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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Nov 04. 2024

[월요일] 사이좋은 노부부가 되고싶어

오래가는 사랑의 비밀 : 따로 또 함께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부부끼리 무슨 손을 잡아. 싫어하는 농담이다. 부부는 가족이고, 가족끼리 애정표현은 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할머니가 되어도 보란 듯이 손 잡고 다닐 테다 씩씩댄다. 현실은 하루 걸러 씩씩대는 우리다. 사이좋게 지내다가도 먼지만 한 이유로 토라진다. 하루에도 수 번 ‘나 사랑해?’를 묻는 짝꿍과 ‘나 싫어하지?’ 반문하는 나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론이 왜 동화책에 나오는지 알겠다. 혹시 동화에만 있는 결론이 아닐까?


 싸우는 이유는 하나다.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상대는 내가 아니다. 내 맘대로 될 리가 없다. 커피를 사 먹고 싶은 짝꿍과 집 앞 카페에 갈바엔 집에서 내려 먹고 싶은 나. 기왕 사 먹는 거 근사한 곳에 가고 싶은 나와 멀리 나가고 싶지 않은 그. 커피 한 잔 마시기도 쉽지 않다. 어르고 달래 집에서 떨어져 있지만 걸어갈 순 있는 공원 앞 스타벅스로 간다.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편한 자리는 이미 만석이다. 주문하고 몇 마디 나눈 후 각자 할 일을 한다. 따로 또 함께.


 재즈가 흘러나온다. 둘 다 좋아하는 플레리스트다. 짝꿍은 침대에 누워 웹툰을 보고 나는 거실에 앉아 글을 쓴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린다. 따뜻한 차를 내린다. 창문을 여니 제법 쌀쌀하다. 함께 한다는 건 어떤 걸까 생각한다. 뭐가 그리 웃기는지 방에서 이따금씩 웃음소리가 들린다. 편안하다. 한참 키보드를 두드리니 손만 시리다. 조용히 방으로 들어간다. 몽롱한 그의 옆구리에 손을 넣는다. 비명이 터져 나온다. 만끽하던 평화를 깬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 행복할 수만은 없겠지. 그래, 오래오래 ‘이따금씩’ 행복하게 살고 싶다. 죽네 마네 싸워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한 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햇살 좋은 날이면 빨래 돌려놓고 산책 나가는 그런 삶. 서로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몇십 년이 지나도 사랑한다는 말에 인색하지 않은 사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절대 놓지 말아야 하는 건 꼭 잡은 두 손이길. 오래가는 사랑이길.


 골목길 노부부가 걸어간다. 할아버지가 앞서가고 할머니가 뒤따른다. 할아버지는 손을 뒤로 뻗어 할머니에 내민다. 두 손을 꼭 잡고 걷는다. 동화에만 있는 건 아니구나. 보기 좋아 한참을 바라본다. 자세히 보니 두 분 손 사이에 뭔가 있다. 짜리 몽땅한 3단 우산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손이 아닌 우산을 꼭 잡고 있었다. 웃음이 터진다. 느슨한 연대, 오래가는 관계의 미학인가. 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손이 아니라 우산이구나! 동화 속 결말에는 사실 괄호가 쳐있는지도 모른다.


저 둘은 (같은 방향으로 걷되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며, 따로 또 함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fin-






[요마카세] 월요일 : 그냥 살 순 없잖아?

작가 : 흐름

소개 : 이해할 수 없는 인생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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