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택주 Dec 20. 2020

오늘, 정이 그리운 날

정을 가르면 일어나는 기적? 쿵쿵 아파트

벼리, 안녕?

     

윙 윙

두두두 두두두두두

으앙 으앙 으앙

탁 타닥 탁탁     


<쿵쿵 아파트>(창비 2020년)에서 나는 소리야. 이른 아침 1층에 사는 염소 청년이 기타를 치며 노래해. 그때 2층에 이사 온 기린 아저씨가 집을 고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그 소리에 3층에서 곤히 자던 아기 토끼가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고.     

쿵쿵 아파트/전승배·강인숙 그림/창비/ 값 13,000원

나는 여덟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다가구주택에 살아. 지난해 여름, 어느 날 아침 여덟 시쯤이었나? “두르륵 두르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어. 깜짝 놀라 내려다보니 할머니 혼자 사시는 아래층에서 에어컨을 달고 있더라고. 여름이라 에어컨 기사가 일찍 서둘렀나 보다 했어. 그 소리에 잠든 옆집 아기가 놀라서 깨어 울었나 봐.

아기 엄마가 마을 카톡방에다 느닷없이 드릴 소리를 내면 어떻게 하느냐며 짜증 어린 말을 남겼어. 목소리가 더 커지기 전에 가라앉혀야 하겠다 싶어 내가 얼른 에어컨을 다는가 보다고 했어. 아기 엄마는 미리 알려줬어야 하지 않았겠느냐고 되받고, 나는 나라도 에어컨을 달 때 드릴 소리가 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라고 덧붙였지. 성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듯이 이 말이 거슬렸나 봐. 얘기를 몇 마디 더 나누던 아기 엄마가 할머니네로 건너가 다퉜어. 괜스레 끼어들어 화를 부른 거지.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이던 할머니는 에어컨 바람을 싫어해서 에어컨을 달지 않고 사셨어. 그러다가 반상회를 열 곳이 마땅하지 않다는 소리에 기꺼이 집을 내어놓고, 엄마 따라 반상회에 오는 아이들이 더위를 견디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쓰여 서둘러 에어컨을 다셨던 거야. 그런 줄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한 아기 엄마가 소리를 높였던 거지.


아기 엄마에게도 짜증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었어. 아기가 몸이 아파 밤새 잠을 설치다가 가까스로 잠든지 얼마 되지 않았다더구나. 겨우 선잠이 든 아기가 놀라 울었으니 얼마나 속상했겠어.


내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다툼이 크게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여태도 마음이 좋지 않아. 할머니에게 제가 잘못 끼어들어 일이 커졌다며 몇 차례 노여움을 푸시라고 말씀드렸어. 그러나 젊은이에게 좋지 못한 소리를 들어 분을 삭이지 못한 할머니는 나중에는 아예 내 전화를 받지 않으셨지.     


그동안 지워진 주차선도 함께 긋고, 계단에 미끄럼 방지턱도 붙이고, 여닫힐 때마다 덜덜거리고 몹시 추운 겨울에는 닫히지도 않는 현관 자동문도 고치며, 보안카메라를 달고, 마을 어귀에 꼬마평화도서관도 함께 열면서 고추장이며 김치와 같은 음식도 나누고 사이좋게 지냈는데 안타까워.      


그 할머니에 이어 4층에 사는 유치원 선생님이 집을 깨끗이 치우고 과일과 과자, 차를 마련해서 반상회를 열도록 한 해가 넘도록 집을 내놓았어. 그러나 요사이 여러 달 동안 반상회를 한다고 알려도 마을 사람들이 이런저런 까닭을 내세워 오지 않았어. 맥이 빠진 이분도 다시는 반상회 하라며 집을 내어놓지 않겠다고 했어. 마음을 다친 거야.      

저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어 / 교보 책소개 갈무리

쿵쿵 아파트 4층에는 나처럼 글을 쓰는 코알라 할아버지도 살아. 그러나 아랫집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윗집에서는 곰 아주머니가 운동한다면서 떨어뜨리는 훌라후프 소리 때문에 오롯이 글쓰기를 하지 못해 힘들어 해. 그때 갑자기 정전되면서 소리가 뚝 끊겼어. 그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 글을 쓰던 코알라 할아버지며 훌라후프를 하던 곰 아주머니, 집을 고치던 기린 아저씨와 아기 토끼를 다래던 토끼 엄마가 아기 토끼를 안고 소리를 따라 하나둘 옥상으로 올라와. 옥상에는 염소 청년이 기타를 치고 있었지. 모처럼 한곳에 모인 이들은 속내를 털어놓아.     


“언젠가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의사가 운동은 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해서요.”

“원고 마감이 며칠 남지 않아서 예민해졌어요.”

“집을 멋지게 꾸미고 싶었어요.”     


저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었던 거지. 그렇게 얘기꽃을 피우는 사이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어. 나비를 따라 난간으로 올라간 아기 토끼. 이걸 보고 놀란 이웃들이 앞다퉈 달려가 아기 토끼를 끌어 올리느라 안간힘을 써.      


이걸 보면서 영화 <오베라는 남자>가 떠올랐어. 환갑을 앞두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곧바로 마흔세 해 동안 일하던 일터도 잃고서 죽을 틈을 노리는 사람 얘기야.

주인공 오베는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쓰레기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는지, 마을에 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팻말이 제대로 꽂혀 있는지 살피며 잔소리를 해.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고집불통으로 한마디로 밉상이야.

   

집에서 목을 매려는 오베, 막 이사와 이삿짐을 부리느라 어수선한 이웃이 신경에 거슬려 죽을 수가 없었지. 다시 목을 매려는데 이번에도 이사 온 파르베네 부부와 아이들이 아는 척을 하는 바람에 틀어졌어. 며칠 뒤 차 안에서 죽으려고 하는데 ‘파르베네’가 입원한 남편 병문안을 하러 가려는데, 병원에 데려다줄 수 없겠느냐며 두드리는 바람에 또 헛일이 되고 말아. 얼떨결에 따라간 병원에서 이웃집 아이들 성화에 난생처음 동화를 읽어주고, 철길에 쓰러진 남자를 엉겁결에 살려내기도 해. 그 뒤로 파르베네에게 운전을 가르치고 더럽다던 길고양이를 스스로 맡아 키우면서 따뜻한 정을 나눠.

도와달라는 이웃이 목숨을 살리고 정가름할 무지개까지 놓은 거지.   

   

목을 매려는 오베 / 영화 '오베라는 남자' 화면 캡쳐

떨어지려는 아기 토끼를 끌어 올리느라 안간힘을 쓰는 쿵쿵 아파트 사람들과 이웃을 돕다가 슬픔을 떨치고 평화로워지는 오베를 보니 닫힌 마음을 여는 데 누굴 도우며 정을 나누기보다 나은 것이 없는 것 같아.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마을 일을 마음에 담은 데는 까닭이 있어. 1층에 할아버지와 딸과 사는 할머니가 손을 내미셨어. 건물 지은 지 여러 해 지나면서 손볼 곳이 거듭 생기는데 마을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걱정이라면서. 할머니는 한 집 한 집 문을 두드리며 마을 일에 앞장서셨어. 옥상에 널브러진 전깃줄도 말끔히 정리하고 장마가 오기 전에 하수구를 막고 있는 나뭇잎을 걷어내던 분은 할아버지야. 두 분 다 살림꾼이라는 걸 알겠지? 한전에 다니다 그만두셨다는 할아버지는 몸이 퍽 좋지 않으셔. 요사이 병이 깊어져 병원에 계실 때가 많아 할머니도 반상회에 나오지 못하시지.      


마을 카톡방에 정가름하는 말씀이라도 올릴까? 살림꾼 할아버지가 병환을 툭툭 털고 일어나시기를 마음을 모아 빌자고.



작가의 이전글 그들이 아저씨를 속였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