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가만히 잠자고 있는 까만 핸드폰 화면을 톡 건드린다. 살짝만 건드려도 화면이 켜지는 게 마치 잠시 졸다 놀라 깨어나면서 나 안 잤는데?라는 태연한 표정을 짓는 친구처럼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나온다. 잠자코 있던 핸드폰을 깨운 목적을 잊지 않고 날씨를 확인한다. 미소를 머금었던 입가는 금세 고민을 머금은 채 오리입이 되어 삐죽 튀어나온다.
작년 7월부터 달리기라는 취미를 삶에 들인 뒤로는 자주 날씨를 확인한다. 한 주를 시작하는 일요일에는 뛸 수 있는 날수를, 비소식이 있는 날이면 시간별 강수량을 보며 뛸 수 있는 시간대를, 종일 맑음이라면 가장 쾌적하게 뛸 수 있는 온도를 확인한다. 언제부터 이리 뛰었다고? 스스로 생각해도 유난이다 정말.
날씨를 확인하는 습관은 좋아하는 달리기를, 땅을 박차 달릴 때의 해방감을, 달린 후에 도취되는 성취감을, 공들인 만큼 성장하는 정직함 같은 것들을 곁에 진득하니 두고 싶은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어느 작가는 삶을 불안과 초조를 밑창에 깔고 내일로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나에게 달리기는 불안과 초조라는 밑창을 평온과 성취라는 밑창으로 갈아 끼워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이다.
봄을 맞아 날이 따뜻해지면서 러닝 취미에도 봄바람이 불어왔다. 잔뜩 굳어 옴짝달싹했던 고관절도 봄이 반가운지 살랑살랑 부드러워지고 도태되는 것만 가는 실력에 움츠러들었던 마음도 느슨해져 달리기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오전, 오후, 저녁 언제 뛰어도 좋은 봄날들을 지나 언제 뛰어도 덥고 습한 여름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오전 8시에 뛰어도 땀이 흥건하니 옷을 적시는 게 오픈형 찜질방이나 다름없다. 그래, 떠오르는 태양의 뜨거움보다는 저물어가는 태양의 잔열 속에서 뛰는 게 낫겠지 싶어 최근에는 저녁에 달리는 날이 늘어만 간다.
저녁 달리기와 아침 달리기의 장단점은 명확하게 상반되지만, 그중 가장 큰 차이는 ‘생각의 정도’이다. 아침 달리기는 눈을 뜨고 세안과 양치를 한 후 여전히 비몽사몽 한 상태로 옷과 양말, 신발에 나 있는 구멍들에 몸을 통과시키거나 끼워 넣는다. 반수면 상태라서 나갈까? 말까? 뛸까? 뛰지 말까? 고민할 정신이 없다. 그냥 그저 몸에 정신이 따라온다. 뛰기 시작해서야 생각이란 걸 한다. ‘오늘은 얼마나 뛰고 올까나’
그런데 저녁 달리기는 뛰러 나가기까지 전쟁이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 아~ 뛰기 싫다는 부정적인 사고, 신발을 신는 동안에는 그냥 뛰지 말까? 스트레칭을 하면서 짧게 뛸까? 피곤한 것 같은데 그냥 쉴까? 타협적인 저자세로부터 철저하게 방어해야 한다. 멈출 생각이 없는 물음표에 답을 내리지 못한 채 그냥 나간다. 그냥 뛰어본다. 역시.. 처음 몇 걸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몸이 스스로 길을 만든다. 그렇게 오늘도 그냥 뛴다. 복잡했던 마음도, 머뭇거렸던 마음도 달리는 동안은 잠자코 멈춰 있다.
돌이켜보면 달리기로 시작한 하루는 조금 더 단단했고, 달리기로 마무리한 하루는 조금 덜 후회됐다. 뭐든 좋다. 둘 다 좋다. 아침에 뛰건 저녁에 뛰건 중요한 건 마음이었다. 그냥 해보는 마음. 대단한 결심, 각오가 아니니 내일도, 다음 날도,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겠다. 이 마음으로 언제든 무언가를 고민하고 주저하고 있을 나에게 이렇게 말해줘야지. 그냥 해보자. 그냥 하자. 그냥 해도 괜찮아-
[요마카세] 화요일: 절찬리 기록 중
작가명: 세렌디피티
소개: 쓰고자 하는 마음에 사로 잡히다가, 이제는 쓰고자 하는 마음을 붙잡아 놓질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버렸습니다. 무엇이든, 어찌됐든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쓰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