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타인의 시선을 빌려 보면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4월 중순. 연둣빛 잎사귀가 올라오고, 아직 바람이 불어 반팔 티셔츠 하나만 입기에는 조금 쌀쌀한 그런 날씨. 그중에 하루는 이모와 함께 이누야마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누야마는 나고야에서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도착하는 작은 도시다. 서울 외곽 느낌일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느리고, 훨씬 더 조용했다. 번잡한 도시의 소음은 들리지 않았고,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나 강을 스치는 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무척이나 일본 스러운 한적함이 있는 곳이었다.


이모와 나란히 기소 강을 따라 걸었다. 나는 중간중간 멈춰 서 카메라를 들었고, 이모는 멈춰 선 나보다 한두 걸음 앞에 있다가 돌아보곤 했다. 저 언덕 위로는 옛 정취 가득한 이누야마성이 보였다.


그러다 한 장면에서 멈췄다.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강가에 서 있었다. 뭘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용히 강물을 들여다보는 그의 뒷모습과 주변의 고요함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별다른 생각 없이 셔터를 눌렀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대단한 감상을 품는 편은 아니다. 연출된 장면보다는 우연히 마주친 어떤 흐름 같은 것이 좋아 마음이 가는 대로, 순간을 포착한다. 그리고 대개는, 집에 돌아와서야 그 사진들을 다시 보며 생각을 시작한다. ‘이 사람은 뭘 하고 있었을까?’,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까?‘ 그저 내 여행의 배경처럼 지나쳤던 낯선 사람은 이제 나의 여행 사진 속에서 계속 보게 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런 사진이 종종 있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이모의 글이 올라와 있다.



오늘 아침.. 조카가 올린 사진들을 본다.

같은 공간에 있었었는데

조카의 시선은, 각도는, 초점은 사뭇 나와 달랐다.

그래서 감동했다.

너무 멋졌다.


세상엔 참 배울 것도 느낄 것도 많다.

타인의 시각을 빌려보면

안 보이던 것도 새롭게 볼 수 있다.


조카의 시각엔 주로

자연스러운 사람이 있고

그래서 사진에서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는 듯하다.



글을 읽고 이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이모는 말했다. “같은 곳에 있었는데도, 너랑은 전혀 다른 걸 보고 있었구나”

이모는 사진 속 주차된 차와 작업복 입은 아저씨가 시선에 걸린다고 했다. 그런 건 피해서 찍으려 했다고. 그에 비해 나는 그런 것들을 지우지 않았고, 그저 있는 그대로 담았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찍은 사진을 다시 보게 됐다. 그 장면은 더 이상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이모가 본 내 사진‘이기도 했다.


같은 풍경도 각자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때로는 누군가의 시선을 빌려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있다. 이모는 나를 통해 배웠다고 하지만, 사실 나는 그 말에서 더 많은 걸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배경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사진의 중심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지우고 싶은 요소가 자연스러운 매력이 될 수도 있다. 사진은 그런 시선의 차이를 조용히 기록해 놓는다. 그리고 가끔, 그 시선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을 때 사진은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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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마카세] 일요일 : 간헐적 포토그래퍼의 나고야 기록

작가: 샨샨

소개: 아주 가끔 사진 찍는 사람. 그래도 찍을 땐 나름 진심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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