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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시간을 내편으로 만드는 법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꿈이 뭐예요? 인품 있는 할머니가 되는 거요. 연애 프로그램 자기소개에서 한 남자 출연자가 모든 여자 출연자에게 질문한다. 그중 한 여자 출연자의 대답이다. 내 꿈은 뭘까. 내가 저기에 서있다면 뭐라고 답했을까. 주말 내내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 하다 죽는 거요. 바닷가 시골 마을에 통창이 보이는 집에서 제철 음식을 챙겨 먹는 삶이요. 다 맞지만 멋이 없다. 어떤 남자 출연자도 내 편이 되어주진 않을 것 같다.

금요일 오후 5시 20분. 온 팀원이 팀장 눈치만 보고 있다. 보통 팀장은 금요일은 재택근무를 하거나 출근해도 일찍 가는데 이제까지 집에 가지 않는다. 불안한 예감은 벗어나지 않는다. 그 파일 어디 있지? 나를 찾는다. 본인의 상사가 퇴근 30분 전 일을 주었고 그 일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 된다. 짜증부터 나야 하지만 어쩐지 초연해진다. 피할 수 없다면 빨리 끝내자. 6시 40분. 7시를 넘기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퇴근한다. 운동 갈 시간은 충분했지만 집으로 향한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기 싫다.

왜 이렇게 출근하기 싫을까. 이곳에선 나로 존재할 수 없다. 내가 되어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임차장으로 상사와 상사의 상사가 시킨 일을 치워야 한다. 하루에 나일 수 있는 시간은 출근 전과 출근 후 5시간 남짓에 불과하다. 어떻게든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시간을 내편으로 만들 수 있다. 새벽 5시 50분 알람이 울린다. 일어나야 하는데만 외치다 선잠에 든다. 더 피곤한 하루가 될 뿐인걸 알면서 5분 뒤 다시 울림을 누른다. 5시 55분, 57분, 6시 알람이 씨알이 꽉 찬 옥수수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다.

운동 언제 올 거야. 여기저기 연락이 빗발친다. 일주일이나 안 간 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 했다 싶다. 아 나도 가고 싶은데 도저히 일어나 지지가 않아. 회사랑 별개로 무기력해. 언니, 별개가 아닐걸. 그래 별개일 수가 없다. 끌려가는 시간이 어찌 즐거울 수가 있을까.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무기력함을 극복할 방법은 실질적으로 하나뿐이다. 당연히, 내가 되는 일이다.

제 꿈은 저만의 장르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소개에 쓸만한 그럴싸한 단어를 찾았다. 강박적인 대칭을 보면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감독 ‘웨스 앤더슨’이 떠오르는 것처럼. 마치 명찰이 붙은 것처럼 딱 보면 어! 할 수 있는 나만의 장르라니. 상상만으로 너무 멋지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내가 되어보자. 제일 멋진 내가 되는 일이 유일하게 해야 하는 일이다. 오늘밤도 알람을 맞춘다. 새벽 5시 50분. 시간이 내 편이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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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마카세] 월요일 : 퇴사할 수 있을까

작가 : 흐름

소개 : 모든 것이 되고파 나 조차도 못 된 10년 차 직장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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