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100일의 기적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어제는 우리 딸의 백일이었다. 출산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백일이라니. 아기의 백일은, 엄마가 아기를 잉태한지 딱 1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작년 이맘때, 우리 부부는 추위를 피해 호주로 여행을 갔다. 비키니 한 장 달랑 걸치고 골드코스트를 누비던 그때의 나는 꿈에도 몰랐다. 불과 1년 뒤, 내가 엄마가 되어 있을 줄, 그리고 내 인생이 이렇게 바뀌게 될 줄은.


지금의 나는 작년과 많이 다르다. 특히 거울 속 내 모습은 아직도 낯설다. 골드코스트 비치워크에서 러닝을 하고, 발리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던, 검게 그을린 탄탄한 몸의 비키는 온데간데 없고, 떡진 머리에 아기 토가 묻은 잠옷을 입은 배불뚝이 아줌마만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 배불뚝이 아줌마는 참 행복하다.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지나 ‘육아 전쟁’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내일이 기다려진다. 예전에 누리던 젊음과 자유가 주는 행복과는 결이 다른 감정이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오는 행복.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생기는 행복. 그 벅찬 마음이 몸의 힘듦도 잊게 만든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좋기만 했던 건 아니다. 조리원을 퇴소하고, 산후관리사님의 도움도 끝나고, 처음으로 아기와 단둘이 집에 남겨졌을 때 느꼈던 그 막막함은 여전히 생생하다. 새벽마다 부서질 듯한 몸을 일으켜 수유를 하고, 아무리 달래도 달래지지 않는 아기를 안고 지새우던 밤들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모른다.


그 당시 나는 100일쯤 되면 아기들이 밤낮을 구분하고 통잠을 자기 시작한다는 ‘100일의 기적’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길고 고단한 시간 끝에, 마침내 나에게도 작은 기적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 뭉클해졌다.


어쩌면 100일의 기적은 아기가 통잠을 자는 변화뿐 아니라 엄마의 마음이 달라져서 일어나는 변화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여전히 새벽에 두세 번은 깨어 수유를 하고, 먹이고 씻기고 달래고 재우는 하루 루틴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예전만큼 힘들지 않고, 그저 예쁘기만 하다. 이제 조금 컸다고 눈 마주칠 때마다 방긋하고 웃어주는 사랑스런 얼굴 때문인지, 작은 입으로 꿍얼꿍얼 내뱉는 귀엽고 하찮은 옹알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100일동안 난 이 조그마한 생명체에 푹 빠져 버린 게 분명하다.


그래서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아기가 변하는 시간이 아니라, 엄마가 아기에게 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아기 엄마가 말했다. 자기가 딱 하루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 돌이 지난 아이가 딱 우리 딸만 했을 때로 돌아가 그때의 아기를 품에 꼭 안아보고 싶다고. 그때는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아이가 예쁜 줄도 몰랐다며, 그 때 더 많이 예뻐해 주지 못한게 아직도 미안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지금 내 품에 안긴 우리 딸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다시는 돌아 오지 않을 이 쪼꼬미 시절을 마음껏 느끼고, 아끼고, 사랑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 아기가 조금 더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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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마카세] 목요일 : 어쩌다 엄마

작가 : 초보맘 비키

소개: 서른다섯에 엄마가 된 초보맘 비키, 자유로운 영혼에서 '엄마'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딸에게 남기는 성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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