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지하철에 우산을 두고 내렸다. 신촌역 개찰구에서 카드를 찍자마자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에 무작정 탄다. 타고 보니 신도림행 열차다. 몇 정거장 더 가야 하기에 마지막 정차역인 신도림역 전역에서 하차한다. 갈아타야 한다는 건 선택지에 없어 급하게 내리느라 다리 밑 접어둔 우산을 깜빡한다. 밖은 여전히 비가 쏟아진다. 우산을 사긴 싫다. 집에 있는 우산만 해도 3개다. 장우산, 편의점에서 산 비닐우산, 회사에서 받은 3단 자동 우산. 그나마 다행인 건 그리 아끼지 않는 우산이다. 우산살이 하나 나가기도 했다. 예기치 못한 비를 만났을 때 쓰려고 회사 사물함에 가져다 둔 비상용이다.
쓰임이 같은 물건은 1개만 두고 나머지는 처분해야 한다. 미니멀라이프 책에서 추천하는 물건 처분 원칙이다. 우리 집엔 손톱깎이가 2개다. 하나는 내가 가져온 것, 다른 하나는 반려인이 가져온 것이다. 발톱 깎을 때 쓴다고 두 개다 필요하단다. 손톱과 발톱을 구분해야 하는가? 함께 쓰는 물건을 처분하려면 반드시 상의를 거쳐야 한다. 내 맘대로 처분했다가 상대가 말도 없이 새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 생각한 뒤로 집에 새로운 물건을 들이는데 신중하다. 손톱깎이 하나로 줄인다고 해서 수납공간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비워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한 개 만 있었으면 좋겠다.
예전엔 우산 하나 잃어버린 일쯤은 그리 마음에 두지 않았다. 물건 잃어버리는 일이야 흔하니까. 미니멀라이프의 본질은 물건을 잘 사용하는 데 있다. 잘 사용한다면 소유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비운다. 그렇다고 소유한 물건을 모두 내다 버릴 필요는 없다. 아직 버릴 준비가 되지 않는 물건이 있다면 가지고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면 된다. 비누를 다 닳을 때까지 써본 적 있는가? 호텔에서 사용한 비누는 다시 쓰지 않고 버린다는 말을 듣고 난 뒤로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챙겨 온다. 애초에 지우개 만한 비누라 2주면 끝을 볼 수 있다. 물건을 끝까지 다 쓰면 빼곡히 적힌 오늘의 할 일에 모두 처리 한 기분이다. 책임지지 못했다는 마음에 우산이 자꾸만 떠오른다. 2년은 거뜬하게 쓸 수 있었을 텐데, 더 많은 비를 맞이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
쓰임이 겹치는 물건이 손톱깎이뿐이겠는가. 집에서 쓰는 안경, 사무실에서 쓰는 안경, 투명 뿔테 안경 총 3 개다. 뿔테 안경의 경우 침대에 아무렇게나 둬 깔고 앉아 안경테가 틀어졌다. 동네 안경점에 갔더니 구매처가 아니면 수리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수리하다 부러졌을 때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안경을 고치러 1시간 30분 거리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냥 버리자니 아깝고 두자니 손이 가지 않는다. 안경알은 두고 새로운 안경테를 살까 하지만 3개까지 필요 없다. 제자리에 안경을 뒀으면 수리할 필요가 없을 텐데. 애초에 안경을 3개나 갖는 게 아니었는데. 늘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빼앗긴다. 세네카가 말했다. 삶은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낭비한다고. 물건을 살 땐 버릴 생각부터 해야 한다. 분명 손톱깎이와 안경과 같은 처지가 되어버릴 테니.
우산은 한 개로 충분하다. 사물함에 우산을 넣지 않아도 일기예보를 살펴 집에서 갖고 나서면 된다. 신념을 지키려면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여기저기 물건을 비축하면 끝도 없이 물건이 불어난다. 사람도 물건도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작은 일이 일 나는 건 신이 주신 기회라는 말이 있다. 더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 잘 대비하라는 말이다. 2호선에 두고 온 우산이 말한다. 더 중요한 걸 잃어버리지 말라고. 네 삶에 뭐가 중요한지 기억하라고.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요마카세] 월요일 : 비워야 산다
작가: 흐름
소개 : 가볍게 살고 싶다. 뼈마저 비어있는 새처럼. 하루에 한 개씩 물건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매일 물건과 이별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