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엄마를 잘 따라다니네, 아이가 몇 개월이에요?”
첫째 조카가 3살이 되던 해 내가 가장 많이 받아본 질문이다. 얘가 대략 3 살인건 아는데… 개월 수…? 잘 모르는데…..?. 대답보다 머뭇거림이 먼저였다.
“아.. 몇 개월이지? 32개월인가..?” 아이의 나이를 모르는 엄마라니? 이건 누가 봐도 엄마의 자격이 너무 없어 보이는데..? 그러고 나는 곧장 “ 아! 엄마가 아니라 이모예요!”라고 말하며 재빨리 의심의 눈초리를 피했다.
“그렇지 누가 봐도 애엄마 같은 나이는 아닌 것 같더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행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아직 25살이었다. 엄마라고 불리는 게 은근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아이 하나 있어도 어색하지 않아 질 나이가 되었을 때다. 둘째 조카를 데리고 다닐 때는 “ 아. 엄마는 아니고요.. 이모” 이렇게 한 템포 느긋하게 대답하는 여유가 생겼다.
엄마예요?라는 질문은 이제 끝날 줄 알았다. 셋째 조카가 등장했다. 이제는 다들 엄마라고 받아들이는지 질문받는 횟수가 줄었다. “엄마 아니고요 이모요!” 온몸으로 틀린 말을 정정하고 싶어 했던 나이가 그립다.
아무튼, 나는 엄마가 아닌 이모다. 내가 아이들과 실컷 놀아주어도 엄마가 등장하면 이모는 바로 2순위로 밀려난다.
결국 찾는 건 엄마라는 게 서운하다. 오늘 내가 하루종일 사랑과 정성을 쏟아부었는데? 사탕 안주는 엄마보다 사탕을 두 개나 사주는 이모가 언제는 또 최고라면서? 하지만 이모라는 타이틀이 좋을 때가 많다. 나에게는 늘 “언니!”” 형부!”를 자유롭게 외칠 수 있는 조커 카드가 있다. 아이들과 놀다가 자리를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나 열려 있다. 그래서 2순위인 가 딱히 나쁘지 않다.
아이들을 혼낼 때도 딱 2순위만큼이다. 가끔은 쓴 사랑도 보여주어야 하는 부모의 책임도 덜하다. 이모는 부모보다 더 달콤한 사랑만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도 이모 눈에는 그냥 귀여운 어리광으로 보인다.
어느덧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첫째 조카는 부쩍 미용과 아이돌에 눈을 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엄마보다 느슨한 이모인 나를 가장 먼저 찾아온다. 슬며시 필통 속 아이돌 사진을 보여주며 “이모 나도 아이돌 춤추는 거 배우고 싶어?” 이야기한다. 탕후루 사진을 보여주며 “이모 나 이거 정말 정말 먹어보고 싶어”라고 재잘거린다. “해봐!! 이모가 엄마한테 잘 말해줄게!” 대답한다. 이모만 줄 수 있는 자유를 선물해 준다. 어릴 때 내가 엄마가 쉽게 허락하지 못하는 것들을 차곡차곡 모아 이모한테 간 것처럼 말이다.
언제라도 조카들이 내게 편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겨 어른의 도움이 필요할 하지만 차마 부모님에게 말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생기긴다면 스스럼없이 아이들이 나에게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아닌 이모로 아이들에게 가장 편안함 품이 되고 싶다. 2순위라 참 다행이다.
[요마카세] 목요일 : 어린이의 위로
작가 : 아리
소개 : 어쩌다 조카 3명과 살게 된 싱글레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