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가로줄이 잔뜩 그려진 메모장과 펜. 1부터 100. 숫자부터 써 내려간다. 이제부터 난관이다. 100가지의 버킷 리스트를 적어야 한다. ‘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한 번은 해보고 싶은 것’. 굉장히 거창하게 들린다. 대단한 것들을 적어야 할 것 같지만 내용은 상관 없다. 사소해도 괜찮다. 사고 싶고, 먹고 싶고, 하고 싶고, 가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들. 그것이 무엇이든 마음이 향하는 것들을 적으면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 다시 가기, 숏컷 해보기, 탈색 해보기, 매 분기 국내 여행 가기, 일년에 한 번은 해외 여행하기 , 매달 책 2권 이상 읽기, 카메라 사서 출사 나가기, 언젠간 내 이름을 건 책 출간하기, 언젠간 마라톤 10k 대회 나가보기.
…. 18번까지는 막힘 없이 적어 내려갔는데 20개가 넘어가니 물기 없는 빨래를 짜듯 마음을 쥐어짜내야 했다. 현실 가능성 따위는 제쳐두고, 뭐든 적어도 되는 건데 뭐가 이리도 어려운 걸까. 결국 100가지를 못 채웠다. 100개는 무슨.. 30개를 넘어가니 마음은 마치 골목골목을 헤매다 담장벽을 만나 나아갈 길을 잃은 듯 턱 멈춰 섰다. 버젓이 남은 수십 개의 빈칸이 숙제처럼 여겨졌다. 뭐! 지금 당장은 이 정도면 어때. 나중에 생각나면 그 때 또 적으면 되지! 그대로 메모지를 책장에 꽂아 넣는다.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흐른(아마도 1년 이상) 어느 날, 책장을 뒤적이다 메모장을 발견한다. 그 메모장을 보고 오래도록 보지 못한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은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쓸 수 있는 메모장이냐, 가용 여부를 판단해야 할 대상 뿐이었다. 이런 저런 메모가 적힌 낱장을 넘겨보던 중 잊고 지냈던 버킷 리스트들이 까, 꿍! 하며 등장한다.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 웃음 짓게 만드는 미소, 그 때도 이걸 원했구나 싶은 애틋함 같은 것들이 움트며 메모장의 쓸모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궁금해졌다. 30개 남짓 되는 것들 중에 얼마나 이루었을까. 하나, 둘… 열 두 개? 해내고 말겠다는 절실함으로 살지 않았음에도, 심지어 버킷 리스트라고 적어두었다는 사실 마저 잊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룬 것들.. 성취감보다는 스쳐 지나간 깨달음이 달콤하게 삼켜졌다. 무언가를 바라고 소망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흔적이 되어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되어주는 거 아닐까-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떠난 여행에서 여행기를 쓰며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나를 발견했다. 공개적으로 쓴 여행기에 달리는 댓글들의 칭찬이 좋았고, 그 칭찬은 마치 내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준 것처럼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 때를 계기로 ‘글 쓰고 싶다’생각한 것 같다. 글의 형태는 상관 없었다. 그냥 나만의 힘을 가진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뿐이었다. 그렇다 하여 ‘작가’라 불릴만한 직업을 꿈꾼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시 내게 ‘작가’라는 타이틀은 소수에게만 부여될 수 있는 특권처럼 여겨졌으니까 감히 넘보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N년 차 방송작가로 일하며 ‘작가님’이라 불림 받고 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요마카세 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내 이야기’를 쓰고 있다. 별 의미 없이 품었던 우연한 그 마음이 지금의 나로 살아가게 하고 있었다.
최근 선배와 밥을 먹는 도중 선배는 물어 오셨다. “그동안 해왔던 것 중 어떤 게 가장 재밌었어? 앞으로 어떤 걸 해보고 싶니?” 첫 번째 질문에는 잠깐의 고민이 필요했던 반면 두번째 질문엔 일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선배는 말씀하셨다.
“이미 한 번 시도해봤는데, 아직 미련이 남았다는 건 계속 가봐야 하는 거야.
멈추지 말고 가 봐. 그러면 어느 순간 가까워져 있을 거야”
용기 내어 가보려 한다. 보장된 거 없는 확신할 수 없는 그 길을. 느리더라도 묵묵히,
누군가의 비웃음을 살 수도 있고, 터무니 없다 생각될 수도 있고, 당장의 용기만 있으면 실현 가능할 수도 있고, 기약 없이 매달려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요할 수도 있는 마음의 소망들. 그 모습은 아주 제각각이겠지. 두서도, 맥락도 없이 나타났다가 기억 너머로 홀연히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또 어떤 마음은, 기꺼이 돌보지 않으면 버틸 수 없도록 애 태우기도 할 마음들. 그런들 어떠하리. 한 번 뿌려진 마음은 스스로 방향을 찾아 나서며 보일 듯 말 듯 살아남는다. 그리고 언젠간 시간이 흘러 예상하지 못한 때에, 상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태어나게 되지 않을까.
원하면 생긴다. 못 이룰 것 같아도 꿈꿔.
언젠가는 이루어져, 진짜로.
꿈을 꾸면 그 방향으로 살게 되니까.
[요마카세] 화요일: 절찬리 기록중
작가명: 세렌디피티
소개: 쓰고자 하는 마음에 사로 잡히다가, 이제는 쓰고자 하는 마음을 붙잡아 놓질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버렸습니다. 무엇이든, 어찌됐든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쓰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