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화가 났을 때 내 마음 속 불덩이

밀려오는 수치심과 저항심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사실 당황스럽게 해고 당한 요가원 원장님과의 불협화음은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면접날이 왔다. 나의 이력서를 내밀었고, 그 요가원에서 꼭 일하고 싶었다. 시설이 깔끔했고, 집과 가까웠고, 타임비가 높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요가를 향한 열정으로 과천이며, 의왕이며, 여기저기 돌아다닐 힘이 남아돌지 않았다. 나는 보다 안정적이게 일하고 싶었다.


시범 수업을 보여 달라 하셔서 매트 위에 앉았다. 그러자 원장님께서 60분 수업을 한다고 생각하고 시범 수업을 보여 달라 하셨다.


“60분 수업을 지금 진행하나요?”라고 물었다.


“내가 중간에 끊을 테니까, 처음부터 해봐. 처음에 시작하는 방식대로 시작하고, 중간에 아사나 진행하고, 마지막 사바사나 마무리까지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어서 그래.”


툭 튀어나온 반말에 살짝 당황했지만,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그 분은 나이가 많으셨고, 나는 딸뻘 정도 되는 나이였다. 불편한 마음은 잠시 잊고 미소를 머금으며 나의 수업을 시작해 보았다.


“가슴 앞에 합장하고, 인사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요가강사 다정입니다. 나마스떼. 제 수업은 짧은 나눔과, 명상, 그리고 아사나로 이루어집니다. 오늘 나눌 이야기는 ‘통제하려는 마음’입니다...”


“아 잠깐만, 쌤. 이런 이야기는... 좀...”


“네?”


“솔직히, 여기 주변 다 지위도 있으신 분들이고, 나이도 있으시고, 그런데 쌤 젊잖아. 젊은 사람이 그런 이야기하면 좀 그렇지 않나?”


더 이상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머리가 하얘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면접을 이어 나가야 했다.


“그럼 바로 자세로 넘어갈까요?”


“그래 자세 해봐.”


내 스타일대로 수업을 이어 나갔다. 나의 수업은 요가철학과 마음챙김 명상을 기반으로 아사나(자세)를 이어 나간다. 이런 나의 정체성을 형성시켜 준 것은 내 수업을 들었던 회원님들이었다. 내 리드명상을 들으러 수업에 참여하고, 마치 책 읽어주는 여자 같다며 나를 좋아해 주신 회원님들 덕분에 요가강사로서 나의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정체성에 자신이 있었고 나의 에너지가 좋았다. 이런 마음의 힘이 그 원장님께도 통했는지 시범 수업이 끝나자 처음에 하려던 이야기를 다시 해 보라고 했다.


“쌤, 처음에 하려던 이야기가 뭐였지?”


“통제하려는 마음이요?”


“어, 그래. 그거 한 번 얘기해봐.”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괴로운 것은 ‘통제하려는 마음’ 때문이라는 나눔을 가졌다. 모든 상황과, 타인관의 관계, 그리고 나 스스로마저 그저 흘러갈 뿐인데, 우리는 그것들을 통제하려하기 때문에 마음의 고통이 올라온다고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앞에 있는 사람이 숫가락과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았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았을 경우, 내가 그 상황이 짜증난다면 어쩌면 상황 그 자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라고 설명했다.


매트 위에서도 같다. 때로는 오늘 어깨를 풀고 싶은데 선생님이 골반 위주로 자세를 이어 나갈 때, 혹은 자세를 ‘잘’ 하고 싶은데 자세가 잘 나오지 않을 때 마음의 고통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어쩌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상황이나 내 자신을 ‘통제하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매트 위에서 그저 바라보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나눔이 끝나자 원장님께서 못마땅하지만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좋네. 나는 솔직히 말하면, 쌤이 우리 요가원에서 일해 줬으면 좋겠어. 일단 쌤 인상이나 목소리는 처음 들어왔을 때 이미 확인했고, 좋은 것 같아. 우리 요가원 결이랑도 맞고. 근데 나는 여전히 쌤이 이런 명상 얘기는 좀 자제했으면 좋겠어. 하더라도 5분 짧게?”


“네.” 그렇게 무리한 요청은 아니었다.


“그리고 한 동안은 쌤 수업에 내가 들어 갈거야. 쌤 수업도 조금 조금 코멘트 해 줄거고.”


이런 어이없는 말은 또 처음 들어봤다. 그렇지만 일단 그 요가원에서 일하기로 했다. 그렇게 불협화음으로 요가원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회원님들과의 호흡이 중요했지 원장님과의 마찰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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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이 끝난 뒤 무언가 마음이 불편하다. 지금까지 쌓아온 나의 정체성을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데 나이가 필연적인 원인이 될까? 오히려 강남에 사시는 ‘지위 있고 나이 많으신’ 분들이 자신의 마음을 잘 돌보지 못했기 때문에 명상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그들에게 ‘지금, 여기’가 당신의 목적지라고 알려 주고 싶었다.

그들이 성공의 달콤함에 젖어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되었을 때, 잠시 멈춰도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부귀영화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공허함을 느낄 때 당신 자신이 본인의 가장 친한 친구이니 외로워하지 말라고, 당신 곁에는 언제나 당신을 응원하고 사랑하는 내면의 친구가 있다고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이 요가원의 규칙이었다.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고, 온 몸이 뜨거워졌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이것은 뭐지? 명상을 통해 바라보려 했지만 시시때때로 두 눈이 자연스레 떠졌다. 답답하고 머리가 아팠다.


이것은 “화, 수치심“이라고 나 스스로 정의 내렸다. 나는 그 면접이 너무나도 화가 났다. ‘통제하려는 마음’ 한 단어로 내 말을 끊고, 어리다는 이유로 명상 관련 나눔은 금지시키고, 내 수업을 평가하겠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상황마저 나의 ‘통제하려는 마음’ 때문인가? 바라보려 했지만 두 눈이 앞을 가려 더 이상 바라보지 못했다.


일주일 동안 바라보려 했지만 여전히 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의 몸은 너무나도 뜨거웠고 얼굴에는 뾰루지도 올라왔다. 거울 속에 보이는 뾰루지를 바라보면 더 화가 올라왔다. 그 때 명상을 통해 바라보려 애쓰지 않고 그저 감각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내 몸은 뜨겁다. 너무나도 뜨겁다. 뜨거워 마치 데일것만 같다. 아 보인다. 내 몸 속 불덩이. 그 때 그 불덩이를 내 몸 밖으로 꺼내어 보았다. 정말 활활 타오르는 구나. 너무 거세게 타올라 이 불을 끌 수 없었다. 나의 무기력을 한 번 더 확인해 준 내 몸 속 불덩이. 그래 활활 타오르렴. 다만 내 몸 밖에서 타오르렴.


이 활활 타오르는 불과 함께 일주일은 더 간 것 같다. 일주일 동안 나는 뜨거운 불덩이와 함께 했다. 다행인 것은 타오르는 불을 내 몸 밖에 꺼내어 두니 내 몸은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 불은 여전히 타올랐지만 나의 몸은 평온을 찾기 시작했다. 얼굴에 뾰루지도 가라 앉았다. 그렇게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며 일주일이 흘렀다. 매일 조금씩 불씨는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 불은 꺼졌다.


다행이다. 잘 가렴, 나의 불덩이.


때로는 바라보지 않고 그저 느껴봐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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