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어느새 추운 계절이 한걸음 다가왔다.
손가락 끝이 시려운 걸 보니 말이다.
이 계절을 여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 어반자카파의 〈코끝의 계절〉을 듣는 일이다.
점차 나아지겠지 혼자 내렸던 그 모든 결론이
마치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져버리던 날
그저 한숨만 내쉬던 날
도저히 견딜 수 없다 누군가 내게 건네온 계절
코끝에 먼저 와버린, 차가운 겨울
내내 오지 않길 기도해도
이젠 무색해져버린 따뜻한 내 두 손
다시 어디론가 가야 하는 나
길이 있기만을 바라며, 두 손으로 훔쳐낸 눈물
어지러운 공기 나 숨이 막혀
가만히 두 눈을 다시 감고 내일이 오길 기도해본다
냉정한 공기가 다시 겨울을 내게 건넨다
그렇게 그 노래 속에서, 겨울을 맞이한다.
겨울은 나에게 그다지 달갑지 않은 계절이다.
유독 시린 공기 속에서는 이유 모를 슬픔이 묻어난다.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슬픔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 ‘계절성 우울증’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햇빛이 짧은 겨울에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어두워진다는 내용이었다.
여름을 가장 좋아하는 나에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겨울은 언제나 쓸쓸하다.
이상하리만치 가슴 시린 감정이 이따금 올라와,
그 마음을 책으로나마 조금 눌러보기로 했다.
최근 참석한 독서모임에서 던져진 한 질문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는가, 아니면 더 깊은 상처를 남기는가?”
그날 함께 읽은 책은 욘 포세의 3부작이었다.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 아슬레와 알리다는
바로 이 질문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숭고함과 파괴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들의 관계는 결백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진실하다.
욘 포세는 그들을 통해 묻는다.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말하는 순간, 무너질 것만 같아서
그저 입을 다물 뿐이다.
그들의 침묵은 무응답이 아니다.
그것은 말과 침묵의 경계에 서 있는 하나의 숨이다.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준다.”
작가의 이 말은 작은 울림이 되어, 오래도록 내 마음을 채웠다.
나는 늘 모든 것을 이해하려 했고,
모든 것에는 반드시 설명이 필요하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욘 포세의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때로는 침묵이,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오히려 더 깊은 이해가 된다는 사실을 배운다.
그의 글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아주 진솔하다.
꾸며내지 않은 한마디 한마디가 인간의 숨처럼 다가온다.
그는 말과 문장 사이에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쓴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 남을 것인가.”
“내가 떠난 뒤, 나를 사랑했던 사람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유독 시린 겨울,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질문들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조금 따뜻하게 만든다.
매 겨울의 시작점마다 들었던 어반자카파의 코끝의 겨울 속 가사처럼,
사랑은 누군가 내게 건네온 계절이다.
사랑은 구원이다.
[요마카세] 화요일: 느리지만 끝까지 가는 거북이
작가명 : 도연
소개 : 천천히 다시 한 걸음씩 써 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