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나는 여전히 괴롭다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나는 명상을 하는 요가지도자이다. 그리고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때론 직장에서 평온을 잃지만, 호흡과 함께 평온함을 찾아낸다. 때론 커리어 우먼처럼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나서고, 때론 평온을 가르치며 차를 우려낸다. 나는 전공을 살려 전문성을 지켜냈고, 나의 요가원은 아늑하고 따스하다. 우리 가족은 티격태격하며 애증의 관계로 서로를 미워했다가 사랑한다. 나를 아껴주는 주변사람들은 어쩌면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할지도 모르겠다. 모난 것 없는 나의 생활은 모든 것이 평범하고 완벽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괴롭다.

KakaoTalk_20251022_221402020.png 삶을 살아낸다는 것


집착과 노력사이 그 어떠한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의 삶의 모든 것이 완벽한데 도대체 무엇이 그리 괴롭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신에게 묻고 싶다. “신께서는 어찌하여 저에게 괴로움을 선물하셨습니까?”


고타마가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고행을 시작한 것이 과연 자신의 생활에 불만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끔 그냥 낙관적인 사람이나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은 보면 부럽기 짝이 없다. 그들은 마치 괴로움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그러나 나는 “괴로움”을 신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나에게 오는 괴로움 “덕분에” 나는 타인을 위로하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명상을 하는데 왜 아직도 괴로워? 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저 알아차릴 줄 알뿐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소리 소문 없이 슬며시 내 몸 안으로 파고든다. 때로는 괴로움 때문에 사람들에게 사랑과 친절을 나눌 수 있게 되지만, 때로는 괴로움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고자 한다.


나에게 주어진 괴로움은 양초가 녹듯 나의 몸을 하염없이 무기력 해지게 만든다. 인생(人生, 사람의 생명)이란 크나 큰 양초는 지극히 천천히, 지극히 뜨겁게, 지극히 찬란하게 타고 있다. 다 타 없어져 불씨조차 없어질 때까지 몇 날 며칠을 더 견뎌내야 할까. 까마득하다.


죽음이라는 것, 그리고 윤회의 사슬을 끊고 완전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바로 니르바나, 열반(涅槃)이다. 나는 이 고통을 다시 맛보지 않기 위해 죽음을 성스럽게 준비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 수행을 한다는 것은 현생의 자유로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얼마 전, 상해에 출장을 갔다. 거기서 감기에 걸렸는데 열도 나고, 기침도 하고, 목도 아팠다. 해외에 잠시 있는 터라 병원 갈 여유도, 상비약도 갖추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새벽에 두툼한 이불을 부여잡고 콜록콜록 기침할 때마다 바늘 찌르는 듯한 목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던지. 잠에 들려고 하면 기침이 나오고, 부들부들 떨리는 몸은 나의 통제 밖이었다.


그 때, 돌아가신 할머니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부터 계속 아프다며 도움을 요청하셨는데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잘 죽고 싶다.”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잘” 죽기 위해서는 나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프지 않게 내 몸을 화분 가꾸듯 정성을 쏟고, 내 마음은 아이 달래듯 차분해야 한다.


“잘”이라는 수식어에 속지 않기로 했으면서, 죽음에 있어서는 “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다. 마치 자이나교인들이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위해 일생을 수행하듯, 나 또한 “잘 죽기 위해” 나의 양초를 가꾸고 있다.


괴로움이란 나에게 오는 그저 그런 것이다. 왔다가 가기도 하고, 갔다가 오기도 한다. 어느 날 불쑥 찾아와 나의 몸과 마음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떠나간다. 그러나 나는 그저 그 순간 순간을 알아차릴 뿐이다.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거기서 호흡할 뿐이다. 그 뿐이다. 나의 인생이란 양초는 그렇게 서서히 타고 있다. 인내심이 바닥날 듯 너무나도 천천히.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 어쩌면 나의 또 다른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열반(완전한 죽음)을 향한 길에 있어 내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는 데에는 아낌없는 정성을 쏟기로 했다. 집착과 노력사이 그 어떠한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해서, 그리고 나의 감정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해서 괴로움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그러하다. 주어진 것에 그저 그런대로 받아드리는 것, 그것이 나의 깨달음이다. 현생은 고통스럽고, 어지럽다. 나는 그저 흘러가는 나의 삶을 여여하게 바라볼 뿐이다.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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