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인생의 길목 어딘가에서 주춤거리고 있다면 작은 한 발자국 내딛어 보는게 어떨까?
진로의 갈랫길에서 오른쪽으로 갈까, 왼쪽으로 갈까 고민할 때, 과연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내가 가는 길이 고통의 길이 될까, 꽃밭이 될까,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종종 내면의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하던 일을 멈춰내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설렐 수도 있고, 무서울 수도 있다. 내가 노력하던 일이 보상을 받지 못했을 때, 우리는 좌절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씨를 심지 않으면 새싹이 피어나지 않지만, 때로는 종자 없이 피는 꽃도 있더라. 우리 사회는 공정과 공평을 외친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상은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세상이 마음 편한대로 돌아간다면 인권운동가나 재산의 재분배라는 말은 왜 나왔겠는가? 우리는 그저 이 세상 속에서 발버둥칠 뿐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공평하지 않은 세상 어느 갈랫길에서 생각과 잡념으로 가득 차 머뭇거리기만 한다면, 두 눈 질끈 감고 아무 곳이나 향해보자. 종래에 다다른 길은 한 곳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말이다. 용기 내어 디딛은 발 밑이 가시밭일 수도 있고, 돈방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구도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 예측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그저 허상일 뿐이다.
박사의 꿈을 접고 요가지도자가 되기까지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노력해온 나의 피•땀•눈물이 한 번에 무산되는 것 같아 두려웠다. 5달 안에 나온 지도자 자격증은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5달 만에 직업이 하나 생길 수 있다니?! 물론 요가지도자의 시작과 그 여정은 평탄치 만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노력해 온 학문의 길은 지독하게 치열했다. 평가받으며 인정받아야 그나마 숨 쉴 공간이 트였다. 그와 반대로 요가지도자의 길은 타인과 비교하며 진행되는 치열한 경쟁은 없었다.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공부가 갑자기 지겨워져서 떠났던 학문의 길은 많은 미련을 남게 했다. 요가가 좋다고 외치면서도 국제정치 분야로 기웃거리는 데에는 관성의 원리 때문일까? 갈랫길 앞에 있는 나는 그 어디로도 발을 내딛지 못했다.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한 어린아이 같았다. 그리고 그런 내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 때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1시간만 일해도 보상이 있다는 “작은 위로” 덕분이었다. 어떤 큰 움직임이 아닌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되었던 요가의 세상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밀기 시작했다.
요가지도자의 길에는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어려움과 고민거리가 있었지만, 나름 재밌었다. 내가 쓰는 국제정치 논문 한 편이 과연 이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던 찰나, 나의 요가 수업 한 번으로 회원님들께서 몸이 너무 잘 풀렸다며, 오늘의 말씀이 너무 위로가 되었다며 나에게 즉각 피드백을 주는 것이 나를 들뜨게 했다. 나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영부영 나는 “명상하고 공부하는 요가지도자” 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길로 가는 데에 있어 미래에 대한 판단이나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행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었을 뿐이다. 그리고 뒤돌아보니 내가 정말 많이 걸어왔구나 알아차렸다. 만약 내가 갈랫길 앞에서 머뭇거리기만 했다면 나의 걸음수는 0보에 그쳤을 것이다. 단어 외우기, 걷기, 책 한페이지 읽기, 다른 사례 찾아보기 등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소한 것은 너무나도 많다. 오늘 한 행위가 무용지물로 되어 버릴까 두려워 말고, 멈춤 상태에 머물러 있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며 그저 작은 행동 하나 실천하는 용기를 가져보자.
요가원 오픈 준비를 할 때 두려움이 너무 강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공실기간이 3달 남짓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사업자를 낸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상황은 나를 내몰아 세웠고, 무언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했던 것 또한 “작은 용기” 한 번 가져보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무언가를 하려하지 말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그저 행하는 용기” 였다. “소규모 요가원” “소규모 필라테스” 등 키워드를 검색하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 찾아보거나, 사업자등록증은 어떻게 내나 찾아보거나 등등 주로 검색 위주로 용기 한 번 내어 보았다. 그리고 요가원을 오픈 한 선생님께 연락도 드려봤다. 정말 감사하게도 오랜만에 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상세히 알려 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매일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용기 하나씩 꺼내었다.
개인적으로 하누만아사나를 좋아한다. 힘을 푸는 용기가 정말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용기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티끌 모아 태산 이루듯 매일 매일의 수련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누만아사나를 성공하기까지 3년? 4년? 정말 오랜시간이 걸렸다. 마치 매트 밖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아등바등 모든 것을 잡은 채 놓으려는 용기가 없는 ‘나’. 그런 나를 놓아주게끔 연습시켜준 아사나가 바로 하누만아사나다. 그저 행하는 용기는 하루아침에 두 다리를 앞뒤로 찢어내는 용기가 아니라, 오늘 1mm, 내일 1mm씩 움직여보는 용기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느 갈랫길 앞에서 오른쪽으로 갈까, 왼쪽으로 갈까 머뭇거리고 있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용기 한 번 내어보자! 그리고 어느 순간 뒤 돌아봤을 때, 내가 걸어온 길이 이렇게 멀었구나, 알 수 있지 않을까?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