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백수보다 백수인 딸로 사는게 더 서럽다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세림아 그분한테는 너 그냥 계속 XX(전 직장) 다니고 있다고 얘기할게?”

“…. 왜?”


백수인 나는 밥값을 아끼려고 집에서 밥을 해먹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날도 부엌에서 점심을 만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세림아 너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아니 없는데”

“너 OO 사모님 알지? 그 사모님 조카가 캐나다에서 왔는데 (..생략..), 너 생각이 나시더래. (..생략..) 한번 만나 볼 생각 있어?”


왜 아직 만나는 사람 없냐며 걱정하는 엄마에게 “내 친구들은 엄마들끼리 교회에서 소개시켜주던데, 엄마가 좀 해줘봐” 라고 말했다. 그런데 진짜로 엄마가 뭔가를 물어왔다. 어차피 만나는 사람도 없겠다, 만나서 손해 볼 것도 없으니 ”상관없어, 내 연락처 드려.” 라고 말했다. 엄마는 이어서 말했다.


“세림아 취업 준비는 하고있어? OO 사모님에게는 너 XX 계속 다니고 있다고 말할게?”

갸웃. 뭐하러?

퇴사한지 9개월이 지나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 다시 회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시기였다. 엄마는 내가 곧 취업을 할테니(는 사실 엄마의 희망사항), 취업을 하면 그 때 이직했다고 말하라고 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그렇게 말해. 그런데 나는 상대분 만나면 지금 일 쉬고있다고 말할거야”

“….그래? 그럼 뭐라고 하지?”

“뭘 뭐라고 해, 그냥 일 쉬고있다고 해.”

“그래, 알았어~“

찜찜하게 통화가 끝나고, 하던일을 마저 하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친언니랑 메세지를 했다. 엄마랑 내가 통화를 할 때, 언니도 옆에 있었다고 했다. 애가 둘인 유부녀 언니는 그 대화가 재미있었나보다.


너 이제 캐나다 이민가는거 아냐?
뭐래 아직 연락도 안왔어 ㅋㅋ
엄마가 너랑 전화하고 나서 엄청 심란해하더라. 왜 XX를 그만둬가지고~ 그러더라
아니 웃겨. 그리고 그 남자 다시 캐나다 갈거라며. 그럼 더 부담 없는거 아니야? 직장 없으면 한국 떠나도 미련 없는거잖아
그러니까 나도 엄마한테 그렇게 얘기했어ㅋㅋ


XX가 뭐 대순가. 뭐 얼마나 대단한 회사였다고. 엄마는 거기서 내가 맘고생해서 나온 것도 알면서. 그리고 내가 마냥 탱자탱자 놀기만하는 백수인가? 부모님 손 안벌리고 내 밥벌이 하고 사는데. 회사 안다니는게 그렇게 부끄러울 일인가? 언니랑 메세지를 하고나서 서운한 생각에 괜히 볼멘소리들이 마음속으로 쏟아졌다.


이틀 뒤는 상담을 하는 날이었다. 퇴사 이후에도 계속되는 섭식장애로 혼자서는 극복이 어려울 것 같아 시작한 상담이었다. 상담이 끝나기 5-10분 전, 다른 별일은 없었냐는 질문에 엄마 주선의 소개팅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그때 ‘아직 XX 다닌다고 할게?’라고 했을 때, 엄마한테 실망스러웠어요. 저는 퇴사하고 나서도 늦잠을 잔적도 없고, 운동도 쉰적이 없어요. 계속해서 뭘 해야할지 고민하고 움직였어요. 그런데 엄마한테 저는 그냥 어느 회사를 다니는지만 중요했나봐요. 엄마한테 제 정체성은 그냥 XX 였나봐요”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언니랑은 ‘웃겨 진짜 ㅋㅋ’라고 하면서 넘겨놓고, 갑자기 서러웠다. 엄마랑 잘 이야기 해보라는 선생님의 말로 상담은 마무리 헸지만, 나는 근처 카페에 가서 30분이 넘도록 계속 울었다.

그 회사가 뭐 대순데, 뭐 얼마나 대단한데. 라고 말은 했지만, 대수였고 대단했다. 부모님 입장에서 이름 들으면 알법한 회사에 정규직으로 다니는 것, 그만한건 없으니까. 프리랜서, 사업… 어떤 번지르르한 구실이 있든, 내가 얼마나 부지런히 살든 말이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가끔 집에 갈 때 마다 회사는 아직이야? 만나는 사람은 아직 없어? 라며 항상 같은 질문만 하는 엄마가 유독 야속했다. 남들 다 하는거, 그거 좋다고. 그런데 마치 내가 무슨 컨베이어벨트에서 하자가 있어서 다음 스텝으로 못넘어가는 그런 상품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엄마는 나에 대해 그렇게 표현한 적이 없었다. 정말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을수도 있겠지. 그런데 나에게는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자랑스럽지 않아? 내가 아는 언니는 나이가 40이 넘게 결혼도 안하고, 이렇다 할 직장도 없어. 그런데 그 언니네 엄마는 사람들 앞에서 마음이 진짜 멋진애라고 말하더라. 나한테도 그렇게 해주면 안돼? 내가 뭐가 그렇게 부족해보이고 못나보이는데?” 이 일이 있기 전, 내가 하는 일을 못미더워하는 엄마에게 서러움에 울면서, 말 그대로 ‘떽떽거리며’ 말했다.


이번에는 혼자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엄마였으면 우리딸 회사 그만두고 나서도 단 한번도 늦잠도 안자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부모한테 손도 안벌리고. 얼마나 야무진지 모른다. 얘는 뭘 해도 알아서 잘하는 애라 걱정 안한다. 그렇게 말했을거라고.


백수로 사는 것 보다, 백수인 딸로 사는게 더 부담스러웠다. 서러웠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면 괜히 서러움만 커져 눈물을 더 멈출수가 없어졌다. 그깟 회사가 뭐라고. 그게 뭐라고. 나는 계속 어떤 상황에든 나만의 답을 찾으면서 부지런히 나아갔는데. 그게 꼭 엄마가 원하는 답이 아닐수도 있는거잖아.


‘답’이라고 했지만, 나도 내가 원하는걸 잘 모른다. 결혼, 별로 하고 싶지 않다가도 갑자기 결혼이 하고싶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결혼을 하고싶은걸까? 남들이 다 하니까? 왜 하고싶은지에 대한 이유를 아직 못했다.


회사, 큰 잘못만 안해도 버티기만 하면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 너무 좋지. 그런데 왜 다녀야 하는지, 어디를 다녀야 할지 그 이유를 찾지를 못했다. 월급은 중요한 이유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안됐다. (글을 쓰는 지금은 이미 새로운 회사를 입사를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았냐고 하면 맞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그냥 대부분의 내 또래들이 회사를 다니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들 다 하는 그런 것들이 좋아보였나? 남들 다 하는건 나도 해야겠으니까? 내가 원하는게 뭔지도 모르면서 의문만 잔뜩 들어서있는 나였다. 그런 나를 그냥 무한정 지지해주고 믿어주고 응원해줄 사람이길 바랐는데, 그런 엄마가 내가 원하는 반응이 아니었다.


나도 답을 찾지 못해 계속 혼란한데, 스스로 떳떳하다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계속해서 증명해야하는 상황들이 너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당당한, 멋있는 백수라며 친구들은 나를 응원해줬지만 사실 정작 응원받고 인정받고 싶었던 대상은 부모님이었다. 그런 부모님 앞에서 백수인 딸인 나는 계속 작아지기만했다.


그래서 그 소개팅은 어떻게됐냐고?

연상인 여자는 부담스럽다고 퇴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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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마카세] 작품명 : 어쩌다 퇴사

작가명: 리엠

소개: 누구보다 열심히 월급받으면서 살던 직장인, 계획도 없이 퇴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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