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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Nov 07. 2024

[목요일]숨(은)고(수)가 아닌 대(놓고)고(수)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숨은 고수를 찾아주는 숨고라는 서비스가 있다.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전문자들을 찾아주는 서비스다.

어디에서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기는 어려운 내가 아이들 앞에서는 늘 전문가가 된다.


"이모 왜 이렇게 잘해?"

"이모 진짜 잘한다"


발가락 사이를 비집고 나가고 삐뚤빼뚤 매니큐어를 바르면서 아이들은 나에게 칭찬을 해줬다. 중학생들도 비웃을 만한 실력인데 아이들 앞에서는 난 늘 고수다.


세상에 가장 맛있는 건 돈가스와 교촌 허니콤보뿐인 이들에게 이것저것 뚝딱 대충 만들고 다 먹으면 칭찬 스티커 하나 줄게라는 말 한마디면 간도 제대로 안 맞춘 음식도 아이들은 엄지 척 이모 최고를 외쳐준다.


어디 숨어서 찾지 않아도 나타나는 대고. 나는 대놓고 고수.

하지만 대놓고 고수라는 타이틀을 쉽게 얻어서 그런가, 숨고와 다른 점이 있다는 건 부족한 모습이 티가 난다.

인생 경력 31년을 향해가는 나도 남자친구와 싸울 때, 아직도 커리어를 고민할 때, 부모님과 싸우는 날이라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무것도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것도 척척 할 수 있는 강인한 고수는 사라진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똑똑 내방을 찾아온다.

“얘들아 이모 운다?”라는 말에 신나는 구경거리를 구경하러 나머지 두 명도 따라 들어온다.

“진짜 운다? ㅋㅋ이모 나봐봐! 울어?” 장난스러운 얼굴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접하는 어른은 선생님, 부모님뿐인데 그들은 아이들 앞에서 강한 존재로 눈물을 흘리지 않으니 그들 눈에도 수도꼭지 같이 눈물이 나오는 어른이 신기한가 보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나에게 가재수건 ( 손수건이 아니고 각종 동물들과 여러 번 빨래 삶은 흔적이 가득 담긴 가재수건이어야 한다. )을 챙겨준다. 흐르는 콧물도 닦아준다. 그럼 나는 어느 순간 울음이 웃음으로 번진다.



부모님과 싸운 날도 어김없이 아이들은 나를 위로해 주었다. 베개에 머리를 두고 엉엉 우는 내 옆으로 첫째가 찾아왔다. 이모가 우니까 나도 눈물 날것 같아. 내가 오늘 밤 걱정 없이 잘 수 있도록 기도할게. 그 말에 나는 눈물을 또 흘리고 서로 끌어안으면서 같이 잠들었다. 정말 돈 주고는 살 수도, 찾을 수도 없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 전문가, 고수를 만났다.


남자친구와 싸운 날도 아이들은 웃으며 나에게 이야기해 줬다.

이모 괜찮아 다른 삼촌 찾아보자. 근데 우리랑 잘 놀아주는 사람으로

정말 명쾌한 답이다.


나는 아이들보다 단순히 오래 산 이유로 어쩔 수 없는 고수라는 타이틀을 임명받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어른들을 위로해 주는 어린이들이 정말 진정한 숨은 고수 같다.



[요마카세] 목요일 : 어린이의 위로

작가 : 아리

소개 : 어쩌다 조카 3명과 살게 된 싱글레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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