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고장 난 핸드폰이 가져다준 것들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나고야 여행 5일째 되던 날, 잘만 동작하던 핸드폰이 돌연 사망했다. 비 오는 날, 사카에 어느 길거리에서 갑자기 지지직거리더니 그대로 죽어버렸다. ‘조금 지나면 다시 켜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그날 눈을 감은 핸드폰은 며칠이 지나도록 눈을 뜨지 않았다.


하, 참 어이가 없다. 한국에서는 아무 문제없던 녀석이 왜 하필이면 여행 와서 말을 안 듣는지. 정말 청개구리 같은 핸드폰이다.


혼자 떠난 여행이었지만, 다행히 이모네 집에 머물고 있었고, 이모부가 가지고 계시던 공기계를 빌려주셔서 지도를 보거나 연락을 하는 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문제는 사진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눈길이 닿는 것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걸 좋아하는데, 그 순간들을 기록하지 못하니 하루하루가 허공에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제야 꺼내 들었다. 캐리어에 묻혀 있던 나의 카메라들. 분명 사진을 찍으려고 가져온 아이들이었지만, 들고 다니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방치해두고 있었다. 집에선 장롱 속에서, 일본에 와서는 캐리어 속에서 긴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에게 마침내 자유를 준 건 내 핸드폰이었다. 마치 핸드폰이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판단하고, 조용히 무대에서 물러나 준 것 같았다. 이쯤 되면 꽤 헌신적인 녀석 아닌가.


아무튼, 그 덕분에 나는 카메라를 꺼낼 수 있었고, 좋은 장면들을 남길 수 있었다. 지금 이렇게 글도 쓰고 있고.


핸드폰은 결국 일본에서 고쳤다. 하루 시간을 비워 사카에역 근처 수리점을 샅샅이 돌아다녔고, 그중 한 곳에서 마침내 수리를 맡겼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발품 팔아본 적은 없는데, 일본에서 수리점 투어를 하게 될 줄이야. 그 와중에 일본어로 이것저것 설명하고 수리를 맡긴 것도 제법 뿌듯한 경험이었다.


수리 기사님이 핸드폰을 분해하시는 동안 나는 마치 수술실 앞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죽은 줄만 알았던 핸드폰이 기사님 손에 의해 다시 켜졌을 땐, 오랜만에 보는 그 잠금화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감격스러움에 어설픈 일본어 감탄사들이 마구 터져 나왔다. 기사님도 덩달아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그렇게 수리점을 나서는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고장 난 핸드폰 덕분에 더 많은 걸 얻었다. 핸드폰이 날 위해 일부러 고장 나 준 건 아닐까. 카메라를 다시 꺼내게 되었고, 일본에서 핸드폰도 고쳐보고, 뭔가 더 생생한 여행이 된 것 같다. 가끔은 이런 작은 사고들이 여행을 더 재미있게 만든다.




[요마카세] 일요일 : 간헐적 포토그래퍼의 나고야 기록

작가: 샨샨

소개: 아주 가끔 사진 찍는 사람. 그래도 찍을 땐 나름 진심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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