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약 500번의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무얼 입을지, 점심저녁은 뭘 먹을지와 같은 사소하고 가벼운 결정들도 있겠고, 드물지만 묵직한 무게감을 가진 것들이 결정을 강요해오기도 한다.‘문·이과, 대학, 진로, 이직, 결혼’과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선택들이 일평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전부라고 생각되던 때도 있었다. 진학한 대학이 평생 직업을 결정지을 줄 알았고, 한 번 선택한 직업이 유일한 길인줄만 알았던 어리숙한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순간의 선택이 인생의 변곡점을 만드는 지점은 될 수 있어도 인생의 끝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걸.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 누군가는 말하더라. 변화무쌍하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절대적 증거라고. 듣는 순간 무릎을 치며 맞는 말이다, 마음을 붙잡고 멋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래, 인생은 시시때때로 결말이 달라지는 살아있는 책이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랜 고심 끝에 내린 선택도 있고, 당시엔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하는 경우도 있다. 방송작가의 시작이 그랬다. 중증선택장애인 내게 방송작가의 시작은 덜컥 벌어진 일이었다.
친구들이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진학할 때 나는 유럽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위한 여행은 아니었다. 일종의 회피였다. 대학원에 진학하면목회자의 길에 더 가까이 다가선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 다름없었다. 훗날 이 길이 아니다 싶어서 선택을 번복할 더 큰 용기의 그릇을 꺼내들 자신이 없었다. 유예기간이 필요했다. 그래, 떠나자. 가능한 오래, 가능한 멀리. 그렇게 89일간의 유럽여행을 떠났다. 쉥겐 조약이 아니었다면 기약 없는 유럽 여행이 됐을 것이다.
유럽 여행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길 위에 답이 있다’라는 순례자들의 후일담이 방황하는 마음에 답을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35일 동안, 800km의 거리를 걸었다. 답을 찾았냐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무슨 말장난이냐고? 근데 사실인 걸.
하루만큼의 걸음을 끝마친 순례자들은 암묵적으로 함께 밥을 먹는다. 순례길 여정 초반에 빼놓을 수 없는 대화 주제는 순례길에 오른 이유이다. 대학 졸업하고,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겁이 난다고, 여기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왔다고 고해성사하듯 마음을 꺼내 놓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미국인 아저씨가 해준 말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까미노(순례길)는 정답을 알려주진 않아요.
답은 당신 안에 있을 거예요. 겁내지 말아요. 당신의 삶을 응원해요.”
내 안에 있다고? 이 무슨 철학자 같은 답변인가! 그런 말은 나도 하겠어요! 뿔난 심정이었다. 애석하게도 그 아저씨의 말은 사실이 되었다. 순례길 여정이 끝나는 날까지 어떠한 답을 얻지 못했다. 대학원을 가는 게 맞는지, 대학원을 가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걸 해야 할지.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불투명한 미래가 끝까지 나를 쫓아왔다. 그런데 안개를 약하게 비추는 헤드라이트가 있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었다.
순례길에서 사진과 글을 부지런히 기록했다. 발바닥과 발가락에 생기는 물집과의 사투, 욕심에 버리지 못하는 것들, 따스한 햇살에 풍족하게 행복했던 마음,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 포기해야만 하는 자존심과 고집… 순례길에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대상은 다름 아닌 ‘나’였다. 육체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정리하고, 기록하기를 반복한 그 끝에 글 쓰고 싶다는 씨앗이 심긴 것이다.
까미노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당신 안에 답이 있을 거라는 얼토당토않던 미국인 아저씨의 말이 이런 의미였나 생각한다. 철학이 실존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말하면 가장 이상적일 테지만 먹고사는 현생을 위해 일반 회사에 취업했다. 그렇게 3-4년의 시간이 흘렀고, 별 의미를 두지 않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방송작가를 하는 언니를 알고 지내던 중이었다. 어느 날 물었다.
“방송작가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보통은 아카데미를 나오지”
“아카데미 그거 꼭 가야 돼요?”
“음, 꼭 다닐 필요는 없는 거 같아”
“그러면 어떻게 시작해요?”
“막내작가로 실무에 투입해서 배워도 될 거 같아”
“그래도 돼요?
“문제없어. 관심 있어? 우리 팀 막내 구하는데 해볼래?”
“오 정말요?!”
그렇게 일주일 뒤 방송작가가 되었다 덜컥, 갑자기! 처음부터 대단한 결정으로 시작한 게 아닌 셈이다. 어쩌다 보니 방송작가가 되었다. 사실 그 언니와 대화하던 그날 그 순간에 여전히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확신은 없다. 3-4년이란 시간은 마음에 움튼 새싹이 메마르기에 충분하니까.
선택은 항상 조심스럽고 두렵다. 지금의 결정이 최고의 선택이 아닌 건 고사하고 최선의 선택인지도 모르겠으니까. 최악의 선택이 아니면 다행이다. 그런데 대단한 결심과 각오, 고민할 시간이 없다 한들 어떠한가. 비장한 시작이 아니어도 어떠한가. 방송작가의 역사는 ‘어쩌다 보니’ 만들어졌다. 어쩌다 보니 심어진 소망의 씨앗이, 어쩌다 보니 만난 인연이, 어쩌다 보니 주어진 기회가 삼합을 이루어 낸 역사.
‘어쩌다 보니’의 힘은 생각보다 강할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걸 생명력 있게 만들어 갈 만큼. 때론, ‘어쩌다 보니’의 힘에 기대 살아가도 될 것 같다. 졸지 말자 선택에. 쫄지 말자 인생에.
[요마카세] 화요일 : 읽히지 않은 인생
작가 : 세렌디피티
소개 : 긴 시간을 살진 않았지만 깨달음 중 하나는 야심찬 계획은 기꺼이 어그러지며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통제되지 않는 인생의 파편들은 마음에 흉터를 내기도 하고 의욕으로 곧게 서 있는 두 다리를 꿇어앉히게도 합니다 마음의 흉터는, 꿇어앉은 다리는 ‘인연, 우연, 기회’ 라는 전혀 다른 모양과 색깔의 가능성을 만나 아물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 걸어갈 힘을 얻으며 인생이란 팔레트에 스스로 낼 수 없는 다채로운 색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만났던 그리고 여전히 만나고 있는 ‘인연, 우연, 기회’ 를 들려드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