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인생 전시’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살면서 본 전시 리플렛이 마중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사실 그런 이야기같은 거 없다. 그냥 드립을 치고 싶었다..)


전시를 보면 리플렛을 꼭 챙기는 편이다. 디자이너로서 좋은 레퍼런스를 쌓아두기 위함도 있지만, 전시를 오래 기억하고 싶어 모은 것도 있다. 전시 자체를 기억하고 싶어서요즘은 환경 문제로 배부용이 아닌 열람용 리플렛만 뽑거나 pdf파일로만 제공하는 경우도 많지만, 어쨌든 파일이든 실물이든 최대한 꼭 챙겨두는 편이다. 2019년쯤부터 전시를 많이 보았던 탓에 리플렛이 이제 꽤 많이 쌓였다. 파일에 철해두는 것으로 시작해 점점 계절옷 정리하는 큰 박스 안에 차곡차곡 담아 두어야 할 정도가 되었다.


IMG_4767.jpeg (이게 2025년 1월이었고, 지금은 더 많이 쌓였다. 곧 더 큰 박스를 마련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많이 쌓이다보면 언젠가는 정리해야 하는 순간도 생긴다.(사실 이 사진도 리플렛 보관 박스가 터질 것 같아 정리하기 위해 리플렛을 전부 꺼냈다가 찍은 사진이었다) 아주 엄격한 기준에 따라 리플렛을 정리하는데, 마치 졸업앨범을 살펴보듯 하염없이 리플렛을 다시 펼쳐보며 회상에 잠기곤 한다.


이 조명, 온도, 습도..


그때마다 계속해서 다시 추억하게 만드는 전시들이 있다. 리플렛을 볼 때마다, 혹은 비슷한 컨셉이나 그 전시에서 봤던 작가의 다른 작업들을 마주할 때마다 계속해서 상기시키고 싶어지는 전시들이 있다. 오늘 이야기할 전시들은 아마도 큰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영원히 저 커다란 박스 안에 담겨 있을 것이다. 수많은 전시들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인생 전시’들에 대해서 말해보려 한다.


image (1).png (마치 <인사이드 아웃>에 나온 ‘코어 메모리’와 같은 전시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의 작가상 2019>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image (2).png

사실 오늘의 글은 이 전시를 이야기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이다. 정말 단 하나의 인생 전시를 꼽으라면 이 전시를 꼽고 싶다.


한국 사회의 기저에 존재하는 집단적 무의식과 현대 한국인이 ‘우리’ 혹은 ‘타인’을 인식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진 박혜수 작가, 이주와 정착이라는 현상에서 시작하여 ‘땅’이라는 초국가적인 토착 신앙의 무대를 통과해 전작의 사변적 세계관을 더욱 확장시킨 김아영 작가, 작품의 생산과 전시, 보관을 포함하는 미술계의 시스템에 대한 메타적 관점을 담아낸 이주요 작가, ‘동물-되기’의 방법을 통해 탈인간중심적 소통의 가능성을 탐구한 홍영인 작가. 네 명의 작가가 보여준 ‘지금’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은 전시 초보였던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세상에 이런 세계가 있다니’에 가까운 충격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2019년은 SADI 입시를 위해 열심히 전시를 보러 다닐 때였고 전시를 많이 본 상태가 아니었던지라 더 강한 감동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래 풋사랑이 더 기억에 남듯, 이 전시를 보고 처음으로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의 가치를 깨달았던 것 같다. 영글지 않은 시각으로 서툴게 전시 감상문도 썼던 것 같다. 두껍고 비싼 도록도 처음 사 봤고, 하나의 전시를 여러 번 보는 버릇도 이 때 처음 생겼다. COVID19로 인해 2020년 초부터 미술관이 폐쇄되면서 더 많이 보지 못한 것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2019년도 올해의 작가상에 선정된 네 명의 작가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현재까지 아주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신작 소식을 듣게 될 때마다 작가님들이 이 때 보여준 세계가 더 확장되고 깊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아이돌 소녀팬처럼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보러 미술관을 향하는 나의 마음도 아마 꽤 오래 지속되지 않을지.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 - MMCA 서울

image (3).png

이 전시는 ‘물성’에 집중한다. 사물, 그중에서도 특히 공산품의 물성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해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비생물 개체와 맺는 관계까지 의제를 확장시켰다. 특히 비생물 개체 역시 인간과 ‘공존’하고 있다는 시각을 제안하며 ‘인간 너머’의 상상을 성공적으로 촉발시켰다.


이 전시에서 다룬 주제가 내게 유의미했던 이유는, 내게 ‘비인간 개체의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게 했기 때문이다. 이 전시 이후로 인간이 철저히 대상화했던 비인간 생물 혹은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시스템(데이터, 도시 등)과 인간의 공통점을 떠올리며 특정 대상과의 공존 방식을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쌓아왔는지 상상하고 질문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때마침 비슷한 시기에 열렸던 <서도호 : 스페큘레이션스> 전시와 더불어 이 전시보다 더 이후에 진행된 <아니카 이 :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이나 <Mika Rottenberg: NoNoseKnows> 등의 전시를 통해 더 많은 질문을 만들고 스스로 답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나 사고의 전환을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나는 흥미롭게도 미술관에서 그런 순간들을 유독 많이 마주쳤다.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 - 아트선재센터

image (4).png

문경원&전준호 듀오가 MMCA서울에서 진행했던 <MMCA 현대차 시리즈 2021: 문경원 & 전준호 –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을 상당히 감명깊게 본지라, 많은 기대를 하고 가서 본 전시였다.


꾸준히 현대 사회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를 간학제적 접근을 통해 풀어내 온 문경원&전준호 듀오가 이 전시에서 주목한 것은 ‘환경’이었다. 당시는 한참 COVID19 이후의 뉴 노멀 시대에 모두가 적응하며 앞으로 달라질 미래에 대해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일상을 살아가던 시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COVID19가 환경 파괴로 인해 동물과 인간의 서식지가 뒤섞이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질병이 새로이 등장하게 된 것이라는 진단으로 인해, 모두가 더욱 환경지속가능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던 때였다.


이 전시가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모바일 아고라: 서울 웨더 스테이션>라는 플랫폼 때문인 것 같다. 연계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인간과 기술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에 대해 아주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는데, 그때 마침 비슷한 주제를 졸업 전시에 담아내려고 했던 때라 하나하나 다 기록하며 정말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내용은 ‘여행 로봇’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간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 때 도파민이 분비되도록 하는 신경 매커니즘을 가진 존재이므로, 가장 ‘인간답게’ 사고하는 로봇이란 ‘스스로 질문을 만들 수 있는’ 호기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호기심’을 탑재한 채 능동적으로 질문을 만들고 스스로 답을 찾아다니기 위해 ‘목적 없이 배회하는 여행 로봇’이 등장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상상은, 내가 여태 가진 인공지능에 대한 지식과 지극히 반대된 것이라 특히 기억에 남았다.


환경에서 시작해 기술과 인간의 공존을 폭넓게 다루는 전시. 어쩌면 뻔하고 지루한 주제일 수도 있었지만, 그때의 내게 가장 필요한 질문과 사유를 채워 주었던 전시인지라 마음에 잔잔하게 오래 남아있는 것 같다.


<Fortune Telling : 운명상담소> - 일민미술관

image (5).png

사실 이 전시는 정말 ‘재미’있는 전시로는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게임도 할 수 있는데, 타로도 볼 수 있고, 사주를 봐 주거나 고민 상담을 해주는 전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옥상에서는 굿 퍼포먼스를 하는 전시라니. 게다가 일민은 광화문 한복판에 위치해서, 야외 퍼포먼스 소리와 바깥의 시위 소리가 합쳐지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과연 어느 쪽이 더 신앙에 가까웠을지..?)


전례 없는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수많은 ‘당연했던 것’을 낯설게 대해야만 하는 상황이 매일 반복되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극에 달한 때, 인간이 아주 오랜 시간동안 삶의 불투명성에서 기인하는 공포를 풀어낸 ‘신앙’이라는 주제를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유쾌하게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인간의 본질처럼 취급되며 과학으로는 그 어떤 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시대가 도래했지만, 인간은 여전히 미지의 가능성을 마주한 순간 공포에 떠는 유약한 존재가 될 뿐이라는 허무함만은 떠나보내지 못했다. 과학과 기술의 그 우쭐대는 듯한 경직성과 정합성의 빈틈을 메꾸며 사회를 아주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어 주는 민속 신앙의 가치에 대해 아주 재밌게 풀어낸 전시였다.


<이안 쳉: 세계건설> - 리움

image (6).png

이안 쳉 작가는 기술을 통해 상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작가이며, 아시아에서 개최된 최초의 개인전이었다고 알고 있다. 실제로 이 전시에는 작가가 구현해 온 가상 세계관을 직접 살펴보거나 간단한 참여를 통해 세계관의 구축에 참여할 수 있는 여러 작품이 소개되었다.


이 전시의 간판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Life After BOB(BOB 이후의 삶)> 애니메이션이 아무래도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인공지능이 나보다 내 삶을 더 잘 살아낼 수 있다면, 나는 수많은 시뮬레이션 속 가장 ‘최선’인 그 선택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최적의 삶’이 아닐 수 있는 ‘나의 선택’을 따를 것인가? 이 작품은 작중 주인공 ‘찰리스’의 입을 빌려 이 질문에 답한다. (스포이니 결말은 말하지 않겠다)


어쩔 수 없는 오타쿠+문과인지라, 이런 인문학적인 질문이 내포된 SF 애니메이션에는 가슴이 뛰지 않을 수가 없다. 과학과 기술이 극대화된 상상 속의 세계에서 삶의 본질을 질문하는 작품이라니, 정말 군침이 돌지 않는가? 개인적인 감동포인트 요소를 모두 건드리는 바람에 뻐렁치는 마음을 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블랙박스(리움 내 영상 작품을 상영하는 공간)를 나왔던 기억이 있다. 이 애니메이션을 또 보고 싶어, 해당 작품이 큐레이션된 전시(<예측(불)가능한 세계>)를 보러 청주까지 갔을 정도였다. 그리고 뽕(?)을 뽑겠다며 한시간짜리 애니메이션을 부동자세로 두 번 보고 나왔다. 하하.


<DRIFT: In Sync with the Earth> - 현대카드 스토리지

image (7).png

예전에 네덜란드로 여행을 갔을 때 알게 된 스튜디오 드리프트의 국내 전시가 기억에 남는다. 수공예에 가까운 정밀한 설치 작업을 통해, 마치 생명이 깃든 것과 같은 섬세한 움직임을 가진 기계를 만들어내는 스튜디오 드리프트의 작업들은 그야말로 하염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게 된다. 물성을 집착적으로 탐구하며 오랜 시간 하나하나 쌓아가며 만들었을 대형 설치 작품이 주는 감동은 인간의 인내와 끈기를 다시금 신뢰하고 싶게 만드는 것 같다.


특히 이 전시는 스튜디오 드리프트의 작업 과정을 세세하게 소개하고, 완성작을 만들기까지 거듭했던 수많은 실험의 과정들을 함께 보여주어 그들이 만들어낸 것이 그저 기적이나 마법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인간적’인 과정들은 그들이 끊임없이 관심과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자연에 대한 경탄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모방할수록 심화되는 그 숭고함 앞에서 느낀 겸손함 같은 것을 그 과정에서 발견했던 것 같다.


타이포잔치 2023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 - 문화역284

image (8).png

‘타이포잔치’는 2년에 한번씩 여는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로, 사실 타이포그래피보다 훨씬 더 넓은 범주의 시각예술 혹은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다루는 전시이다. 주제명에 포함된 따옴표는 발화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호인 만큼, 당시 큐레이션된 작품 중에서는 유독 문자의 음성화나 음성의 시각화를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


매번 가지만 특히 2023년도의 타이포잔치가 기억에 더 남는 이유는, 문자에서 ‘소리’로 확장하며 타이포그래피라는 정지된 2차원 기호에 시간성과 장소성을 부여해 그 범위를 확장시켰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훨씬 더 매체나 표현 방식이 풍부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시간이 벌써 2년 남짓 흘러 올해의 타이포잔치가 개최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올해는 과연 어떤 새로운 주제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낼지 매우 기대된다.


<가능한 최선의 세계> - 플랫폼엘

image (9).png

이 전시는 마치 게임처럼 두 개의 선택지를 놓고 시작한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블루 프린트’의 세계와, 규칙도 일관성도 없는 ‘레드 프린트’의 세계 중 하나를 선택해 그 흐름에 따라 전시를 관람하게 된다. 선택에 따라 다른 안경과 스크립트를 받게 되고, 전시 곳곳에 숨겨진 카드를 수집하며 작품과 작품 사이를 이야기로 연결하며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스스로 완성시켜가는 기획이다.(거꾸로 돌거나 요행(?)을 쓰면 모든 경로를 다 체험해볼 수는 있다)


당시 나는 전시의 순서와 구성을 스스로 선택하고, 일방향이 아닌 다방향으로 전시를 관람한 경험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이 전시가 특히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아무리 능동적인 경험이라도 어느 정도는 큐레이션 의도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는데, 이 전시는 내가 선택한 방향 말고도 다른 방향으로도 얼마든지 향할 수 있고 그 외의 방식으로 관람하는 것도 허용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헤맨 만큼 더 풍부한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었다. 전시 관람 동선이나 순서가 관람 경험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가장 적절할 때 만났기 때문에


사실 여기 적지 못한 수많은 전시들이 더 있다. 그리고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나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 - 백년 여행기> 등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 대부분의 기획 전시는 솔직히 여기 다 적고만 싶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미술계 종사자도 아니고 아주 오랜 시간 전시를 봐 온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전시에서 만나는 질문들과 의제들이 언제나 새롭고 뜻깊다. 다만 내가 ‘인생 전시’라고 말하고 싶은 것들의 특징은, 가장 ‘타이밍’이 좋았던 전시들인 것 같다. 그 때의 내가 가장 궁금해했던 질문에 대해 답을 주거나, 가장 필요했던 질문을 대신 해 주는 전시들이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그때 내가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장 의미 있는 자극으로 남았을 테니 말이다. 지금 와서 ‘가장 좋았던 전시’를 훑어보며 그 전시를 본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니, 당시의 나를 다시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말해, ‘인생 전시’란 당시 나에게 가장 ‘동시대적’인 전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내가 전시를 보며 어떤 질문에 집중하고 어떻게 전시를 통해 그 질문에 대해 답하는지 말해보고 싶다. 이 글을 봐 주시는 여러분도, 우연히 마주친 어떤 전시에서 만난 적절히 던져진 질문과 함께 길게 남을 여운을 안고 미술관을 나오는 짜릿한 경험을 꼭 누릴 수 있길 바란다.



[코너 속 코너] 지금 당장 보러갈 만한 전시를 추천해 드립니다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4.0>, 백남준아트센터, 6월 29일까지

수원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개최되는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4.0> 전시를 추천합니다.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는 백남준아트센터가 매년 개최하는 전시로, 실험적인 작업을 전개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그룹전입니다.


백남준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의 포스터에는 “que sais-je?”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앎과 신념에 대해 반문했던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의 회의주의적 사유를 의미합니다. 자신의 앎,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상, 반문하지 않는 가치를 끊임없이 전복시키며 실험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품들이 다수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티스틱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현대미술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는 내가 하지 못했던 상상을 남이 대신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여나 비슷한 주제를 떠올렸더라도, 완전히 다른 결말일 수도 있고요.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4.0>은, 어쩌면 다들 한 번쯤은 해봤을 질문이나 고민에 대해 끝까지 고민해 내놓은 멋진 답변을 훔쳐 보는 즐거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2023년도 타이포잔치에서 흥미롭게 보았던 김호남 작가의 〈해저 광케이블을 위한 에코챔버 시스템〉을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또한 ‘동물의 지각 데이터를 모든 생물이 공유받을 수 있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시작해 비인간 주체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일상화된 세계관을 생생하게 그려낸 정혜선&육성민 듀오의 <필라코뮤니타스>도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IMG_9408 (1).jpeg <신자연 연구>, 장한나

자연 속에서 돌처럼 변모한 플라스틱을 ‘뉴 락’으로 재정의하며, 한때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간의 생필품이었던 ‘뉴 락’의 발생 과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한 설치 작품입니다. 지질학, 환경, 정치생태학적 관점에서 탐구하고, 인간이 자연에 끼친 영향(체르노빌 원전 사태, 미세 플라스틱, 해수면 온도 상승 등)에 적응한 비인간 생물의 예시를 들며 인간이 개입되지 않은 것이 ‘자연’이라는 통념에 대해 질문합니다.



[요마카세] 토요일 : 전시 왜 봐?

작가 : GARDEN

소개 : 주말마다(사실 평일에도..) 전시를 보러 다니는 직장인의 전시 보는 이야기입니다. ‘전시 왜 봐?’ 라는 질문에 짧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상상해도, 무엇이 펼쳐져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들을 글로 풀어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토요일] 빵이 열리는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