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늘도 입을 게 없군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오늘도 입을 게 없군. 옷장에 가득 찬 옷을 보며 생각한다. 그리곤 결국 자주 입는 옷에 손이 간다. 이럴 거면 옷장 앞에서 뭐 하러 고민했나 싶다. 옷장 속 1년에 단 한 번도 안 입은 옷은 몇 개일까. 제일 많은 개수와 공간을 차지하는 건 옷이다. 양문으로 열리는 붙박이장 2짝 모두 내 옷이다. 자리 잡고 있는 만큼이나 버리기 어렵다. 언젠가 입겠지. 한 번밖에 못 입었는데. 비싸게 주고 샀는데. 어디 갔을 때 입었던 옷인데! 옷에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집에서 가장 먼저 정리하고 싶은 공간이자 버릴 게 많은 곳이 옷장이다. 동시에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다. 미루고 미루다 옷장 전체가 아닌 한 번에 한 칸씩 정리하자 마음먹고 시작한다. 그러다 꿈은 크게 꿔야 한다는 말을 되새겨 빽빽하게 찬 옷박스 4개 중 2개를 비우자 다짐한다. 닳도록 입어 보풀 투성이의 양털 트레이닝 바지, 10년을 입어 로고가 다 떨어져 나간 나이키 져지, 엄마 친구가 비싸게 산 처녀 때 입던 바지, 생일선물로 받은 얼룩 묻은 수트 셋업, 회사 동료가 줬던 흰 플레어스커트. 적어 놓고 보니 버리지 못한 이유와 버릴 이유가 같다. 내가 사랑한 모습이 결국 이별 사유가 되는 것처럼


역시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4박스 중 1박스만 겨우 버린다. 이제 내가 가진 옷상자는 여름•간절기옷, 겨울옷, 운동복 총 3박스다. 운동복만 한 박스라니. 일주일에 5일 운동을 하지만 대체로 입는 옷만 입는다. 손이 자주 가는 옷엔 어떤 힘이 있는 걸까. 다음번엔 한 박스 더 비워 내겠다고 다짐한다. 옷을 비우는 방법엔 여러 가지 팁이 있다. 버릴까 말까 고민되는 옷은 그 자리에서 바로 입어보고 설레지 않으면 버린다. 잘 안 입는 옷을 상자에 넣어 두고 1년 동안 찾지 않으면 뜯지 말고 상자 채로 버린다. 모든 옷은 걸어 두고 걸 수 없는 옷은 버린다. 이번 정리에서 옷걸이에 걸린 옷은 살피지도 못한다. 옷상자에 있는 옷도 모두 건다면 이상적인 모습이다. 어떤 옷이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면 정리할 때마다 ‘이런 옷이 있었네’ 말하지 않을 수 있겠지.


버리려고 한 켠에 끊임없이 쌓이는 옷더미를 보고 있자니 버리는 것도 버리는 거지만 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치민다. 기껏 버렸는데 또 채우면 무슨 소용이겠나.

오랜 다이어트 강박으로 깨달은 ‘참는 건 능사가 아니다’ 교훈을 잊지 않는다. 꾸역꾸역 참은 욕망은 어느 문으로든 비집고 나오기 마련이다. 옷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거나 가진 것에 만족해야 한다. 요즘은 더 이상 필요한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지만 옷은 매번 새롭다. 그러다 이미 가진 것을 생각하면 그 마음이 자연스레 식는다. 식는다기 보다 사고 싶은 욕망이 비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뀐다. 모든 옷들이 옷걸이에 걸려있는 모습이라니.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입고 나간 것만큼이나 기분 좋다. 원하는 옷을 모두 가질 순 없지만 원하는 옷장은 가질 수 있다. 문득 옷장 이름을 지어주어야겠다. 이름은 ‘오늘도 입을 게 없군’ 말고 ‘오늘도 잘 입었군’이다.


옷 버리는 중




[요마카세] 월요일 : 비워야 산다

작가: 흐름

소개 : 가볍게 살고 싶다. 뼈마저 비어있는 새처럼. 하루에 한 개씩 물건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매일 물건과 이별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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