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인생은 동전 같아요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월요일 아침이다. 월요일 아침이 뭔 대수냐 묻는다면? 대수다. 회사에서 해고통보를 받고 맞이한 첫 평일 아침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백수 1일 차. 재빠르게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주섬주섬 운동복과 텀블러를, 버스에서 읽을 책을 챙기는 분주함으로 채워질 시간의 공간이 텅텅 비어 버렸다. 눈을 뜨는 동시에 실감 났다. ‘아.. 나 백수 됐지..?’ 알람도 없이 부릅떠진 두 눈이 원망스럽다. 쓸데없이 부지런해가지고는! 자고 일어나 달라지는 게 없는 아침이 싫었던 날들의 감정이 탱탱 볼처럼 불쑥 튀어 오른다. 더 튕겨 오르지 못하게 꾹 부여잡는다. 안 되겠다 싶어 몸을 일으켜 F45로 향한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유산소 Day. 참으로 다행일 성싶다. 부정적인 생각을 퇴치할 땐 운동만 한 게 없다.(여러분 운동하십시오!)


침대 위에서의 무력함을 운동으로 상쇄시키는 데 성공한다.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 본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지잉- 플레이리스트를 뒤적거리려 잡고 있던 핸드폰이 진동을 일으키며 손바닥을 간지럽혀온다.


“혜수야! 혹시 생각 있니? 해볼래!? ”


다큐 제작 도와줄 작가가 필요하다는 소식에 나에게 연락을 주신 것이다. 울컥거림이 목 울대에 걸려온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라는 생각부터 든다. 이왕 하는 거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면 그 대상과 안전거리를 두는 편이다. 다큐는 처음이다. 처음이라서 분명 부족함이 있을 것이다. 괴롭고 두려운 건 부족함 그 자체가 아니다. 모자람으로 파생된 어마주할 나의 못난 모습이 두려운 편이다. 근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지금 물불 가릴 쏘냐. 물이든 불이든 뛰어들어야 한다. 무조건이다. 무조건 잡아야 한다.


“언니! 저 할래요! ”


그렇게 백수 1일 차에 백수 신세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을 향해 항상 던지는 질문이 있다. 답이 있긴 한 걸까?? 줄지어 선 수십 개의 모든 물음표가 갑자기 느낌표로 환골탈태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물음표 중 하나 정도는 지우개로 쓱쓱 지워 느낌표로 바꿔 그릴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내 인생에 생각지도 못한 ‘다큐’라는 이름의 기회가 찾아왔으니 눈길조차 주지 않던 잡티 없는 여백에 느낌표가 새겨졌다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이렇게도 기회가 찾아오는구나-


덕분에 일상 루틴은 무너지지 않았다. 여전히 하루의 틈 사이에 뜀박질을 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 잠을 잘 못 잔 이유 때문인지, 피로누적 때문인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녹여 버리기로 작정한 것 같은 더위 때문인지, 숨이 턱턱 막히는 습도 때문인지 좀처럼 뛰기가 힘들다. 평소 뛰는 페이스인데도 심장이 나댄다. 대체 언제 뛰어야 뛸만한 거야?! 날씨 어플을 확인하니 그나마 뛰기 좋은 시간대는 초 새벽, 깊은 밤이다. 하, 생각만 해도 수면 부족이 예상된다. 잠깐! 겨울엔 추워서 뛰기 힘들고, 여름엔 더워서 뛰기 힘들고, 그나마 뛰기 좋은 시간대에는 잠을 못 자서 뛰기 힘들다고? 대체 못할 이유가 왜 이리도 많은 게야? 이래서~ 저래서~ 하나둘씩 핑계대기 시작하니 뛰기 좋은 날도, 뛰기 좋은 시간도 없다. 사실 가만 생각해 보면 바람, 온도, 습도 삼박자가 맞부딪히며 박수 소리를 내는 뛰기 좋은 날은 1년 365일 중 얼마 안 된다. 잘 뛴다는 러너들의 SNS를 엿본다. 이들은 대체 언제 뛰나? 이 더위에도 이 습도에도 그들은 루틴대로 훈련한다. 없는 시간을 쪼개 가며 새벽이며 밤이며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 맞다- 그들은 한겨울에도 꾸준히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혹서기에, 혹한기에 하는 훈련이 봄가을 대회 성적을 만들어요’


마라톤 대회는 봄, 가을에 많이 열린다. 나는 지난여름 본격적으로 러닝을 취미로 들였는데 러너로서 맞이한 첫가을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마라톤 대회가 가을에 열리는지 알겠다.” 온몸에 차오르는 열감을 시원하게 식혀주는 선선한 바람, 후- 후- 내뱉고 들이쉬는 숨의 온도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습도, 그리고 노랗게 붉게, 파랗게 본연의 색깔로 옷 입은 자연들이 펼쳐져 지루할 틈 없는 주로. 뛰기에 좋은 요소들이 가을에 갖춰져 있음을 보았다. 뛰기 좋은 계절(날)에 좋은 성적을 만드는 건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더워도, 추워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어떤 환경이든 하지 못할 이유와 핑계로 만들지 않고 그저 그 속에서 해내는 묵묵함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노력한 자들이 응당 보상받아야 할 결과인 것이다.


무언가를 하기에 좋은 날, 무언가를 하기에 좋은 때를 찾지 말자.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음 대신, 지금을 그때로 만들자. 내가 뛰는 날, 내가 뛰는 이 순간이 뛰기 좋은 때이다. 지금의 순간을 핑계 대지 말자. 지금? 조금 있다가? 내일? 타이밍을 눈치 보는 어리석음을 멈추자.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는 애매한 태도도 집어넣자. 이래도 하는 거지! 저래도 하는 거지! 는 굳은 심지를 마음에 꽂아 버리자. 오늘도 뛰어야지! 그렇게 오늘도 뛰었다. 기회는 내가 만들기도 하는 거니까.


“기회: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적절한 시기나 경우”


찾아오는 기회, 만들어 가는 기회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인생은 동전 같다 여겨진다. 위태롭게 서있다가도 이내 어느 쪽으로든 옆으로 쓰러지고 마는 동전이지만 쓰러졌다 해서 동전이란 사실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이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리며 넘어져도 우리 존재를 훼손하진 못하지 않나.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오는 기회, 때로는 불굴의 의지로 직접 뚫고 만드는 기회. 기회의 두 모습이 그려진 동전을 품고 사는 일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우린 앞으로도 여전히 새로운 기회를 만날 테고 만들어 나갈 테니까-



[요마카세] 화요일: 절찬리 기록중

작가명: 세렌디피티

소개: 쓰고자 하는 마음에 사로 잡히다가, 이제는 쓰고자 하는 마음을 붙잡아 놓질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버렸습니다. 무엇이든, 어찌됐든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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