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선택한 진로로 살아남는 법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고3. 진로를 정해야 한다. 내일 뭐 먹을지도 못 정하는 마당에 앞길을 정해야 한다니. 엄마는 취업이 잘 된다는 사촌 언니 말만 듣고 전문대 의무행정과를 가란다. 하고 싶지도 않은 공부에 돈 볓 백 들어가는 게 싫다. 남들 수능 공부할 때 부사관 시험 준비 하다가 교무실로 끌려가기도 한다. 합격. 담임 선생님과 엄마만 좋아 죽는다. 가고 싶지 않다. 야자(야간 자율 학습)를 빠지는 건 행복이다.
수원에서 강원도까지 통학은 힘들겠지? 독립을 상상한다. 꿈에 그리던 자취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낭만적인 기숙사 생활은 어떤가. 현실은 강원도 일곱째 이모집이다. 마침 사촌 오빠가 입대한다. 18년 동안 떨어져 살아 잘 보지도 못한 이모와 이모부와 살아야 한다니. 걱정과 달리 편하다. 평생 못 해본 잦은 외식에 먹을 거 많은 이모집은 자취보다 좋다. 수업 후 술로 달려야 끝나는 매일에 자연스럽게 늦어지는 귀가, 속 썩는 건 이모부 몫이다.
전공책은 왜 이렇게 두껍고 많은지. 들어가지도 않는 가방 대신 구르마를 끌고 다닐까 생각한다. 도통 재미가 없다. 매일 저녁 6시까지 빼곡히 채워진 강의에 숨이 막힌다. 그래도 출석은 열심히다.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끝나자마자 학교 앞 슈퍼로 달려간다. 슈퍼 앞 파라솔에서 먹는 소주는 끝내준다. 시험 기간도 깜빡하게 하는 맛. 시험 보러 안 가냐는 남자친구 말에 숨도 안 쉬고 오르막길을 뛰어올라 겨우 본시험, 믿기지 않지만 100점이다. 몇백만 원 학비가 아까워 할 수 있는 건 한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부모님 몰래 자퇴도 결심한다. 이런 내 속도 모르고 졸업을 앞둔 선배가 갑자기 과대표를 제안한다. 내 발목을 잡는구나. 과대표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엠티, 운동회, 가을 축제를 준비한다. 완벽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한 번에 되는 게 없다. 축제 때 운영할 주점에 판매할 술을 협찬받는다. 그새를 못 참고 동기들은 술을 빼간다. 결국 냉장고에 발을 걸고 잔다. 냉장고 문이 열릴 때마다 잡히는 동기들. 작작해라 이것들아. 너무 추워 박스를 주워 덮는다. 냉장고 앞에서 새벽을 맞는다. 아이고 미쳤지. 공부보다 학과 행사에 충실하며 졸업만 기다린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교수님 추천으로 면접을 본다. 여름방학 끝나자마자 덜컥 취업한다. 1년 6개월 만에 졸업이다. 취업해서 준비할 수 있는 의무행정과 국가자격증은 포기한다. 전공과 졸업에 자격증까지 있으면 좋겠지만, 직장에 적응하랴 일하랴 공부하랴 너무 벅차다.
엄마 선택으로 정해진 전공과 대학. 학생회장도 해보고, 16년째 첫 직장에서 근무 중으로 밥벌이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아? 엄마 고마워?
[요마카세] 수요일 : 실패 좋아하세요?
작가 : 지지soak
소개 : 마음껏 실패하며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