맞는 것 같아”라고 하셨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다음 수업을 위해 애써 무덤덤한 척, 침착한 척 유지해야 했다. 황당을 감춘 채 미소를 유지했다.
수업이 끝난 뒤 이런 식으로의 해고는 정말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나는 인스타 스토리 한 장에 해고당했다.
나는 이제 과외 선생도, 나의 회사도, 요가원도, 그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는 방랑자가 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때, 나에게 유일한 희망은 오피스텔뿐이었다. 그 자그마한 공간에서 내 요가원을 차리지 않으면 나는 백수 신세를 견뎌야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단 차근차근해보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일단 로고를 만들고, 가격표와 시간표를 끄적여 보고, 가오픈을 통해 작은 공간에서 호흡을 이어나가 보았다.
사실 가오픈기간에 나는 여전히 사업자를 내지 않았다--아니 못했다, 단순히 용기가 없었던 것인지 귀찮았던 것인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진 못했지만--나에게 사업자등록증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누군가 간판 없는 요가원에 찾아왔다. 따뜻한 공간이라고, 선생님의 목소리가 너무 좋다며 돌아갔다. 그리고 한 명, 두 명씩 요가원을 찾기 시작했다. 10명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지만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다. 나에게 온 당신들이 편히 숨 쉬었으면, 오로지 호흡에 집중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든 사업장을 유지해 나가야 했다.
그렇게, 선릉 빌딩 숲 속 간판 없는 자그마한 요가원 <사우차요가>가 탄생했다.
N잡러로서의 나:
아까 오피스텔이 2달 공실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유는 회사에서 예상했으면서도 예상하지 못한 정규직 채용공고가 드디어 올라왔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내가 남길 바랐고, 나는 여전히 파트타임이길 바랐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숨긴 채 일단 시험과 면접을 준비했다. (회사의 시험은 ‘과거 시험’처럼 독하기로 악명 높아서 독하게 준비했어야 했다.) 마치 다시 석사생으로 돌아간 듯 공부에 전념했다. 자존심은 있는지 시험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그 무렵 나는 정직원이 되었고, 나의 요가원도 탄생했다.
나는 그렇게 또다시 새로운 N잡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서 나의 소중한 회원들과 나눔 하는 중이다.
보았는가? 진정한 선택이란 그 길 앞에 신은 우리에게 고민할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때로는 나의 무기력함을 발가벗기듯 속삭여준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통제할 수 없다고, 당신은 가던 길만 가면 될 뿐이라고, 그리고 그뿐이라고 말이다. 요가의 지혜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당신은 관조자라고.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