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아기를 4개월정도 키우면서 발견한 가장 흥미로운 점 하나는 아기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고, 불편하면 온몸으로 짜증을 표출하기도 하는데 그 모든 표현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다. 누구의 기분을 살피거나, 분위기에 맞추려는 노력 또한 전혀 없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항상 사회 속에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는 아주 생소하고, 때로는 부럽기까지 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딸은 항상 아침 첫 수유를 할 때 방귀를 뿡뿡 끼며 응가를 하는데, 방귀 소리에 놀라 당황한 내 얼굴을 보면 웃긴지 깔깔대고 웃는다. 그리고 그 웃음에 어이가 없어 나도 덩달아 웃음이 터진다.
기저귀를 갓 갈아주면 또 응가를 하는 일도 다반사다. 평소엔 산책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꼭 동사무소나 은행 같은 데만 가면 세상이 무너지는 듯 울어 재낀다. 어떤 날은 낮 동안 그렇게 잘 자다가도, 새벽만 되면 눈을 땡그랗게 뜨고 플레이 모드가 되어 해가 뜰 때까지 놀며 나를 괴롭힌다.
이 모든 행동에 아기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느끼는 대로 표출할 뿐이다.
그런 딸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 감정 표출에 이렇게 온전히 정직하고 당당했던 적이 언제였더라? 솔직히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내 감정을 표출하기 전에 항상 듣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일 지부터 생각하고 그 사람의 스타일에 맞춰 표현을 예쁘게 포장하고 다듬기 바빴던 것 같다.
그럼 도대체 사람들은 언제부터 ‘눈치’라는 걸 배우는 걸까? 예전에 심리학 공부할 때 읽었던 발달심리학 책을 찾아보니, 아기가 ‘눈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먼저 만1~2세에 자기(self)인식이 생기며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고, 만2~3세에는 무엇은 해도 되고 하면 안 되는 지와 같은 사회적 규범을 학습한다. 만 3~4세가 되어서야 “남이 내 행동을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는 사회적 평가 인지 단계에 오른다고 한다. 그리고 만 5세 전후가 되어서야 공감, 비교, 인정욕구 같은 사회적 감정들이 발달하면서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눈치' 라는 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다시 말해 ‘눈치’란 타인의 감정이나 분위기를 읽고, 그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사회적 감각을 말하는데,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려면 누구나 갖춰야 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만 5세 이전의 아이들은 아직 이 감각 자체가 발달하기 전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눈치-free life가 허용 되는 셈이다.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솔직함과 순수함은, 어쩌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덕분에 지금 딸과 나는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방법으로 교감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4개월 남짓 된 딸은 말은 전혀 하지 못해도 눈빛으로, 손짓 발짓으로, 웃음이나 울음으로, 알아 들을 수 없는 옹알이로,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딸의 언어를 알아차리고 배워 나가는 게 너무 재미있다.
우리 딸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 남의 ‘눈치’를 보게 되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기 감정에는 항상 솔직하고 당당했으면 좋겠다.
[요마카세] 목요일 : 어쩌다 엄마
작가 : 초보맘 비키
소개: 서른다섯에 엄마가 된 초보맘 비키, 자유로운 영혼에서 '엄마'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딸에게 남기는 성장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