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할 줄 아는 이 아이들이 어울려 서로 살릴 것
지난 25일 청주에 있는 초등학교 여름 독서 캠프에서 아이들과 <생각이 깊어지는 우리말 공부>와 <한글 꽃을 피운 소녀 의병>을 펼치며 놀다 왔다.
3학년에서 6학년을 묶어 <생각이 깊어지는 우리말 공부>를 바탕에 두고 이름과 어울림 놀이를 하고, 1학년과 2학년은 <한글 꽃을 피운 소녀 의병>을 바탕에 두고 소리시늉말과 짓시늉말을 익히며 놀았다. 소리와 짓을 묶어 놓은 놀라운 한글이 우리말을 이어오도록 했기에 할 수 있는 놀이였다.
두 반 다 문을 열면서 나는 말놀이에 앞서 몸을 풀자고 했다. A4용지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크게 쓰고 공처럼 성글고 둥글게 뭉치라고 했다. 그리고 탁자를 가운데 두고 둘로 갈라서서 종이 뭉치를 맞은 쪽으로 가볍게 던지고 떨어진 뭉치를 주워 그치라고 할 때까지 던지라고 했다. 신바람이 나서 던지는 아이들 사이를 까르륵 소리가 메운다. 이제 그만하고 마지막에 손에 든 말을 펴보라고 했다. 낯빛이 환해진 아이들에게 물었다. 마음이 어떠냐고? 좋다는 말에 내가 말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네게 건네기, 말 잘 쓰는 지름길로 말은 다른 짐승보다 힘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어울려 살려고 만들었어.”
어떤 말이 가장 많이 나왔을까? ‘고마워’였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무얼 시키고도 제대로 인사를 차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올라왔으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예순을 훌쩍 넘기고서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고맙다고 새겼는데 어린 나이에 ‘고맙다’에 담긴 값어치를 꿰뚫고 있다니 놀라웠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이웃하는 ‘남’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면서, 너희와 내가 입은 옷, 너희와 내가 먹는 밥을 지을 쌀과 채소 대부분은 다 얼굴도 모르는 남이 지었다. 우리는 힘을 보태주는 남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했다.
더위까지도 우리를 살린다. 덥지 않으면 곡식이나 과일이 익지 않으니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니 더위가 주는 고마움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입 모아 더우니 수박을 먹을 수 있고 수영장에 가서 물장구칠 수 있어서 좋다고 외친다.
이어지는 말은 ‘사랑해’였다. 아이들한테 고마운 줄 알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사랑해’를 이어 ‘괜찮아’, ‘혼자가 아냐’가 뒤따랐다. 너희 참으로 빼어나다. 혼자가 아니라 괜찮은 줄 어떻게 알았느냐고 맞장구쳤다. 뒤따르는 말이 ‘미안해’, ‘잘한다’, ‘친절해’, ‘소중해’, ‘귀여워’, ‘화이팅’이었다. 이런 말을 나누면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아는 너희가 멋지다며 북돋웠다.
그러나 속으로는 ‘괜찮아’, ‘혼자가 아냐’ 따위는 아이들이 듣고 싶어 할 만한 얘기는 아니라는 생각에 코끝이 찡했다. 작은 반 아이 가운데 가장 먼저 온 아이에게 “방학이라 좋지?”하고 물었더니 그렇지만은 않다고 했다. 방학에는 공부를 더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공부가 싫으냐고 물었더니 공부하기 좋아하는데, 엄마에게 떠밀어서 하긴 싫다고 한다. 나도 어려서 마당을 쓸려고 빗자루를 들었는데 엄마가 마당 쓸라고 하면 빗자루를 던지고 싶었는데 너도 그렇구나. 엄마도 너 힘들 줄 뻔히 알면서도 세상이 하도 빠르게 바뀌니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쫓아가기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어쩔 수 없이 그러지 않겠느냐고 혼잣말처럼 건네면서 답답함을 속 시원히 풀어주지 못해 속이 상했다. 이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은 “공부해”가 아니라 “사랑해”인데 내가 그 말 한마디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어른이라서.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풀려 말놀이할 멍석이 제대로 깔렸다. 물으면 너나없이 손을 들고 다른 아이를 시키면 아쉬운 낯빛을 숨기지 않았다. 거의 맞출 만큼 쉬운 문제를 틀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활짝 웃는다. 그런데 딱 한 아이, 저도 손을 들었는데 남을 시키거나 제 말이 틀리면 금세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은 ‘잘한다’였다. ‘잘한다’와 ‘사랑해’란 말이 듣고 싶다는 이 아이들에게 내가 들려주고 싶은 말은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서툴러도 좋아. 공부 잘 하지 않아도 되어. 너는 그대로 고와.”란 말이다.
어버이가 너무 공부에 매이지 않으면 좋겠다. 무얼 새롭게 만들어내는 힘은, 매이지 않고 생각을 활짝 펼 수 있는 바탕에서 나온다. 생각 나래는 공부에 매이지 않고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데서 꿈틀꿈틀 펼쳐진다는 말이다. 외우기는 인공지능이 다 해주는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없어선 안 될 것은 몸도 마음도 놀려 매이지 않는 생각 틔우기이다. 생각 결을 잘 틔워야 생각 나래를 마음껏 펼쳐 꿈을 피워올릴 수 있다. 아이들과 만나자마자 몸부터 풀게 하는 까닭이다.
큰 반 아이들은 제 이름에 담긴 뜻을 다 적어왔다. 이름에 담긴 뜻을 말하다가 “참말 이름대로 되어요?”라고 묻는 아이가 있어 이렇게 대꾸했다.
큰 바위 얼굴 얘기 들어봤지?
큰 바위 얼굴을 닮고 싶어 하며 힘껏 살던 아이가 어느덧 큰 바위 얼굴이 되듯이, 제 이름에 담긴 뜻을 잘 새기고 이름에 걸맞게 살려고 힘쓰다 보면 저도 모르게
이름대로 될 수 있어. 내가 본보기 가운데 하나야. 택주는 연못을 가리키는 ‘택’과 두루 할 ‘주’가 모여 빚은 이름이야. 그런데 나라 곳곳에 꼬마평화도서관을 몇십 군데 열고 책도 열 권이 넘게 지었어. 그러나 속내를 털어놓으면 나는 이름처럼
살겠다고 뜻을 세우지 않았어. 그래도 바람직하게 살려고 애쓰다가 일흔 가까이 되어서 이름에 담긴 뜻을 곱씹어보면서,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책 펴내는 일이 평화 연못을 파는 일이 아닐까 싶더라고. 그런데 너희는 벌써 이름에 담긴 뜻을
잘 새기고 그대로 살려고 힘쓰면 나보다 훨씬 이름에 가깝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날 내가 만난 이 아이들은 다 천재다. 뭘 물을 때마다 손을 번쩍번쩍 드는 아이도, 답을 알면서도 숫기가 없어 서슴서슴하는 아이도, 답은 몰라도 해맑게 웃을 줄 아는 아이도.
문제 낼 때마다 손을 번쩍번쩍 들어 많이 맞추고 손뼉을 많이 쳐서 점수가 가장 높은 아이와 적게 맞추고 손뼉을 적게 쳐서 점수가 가장 낮은 아이를 불러내어 등을 맞대게 하고 가위바위보를 하게 하고 비기게 한 다음에 비기기는 서로 이기는 일이라면서 똑같은 선물을 주는 까닭이다.
어울려 살림 이야기를 하면서 시각 장애인 아이를 둔 일본 아버지가 만든 유루스포츠, 느슨한 경기 영상을 두 반 아이들에게 모두 보여줬다. 럭비선수와 휠체어 장애인이 맞붙은 애벌레 풋볼 경기와 탁구를 잘 치는 사람은 라켓에 구멍을 크게 뚫고, 탁구를 못 치는 사람은 작은 구멍이 뚫린 라켓을 들고 경기하는 구멍 탁구 경기 영상을 보여 주면서 애벌레 풋볼 경기에서 최우수선수상을 휠체어 장애인이 받았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작은 반 아이 하나가 손을 번쩍 들더니 “공평해요.”라고 말한다. 이 소리에 ‘그래,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일이 없도록 황새는 뱁새 걸음에 맞춰야 하지. 그렇고말고.’ 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이렇게 아이들은 잘 아는 공평과 평등, 어른들은 곧잘 까먹는다. 아니, 까먹는지 지우는지 알 수 없다.
살랑살랑, 반짝반짝을 몸으로 그릴 줄 알고, 꿈틀꿈틀 춤출 줄 아는 아이들이다. 안다는 말은 머리로 헤아리는 것을 일컫지 않고, 몸에 새기는 것을 가리킨다. 헤엄칠 줄 알고 운전할 줄 아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은 고맙게도 머리에 앞서 몸으로 살 줄 안다.
아이들은 서툰 그대로 옹글며, 서툴러야 새롭다. ‘고마워’ 할 줄 아는 이 아이들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매이지 않고 그대로 자라야 얽힌 매듭을 풀고, 걸어 닫은 문을 열 줄 아는 어른이 된다. 이 아이들이 허우대만 멀쩡하고 속이 텅 빈 어른들과는 달리 ‘고마워’ 할 줄 아는 참다운 어른이 되어 어울려 서로 살릴 때, 싸움이 잦아들고 지구도 숨통 트일 테다. 그러니 제발, 아이들을 풀어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