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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색이 모두 다른 벽돌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무심코 흘러가는 하루 속에 나를 붙잡아 두는 것들이 있다. 그날은 경로를 변경하며 거리와 골목을 마음껏 헤엄치는 날이었다. 유달리 하늘은 파랗고, 가볍고, 때때로 뜨겁게 태양을 내리쬐어 어깨를 감쌌다. 함께 맞춰 걷는 걸음에 따라 그림자는 늘어지고, 발자국 대신 말과 말을 쌓아 지나온 시간과 지나갈 시간을 거리에 흩뿌렸다.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도로에는 높다란 건물들이 담벼락처럼 줄지어있고, 모퉁이를 돌면 낮은 건물들이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자리를 느리게 지키고 있었다.나의 동행인은 햇빛을 받으면 맑은 갈색이 되는 눈동자로 동네의 취향이 묻어나는 간판들을 살폈다. 그리고 우리는 재잘댔다. 마땅히 해야 할 것도, 하면 안 되는 것도 없는 하루다.


저기로 가볼까?

그래.


멀리 보이는 활자로 거리를 새기며 그가 골목을 정했다.

길의 가운데에 한가로이 누워있는 고양이를 보며 내가 골목을 정했다.

붉은 사인과 삼색의 동물을 만났다.

그사이 움직이는 하늘에 태양은 미끄러졌다.

그에 맞춰 하늘은 노란빛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색에 맞춰 세상이 물들고, 마음이 물든다.

5개의 건물이 중첩되는 하늘에 시선이 머문다.

황토 빛깔 - 세로로 하강하는 적벽돌 - 회색의 - 하늘이 반사되는 푸르른 창- 다시 적벽돌.

색이 모두 다른 벽돌이 다양한 수종으로 색칠된 숲처럼 풍경을 이룬다.

붙잡힌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 집 근처의 작은 산을 보던 날을 떠올린다.

메마른 잎사귀로 갈색인 나무들과 새로 피어나는 녹색의 것들이 뒤섞인 산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이름을 알지 못 하는 식물들이 우거진 산을 보던 날을 떠올린다.

여린 잎을 늘어뜨린 나무와 커다란 잎으로 비를 막아주는 나무가 뒤섞인 산이었다.

네모난 것들을 보면서 곡선의 생명들을 떠올린다.

늘 옥죄여 오는 답답한 것에서 평온한 것을 떠올린다.



[요마카세] 목요일 : 드로잉하고 싶은 날

작가 : 명진

소개: 드로잉 작업을 하고, 동시대 미술 기반으로 전시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하루를 여행자로 살아가며 이를 글과 이미지로 남깁니다. 익숙했던 풍경, 인물, 행위를 낯설게 보고, 기억과 무의식에 떠도는 감정들을 마주해 봅니다. 어느 날은 부지런하고, 어느 날은 느긋하게 주변을 감각하고 나를 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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