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바로 이직준비를 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지쳐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아무것도 안하는, 진짜 백수의 삶을 살자니 그것도 불안했다. 퇴사가 결정되고 난 후, 내 머릿속에는 계속 ‘뭔가를 해야만 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불안함을 덮기 위해 ‘퇴사를 하고 나에 대해서 더 탐구하는 시간을 가진다’ 라는 컨셉을 잡았다. 그러다 좋아하던 비건식당에서 파트타이머를 구한다는 글을 보았다. 이 타이밍에? 완전 운명이잖아? 내가 좋아하는 곳, 멋져보이는 사람들, 그들의 황동을 보면서 뭔가 나랑 결이 잘 맞을 것 같았다. 여기서 함께 일하게 되면 나를 탐색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 같았다.
별다른 고민없이 파트타이머에 지원을 했고, 퇴사 2주 후 바로 식당에 출근했다. 낯선 환경에 긴장도 됐지만 설레는 마음도 컸다. 사실 새로운 곳이라는 기대감도 컸지만 몇 달, 아니 몇 년 동안 나를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던 회사와 사람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그 홀가분함이 더 컸다. 회사에 다녔다면 절대 누리지 못했을, 이 시간, 이 장소에 내가 있다는게 믿기지 않다고 느낄 정도로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진짜 퇴사 버프를 제대로 탔다.
실제로 이곳에서의 생활은 나를 많이 회복시켰다. 사장님을 비롯해 나를 아껴주고 챙겨주는 마음, 따뜻한 말, 손님들의 다정한 미소, 그리고 퇴사한 나를 격려해주려 멀리 발걸음해주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여긴 따뜻한 공간이다, 인간적인 곳이다. 상처받고 너덜해진 마음이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마냥 밝았고 행복했다 감사했다. 하지만 퇴사 버프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긍정이 한참 초과했다. 긍정적으로 사는게 뭐가 잘못됐냐 싶겠지만, 그때의 상태는 내가 유지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게 문제였다.
설레기만 하던 연애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반짝이던 여행지도 정착하면 지루해지듯, 이곳에서의 생활도 일상이 되어갔다. 새롭게 나를 찾아보겠다는 다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기계처럼 설거지만 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번달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을지 매일 계산기를 두드렸다. 편해진 관계 속에 오가는 말과 행동에 묘한 불편함이 쌓이기 시작했다. 어느날은 하루종일 눈치만 보다가 시간이 다 간적이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내 말, 행동 어느 부분이 잘못된거지?’ 라는 생각만 하루종일 하다가 결국 그릇을 깨뜨리고 말았다.
그날 저녁 친구와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서러움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뭔가 아차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퇴사를 하고 하고싶었던게 뭐지? 퇴사의 동기가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바로 이직을 하지 않았던 동기는 분명히 있었다. 나에게는 휴식이 필요했고, 그리고 나를 돌볼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 어딘가에 소속이 되고싶은 욕구를 이겨내지 못하고 같은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이미 비슷한 경험은 이전에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취업을 하지 못했을 때 정말 똑같은 이유로 관심도 없던 대학원에 진학했다. 결론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내가 정말 필요하고 원했던 것이 아니니까. 그때도 얼마나 길어질 지 모르는 준비 기간에 대한 불안으로 나를 어딘가에 밀어 넣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밀어넣으며 합리화 하는 이유를 만들었을 뿐. 이대로 계속 일을 이어나가는건 이제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이 잘못된 걸 깨달았을 때 빠르게 멈추는게 최선의 방법이었고, 결과적으로 흐지부지, 깔끔하지 않은 모양으로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그리고 뭔가를 해야한다는 불안감에 상황과 나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다.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마음에 위로를 주는 그 마음들에 너무 큰 기대를 걸기도 했다. 상황을 해석할 때 그게 너무 긍정적이어도 되려 독이될수도 있다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사실 어쩌면 이전의 경험에서도 똑같은 생각을 했겠지만 나는 그 사이에 잠깐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했나보다.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온다면 나는 또 어떻게 할까? 지금 쓴 이 글을 다시 기억하고 견디지 못했던 시간들을 다음에는 견뎌내고싶다.
[요마카세] 작품명 : 어쩌다 퇴사
작가명: 리엠
소개: 누구보다 열심히 월급받으면서 살던 직장인, 계획도 없이 퇴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