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매일 가계부를 쓴다. 2016년부터 쓰기 시작해 올해 9년째다. 1일 1 버리기 실천하기로 한 뒤로 옷을 사지 않았다. 올해는 1월에 산 10만 원짜리 요가복과 22만 원 정상 셋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작년 옷에 쓴 금액 279만 원과 비교하니 엄청난 성장이다. 가볍게 살고 싶다 생각한 뒤로 물건의 끝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사고 싶은 열망이 잠깐 들었다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내 것이 되는 순간 금세 흥미를 잃을 거란 걸 안다. 가장 많이 비운 곳도 옷장이다. 새로운 물건을 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버려야 하는 나만의 기준도 생긴다. 티셔츠 하나에도 버리지 못할 이유가 수십 가지다. 유독 옷 구매에 엄격했던 이유다. 옷걸이에 걸 수 있는 만큼만 소유하고 싶다. 접어서 쌓아두는 옷 없이 한눈에 내가 가진 옷이 보였으면 좋겠다.
한 청년이 한식 뷔페에서 족히 4명은 먹을 만한 양을 쟁반 가득 퍼 끝까지 비우는 영상을 본다. 항상 웃는 얼굴인 그는 청년 가장이다. 아픈 형과 노쇠한 부모를 돌보는 그의 직업은 공사 현장 중에서도 강도 높은 일인 비계공이다. 그런 그가 사랑하는 건 달리기다. 25년도 봄 갑자기 마라톤 판에 나타난 심진석 선수는 매주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10번 중 8번은 우승한다. 전문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그의 훈련장은 아침저녁 출퇴근 길이다. 흔한 스마트 워치도 없이 러닝화도 아닌 공사장에서 신는 작업화로 출근길 8km를 달린다. 그 앞에서는 어떤 것도 핑계가 된다. 힘든 기색을 내비치는 법도 없다. 어떤 질문에도 다 괜찮다며 자신은 너무 건강하다 답한다. 일을 마치고 달리기 전 촬영팀과 헤어질 때 사람들을 향해 뒤로 돌아 걸으며 끝없이 웃으며 인사한다. 에어팟을 깜빡해서, 비가 와서, 피곤해서, 귀찮아서, 러닝화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뛰지 않은 날이 스친다. 그가 가진 건 무엇이고 내가 갖지 못한 건 무엇인가.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세상 전부를 가진 듯 웃으며 달린다.
출근길 지하철 촘촘한 사람들 사이에 끼여 타면 옆사람 핸드폰 화면이 보일 만큼 서로가 가깝다. 11시 방향에 서있는 여자분은 옷 쇼핑이 한창이다. 그 어플에서 나와 다른 어플을 누른다. 자라, 29cm, 에이블리 등 9개 이상 옷 쇼핑 앱이 담긴 폴더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한다. 폴더 이름이 흥미롭다. “지름신ㅠ” 본인도 사면 안되는 걸 알면서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들어가는 처지겠지. ‘사지 말아야지’ 스스로 막는 순간 더 갖고 싶다. 억지로 사이를 갈라놓은 연인처럼 서로를 더 끌어당긴다. 갖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는 건 ‘단순하게 살기’에 도움 되지 않는다. 갖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 초연해져야 한다. 원래 욕망이 없는 사람처럼말이다.
심진석 선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기 페이스를 확인하기 위한 스마트 워치도, 발이 편한 러닝화도, 가볍고 예쁜 러닝복도 없다. 이 모든 게 없어도 매일을 달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가 매고 달리는 배낭엔 안전모와 안전 장갑, 물통, 신발이 전부다. 달리기가 그를 더 먼 곳으로 데려다주는 게 틀림없다. 그와 똑같은 표정을 한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어떤 것도 욕망하지 않지만 다 가진 표정, 꿈으로 반짝 이는 사람이다. 꿈은 꿈을 꾸는 사람을 더 크고 먼 곳으로 향하게 한다. 꿈 앞에 다른 일은 작아진다. 눈보라, 피곤함, 러닝장비는 그의 달리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새 옷을 갖고 싶다는 욕망은 우리를 어떤 곳으로도 데려다주지 않는다. 정돈된 삶을 살고 싶은 소망은 필요 없는 물건을 처분하게 만들고 지구와 미래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은 구매에 신중을 더한다.
심진석 선수의 일상을 촬영한 영상은 4일 만에 100만 조회수를 기록한다. 단순히 달리기가 유행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댓글에는 “나는 또 어떠한 핑계를 대었는가”, “순박해 보이지만 거대한 태산 같다”, “나는 무얼 쫓으며 살았는가.”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그를 향한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다. 옷장 속 버리지 못한 옷들로 가득 찬 내게 삶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꿈꾸는 사람의 모습은 어떤지, 진짜로 욕망해야 하는 건 무엇인지 알려준다.
[요마카세] 월요일 : 비워야 산다
작가: 흐름
소개 : 가볍게 살고 싶다. 뼈마저 비어있는 새처럼. 하루에 한 개씩 물건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매일 물건과 이별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