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아 외롭다. 소개팅 어플을 켠다. 토너먼트 형식으로 하루 16명의 남자 프로필이 배달된다. 짬이 날 때마다 둘 중에 하나를 고른다. 둘 다 놓치기 싫다면 결제해서 하트를 충전하면 된다. 어차피 매일 배달되는 프로필이니 별 미련도 없다. 엄지손톱보다도 작은 사진이라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럴 땐 한 줄 자기소개 문구가 도움이 된다. 8명을 선택하고 나면 상대방도 둘 중에 한 명씩 고른다. 토너먼트 형식으로 최종 1명과 매칭이 된다. 이렇게 매칭된다 한들 대화를 이어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애초에 상대가 마음에 썩 들지 않거나 흥미를 잃기 쉬운 매칭 구조가 한 몫한다. 소개팅 어플에 매번 들어와 확인하는 것도 일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대화가 통화면 카톡으로 넘어온다. 사생활을 지키고 싶다면 최대한 늦게 시작해도 좋다. 그와 언제 카톡으로 넘어갔는진 모르겠지만 그는 친구들과 여름휴가 중이었다. 친구 3명 모두 여자였다는 사실은 놀라웠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옷을 잘 입었다. 프로필 사진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가방이며 액세서리며 관심이 많았다. 예쁘다고 칭찬할수록 그는 더 신나서 자랑을 했다. 옷 잘 입는 그가 좋았다. 그가 보내준 사진 중 맘에 드는 티셔츠가 있어 같은 브랜드의 다른 색상을 산다. 빨리 그를 만나고 싶다.
옷장을 정리하다 그를 따라 산 티셔츠를 발견한다. 산지 8년이나 지났지만 두 번도 안 입은 것 같다. 매일 1일 1 물건 버리기를 실천하기로 하지만 가장 버리기 힘든 건 옷이다. 그중 반팔티는 몇 장인지도 모르겠다. 기억할 수 있는 것만 소유하고 싶다. 언젠가 입을 수 있다는 마음과 얼마 입지도 못했는데 하는 마음으로 버리지 못하고 쌓인다. 켜켜이 겹쳐진 옷 중 대부분은 운동 대회 참석해서 받은 티셔츠다. 기능성 티셔츠지만 맘에 드는 디자인이 없다. 기념으로 가지고 있던 거라 보내준다. 그러다 그 티셔츠가 튀어나온 것이다. 버릴까 말까 고민한다. 연보라색으로 앞에는 로고가 뒷면에는 바다 프린팅이 된 반팔이다. 수선집에 맡겨 크롭티 기장으로 자르기까지 했다. 진작 버렸어야 했는데 주름만 잔뜩 져 방치된 티셔츠는 볼품없다.
그는 친구들과 여행을 끝나는 날 보고 싶다고 했다. 피곤하니 그 다음날 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빨리 보고 싶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뒤 계속 연락을 이어갔다. 첫 만남 이후 묘하게 톤이 달라진 걸 읽었지만 애써 외면한 채 다음 주 주말에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역시나 그는 거절했고 그 이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도 잊혔을 때쯤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이 왔다. 옷을 좋아하는 내 지인과 그가 우연히 인스타 친구가 되었는데 함께 아는 친구로 내가 떴나 보다. 인스타그램 친구인 것도 잊고 있었다. 매일 입은 옷을 올리던 그였는데 어느새 재테크로 피드 분위기가 바뀌어 있다. 본인은 이직했다며 먼저 아는 체를 한다. 우리가 반갑게 인사할 사이는 아니지 않나. 그가 다니는 회사를 말해줬지만 모르는 회사다. 본인 회사를 자랑하고 싶었구나 한다. 그러다 그가 먼저 밥 먹자는 제안을 한다. 우리 동네까지 와준다기에 알겠다고 한다. 이제 와서 왜 그러나 싶었지만 밥 한 끼 정도야 할 수 있다 생각한다. 집 주변 일본식 덮밥집에 간다. 동네까지 왔으니 내가 결제해야 하나 했지만 내키지 않는다. 먼저 밥 먹자고 하지도 않았으니. 그래도 여기까지 온 수고가 있으니 내가 결제한다. 그는 대번 반을 이체해주겠다고 한다. 그래라 그럼 하는 마음으로 커피까지 내가 결제하고 보내 달라 한다. 카페에 앉자 그는 가방에서 커다란 아이패드를 꺼낸다. 이번엔 아이패드 자랑인가 싶었지만 갑자기 인증을 하란다. 현재 들고 있는 보험을 조회하고 잘 든 보험인지 아닌지 컨설팅을 해준 다한다. 그럼 그렇지. 애써 웃으며 장단만 맞춰주다 자리를 나선다. 집에 가는 길 전화가 온다. 받지 않는다. 그의 고객 리스트에 있고 싶지 않다. 모든 연락 수단을 차단한다.
한참 뒤 모르는 인스타 계정으로 메시지가 와있다. ‘잘 지내고 있네’. 사진을 보니 그때 그 보험 팔이 놈이다. ‘ㅋㅋㅋㅋㅋ’만 남기고 차단한다. 끈질긴 놈. 어지간히 실적 압박이 있나 보다 생각한다. 물건에도 다 기운이 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기운을 막는다. 대학교 1학년 때 동기가 추천한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미니멀리스트가 보편적이지 않을 때 풍수지리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책 이름, 작가 모두 기억나지 않지만 물건을 버리기 시작하니 책이 떠오른다. 내가 갖고 있는지도 모르는 물건은 몇 개인가. 함부로 맺은 인연은 얼마나 해로운가. 더 이상 티셔츠는 아깝지 않다. 헌 옷 수거함에 미련 없이 넣는다.
[요마카세] 월요일 : 비워야 산다
작가: 흐름
소개 : 가볍게 살고 싶다. 뼈마저 비어있는 새처럼. 하루에 한 개씩 물건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매일 물건과 이별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