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를 피워올리는 두 손

신바람 나는 작은 뮤지컬 ‘두 손 뮤직앤아트’ 공연

by 변택주

12월이 며칠 남지 않았네요. 해 마감하면서 음악회에 다녀왔어요. 빈체로라는 카페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인데요. 공연 10분 전에 들어섰는데 꽉 찼어요. 둘러보니 한 예순 남짓한 이들이 빼곡히 들어앉아 있더군요.

KakaoTalk_20251227_180057561_09.jpg 인사말 하는 '두 손 뮤직앤아트' 대표 이화정

늙어가면서 웬만해서는 바깥나들이를 하지 않아요. 어울리다 보면 뭘 좀 더 겪어봤다고 아는 체하기 일쑤거든요. 뭘 보지 않으면 아는 체할 일이 줄어들잖아요. 그래서 음악회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나 연극도 보러 가는 일이 흔치 않아요. 그런 제가 음악회를, 그것도 스스로 나서서 동무들한테 가자고 해서 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워요.

KakaoTalk_20251227_181717136_01.jpg 진행을 보는 바리톤 서용교와 피아니스트 이화정

문을 열면서 바리톤 서용교가 “오늘 ‘두 손 뮤직앤아트’가 마련한 음악으로 어수선함을 잠깐 내려놓고 고전 음악에 담긴 빛깔과 재미를 느끼면서, 사랑과 그리움을 새록새록 되뇌며 작은 기쁨들을 챙겨 가시기 빕니다.”라고 하면서, 문 여는 곡으로 에드워드 엘가가 지은 ‘사랑의 인사’를 포핸드 피아노로 들려드리겠다면서 “에드워드 엘가는 앨리스와 뜨겁게 사랑하는데, 엘리스네 식구들이 막아서는 바람에 두 사람은 하는 수 없이 저희끼리 약혼합니다. 이때 엘가가 앨리스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담아 지어 올린 곡입니다.” 하는 식으로 음악에 담긴 뜻을 하나하나 풀어가고 가사도 우리 말로 풀어주며 음악회를 아울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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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한 대에 어울려 앉아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헝가리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버르토크가 지은 ‘이야기꽃 넷(Four Dialogues)’을 떠올렸어요. 서로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을 것 같은 두 손, 그러니까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묻고 답하도록 짜여 있어 한 손이 멈췄을 때 다른 손이 움직이며 메워나가는 곡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날 이화정과 조윤희, 그리고 이화정과 김혜선, 네 손이 어울려 묻고 답을 하면서 사랑과 재미를 피워올린다고 생각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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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곡은 퀸이 1978년에 내놓은 ‘don't stop me now’였어요. “너무 즐거운 순간이라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어!”라고 외치는 이 곡을 피아니스트 이화정과 드럼과 카혼을 연주하는 장찬양이 손뼉을 끌어내면서 흥을 한껏 돋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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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재미를 안겨 준 곡은 오페라 도니제티에 나오는 ‘사랑의 묘약’이었어요. 엉터리 약장수에는 바리톤 서용교가 아디나를 사랑하는 어수룩한 시골 젊은이 네모리노는 테너 김경천이 맡아 능청스럽게 연기했는데요. 싸구려 술을 묘약이라고 속였지요. 그러나 아디나는 네모리노가 제 마음을 얻으려고 군대에 들어갈 생각까지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꿈결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는 줄거리입니다. 좁은 카페를 오가며 보여주는 짧은 극에서 김경천과 서용교가 보여주는 케미에 절로 웃음이 터졌어요.

KakaoTalk_20251227_180057561_02.jpg 왼쪽이 테너 김경천, 오른쪽이 바리톤 서용교

여기서 물어볼게요. 아껴서 좋은 것이 많지만 조금도 아끼지 말고 팍팍 쓰며 누려야 할 것도 있는데 뭔지 아세요? 바로 사랑과 웃음 그리고 기쁨이에요. ‘오! 늘 이것들을 남김없이 나누고 썼어.’ 하며 하루 마무리할 수 있다면 좋지 않겠어요? 이런 마음으로 목이 쉴 만큼 웃었고요. 손뼉도 있는 힘껏 쳤어요. 손이 얼얼할 만큼.


막바지로 치닫게 한 것은 ‘캐러비안 해적’ OST이었는데요. 피아니스트 이화정과 김혜선이 포핸드로 연주하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청중에게 다가가 연탄집게만큼이나 커다란 집게로 금니를 뽑는 시늉을 하며 뜻하지 않던 재미를 안겼습니다. 청중석에서는 “화정이 이쁘다!” “혜선이 이쁘다!”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요. 피아니스트 이화정은 연주 잘했다는 소리보다 “이쁘다”란 말을 더 듣기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KakaoTalk_20251227_181717136_03.jpg 금을 빼앗아가는 캐러비안 해적 이화정

이번에 느낀 건데요. 둘이든 셋이든 여럿이 얘기를 할 때 한꺼번에 말할 수는 없어요. 여럿이 한꺼번에 말을 하면 시끄럽기만 하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서로 이어서 말해야 얘기꽃을 피울 수 있는데 여러 악기가 한꺼번에 소리는 내는 음악은 달라요. 한꺼번에 소리가 터져 나와도 이 소리와 저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듣기 좋지요. 가붓하고 가뿐한 음악이 나올 때는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면 더 좋고요.


음악회고 연극이고 잘 가지 않는 제가 두 손 뮤직앤아트 공연을 찾는 데는 까닭이 있어요. 여러 해 앞서 제가 좋아하는 생태 동화작가 권오준 선생이 카페에서 하는 음악회가 있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좋아하는 분과 어울리는 게 좋아서 덜렁덜렁 따라나섰어요. 카페라고 했는데 들어서 보니 학교 운동장만큼 넓었어요.


‘화정이의 여행 소풍’ 막이 오르더니 기차가 역으로 들어와 서는 소리가 나고 역장이 달려 나와 깃발을 들고 신호를 해요. 피아니스트 이화정이 트렁크를 들고 기차에서 내려 역을 빠져나오는 사이 기차가 떠나면서 쇼팽 즉흥 환상곡 연주가 울려 퍼지더니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스팅 OST’로 분위기를 띄워 이끌어가다가 마지막으로 받은 앙코르 ‘사랑의 트위스트’를 연주하던 피아니스트 이화정이 흥에 겨워 서서 피아노를 치다가 피아노를 떠나 춤추는 모습이 깊이 남았어요.

춤추는 피아니스트.jpg 춤추는 피아니스트 이화정

그때 느낌을 브런치 스토리에 남겼는데 그걸 이화정 샘이 보고 감동했다며 공연할 때 이따금 알려 주었어요. 지난 연말에 ‘두 손 뮤직앤아트’ 공연이 작은 카페에서 열린다고 알려 주어 동무 두 사람과 갔어요. 놀랍게도 청중도 함께 어울리도록 하는 쌍방향 공연이라 무척 싱그럽고 재미졌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갔던 건데 바람에 어긋나지 않은 흥겨움에 휩싸여 한껏 놀았네요.


그런데 ‘두 손 뮤직앤아트’ 홈페이지를 보면 연주자가 일곱 사람인데 이날 공연한 사람은 피아니스트 이화정, 조윤희, 김혜선 그리고 테너 김경천, 바리톤 서용교, 타악기 장찬양 여섯 사람뿐이었어요. 피아니스트 임연실도 얼굴은 보였는데 연주는 하지 않았어요.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손가락을 다쳤다고 해요. 임연실을 기억하는 건 지난 해였나? 큰 공연장에서 피아니스트 여러 팀이 포핸드 공연을 했는데 그때 이화정, 임연실 조가 가장 잘 어울렸거든요. 다음 공연에는 꼭 두 사람이 어울리는 포핸드를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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