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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택주 Jan 22. 2021

오늘, 평화 뽀송뽀송하니 누려봐요

어디서든 사랑을 느낀다면 바로 평화 살림

벼리, 안녕!     


평화롭기를 바라지 않는 이는 없어. 그러나 이게 평화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지. 평화가 뭔지 그림책 <평화는 가끔 이렇게 뽀송뽀송>을 연주하며 함께 짚어볼까?     

동학평화그림책학교 1기함께 지음/책마을해리/값 10,000원

볕에 잘 말려서 폭신하니 살아난 이불이나 고운 살결처럼 뽀송뽀송한 평화라니 그럴싸하지? 제과제빵사가 되겠다는 다경이는 샤워하고 에어컨을 켜고 이불속에 들어가서 시원 뽀송’하니 누리며 유튜브 보는 게 평화라더라. 뭘 만들기를 좋아하는 서정이는 식구들이나 동무하고 같이 있을 때 기분이 좋대.      

놀고 멋진 꿈을 꾸며 잘 수 있는 집이 가장 평화롭다는 한인이. 잠자리에 들 때 평화롭다는 청윤이. 에어컨 바람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형빈이와 윤명이. 빵을 먹을 때 평화롭다는 승현이. 평화가 아이스크림이라는 채린이. 평화로운 순간이 샤워하고 밥을 먹어 허기가 채워지며 몸이 나른할 때라는 민호. 할 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평화롭다는 준명이. 피아노 치며 평화를 느낀다는 주원이. 음악을 듣거나 연주할 때 평화로워진다는 예림이. 피씨방에서 게임 할 때 평화롭다는 석현이. 바다를 보면 평화롭다는 해민이. 평화, 나날살이에 소복하네.      


나는 

비가 올 때 창밖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느닷없이 비가 온다면

어떤 사람은 짜증을 내고, 어떤 사람은 빨래 걱정을 하지.

하지만 나는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빗소리가 마치 음악 소리처럼 들리거든.     


빗소리가 음악 소리처럼 여겨진다는 가온이는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놓인다는구나. 근데 양말이 젖어서 비 오는 걸 싫어하는 승헌이는 뜨거운 날, 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게 평화래. 나무 그늘에서 느끼는 평화도 좋지. 그러나 발이 젖지 않도록 장화를 신고 눈감고 빗방울 소리를 듣는다면… 나무 그늘 못지않게 좋다고 하지 않을까. 

열일곱 살 난 한별이는 저녁노을을 보고 있으면 평화롭다고 하고, 열아홉 지훈이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을 때 평화롭다더라. 나이가 든 언니들답게 드러내는 결이 다르네.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 빛그림 책마을 해리


들어보니 평화 갈래가 여럿인 것 같지? 아냐. 도서관에서 평화를 느낀다는 세윤이나 채율이도 더운 여름날 샤워하고 나서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뽀송뽀송한 이불에 몸을 눕히면 평화롭달 걸. 누구라도 식구나 동무들이랑 모여 앉아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밥을 먹거나 음악을 듣고, 연주회에 가거나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나 빵을 먹고, 바다에 간다면 평화로워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남이야 어떻든지 저 좋도록만 하려고 들어서는 평화가 올 수 없어. 나는 짜장면이 먹고 싶은데 쟤는 비빔밥이 먹고 싶다면 어째야 할까? 짜장면을 만들고 비빔밥도 만들 겨를이 있다면 둘 다 해 먹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그러나 그럴 처지가 되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네가 좋아하는 비빔밥을 먹고 다음엔 짜장면을 먹자며 물러설 수 있어야 평화로워.      

이런 소리 들어봤니? 직원들과 함께 중국집에 간 사장이 “맛있는 요리 마음껏 시켜 먹어.” 하면서 “난 짜장면”이랬다는 얘기. 우스갯소리처럼 떠돌지만, 흔히 있는 일이야. 은근하든 대놓고 하든 힘이 있는 사람이 번번이 제 뜻대로만 하려다 보면 힘이 달리는 사람은 화병이 생겨. 나아가 벼 아흔아홉 섬이나 가진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 겨우 한 섬 가진 걸 빼앗길 일삼는다면 어찌 될까? 시달림을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현대사에서는 1979년에 일어난 부마항쟁과 1980년에 일어난 광주항쟁 그리고 1987년에 일어난 6.10 민주항쟁을 꼽을 수 있어. 다 120여 년 전에 일어난 동학혁명을 이은 줄기들이야.     


<평화는 가끔 이렇게 뽀송뽀송>에서 말씀과 그림을 소복하니 나눈 아이들은 동학평화그림책학교 1기생이래. 동학평화그림책학교가 뭘까? 다섯 번째 꼬마평화도서관이 있는 고창 책마을해리에서 지난 2019년 여름에 열린 동학평화캠프야. 동학혁명을 청소년 눈길로 바라본 바탕에서 빚은 그림책이 <평화는 가끔 이렇게 뽀송뽀송>이고.     

숙영지를 세우고 난 동학평화그림책학교 1기생들 / 빛그림 책마을해리

동학농민군은 포고문에서 “나라가 위태롭다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거의 제배 불리고 제집 살림을 번지르르하게 하는 데에만 빠져 벼슬아치를 뽑는 문을 재물을 긁어모으는 길로 여기고, 과거 보는 곳을 장터로 만들고 있다.”라면서 “어찌 백성이 헐벗고 굶주리지 않으랴. 백성은 나라 뿌리”라고 외치며 나섰어. 이리 뜯기고 저리 휘둘리며 시달리다 못해 들고 일어난 거지. 


동학을 흔히 농민혁명이라고 하지만 농민을 비롯해 노비, 백정처럼 떠밀리고 구박받는 이들이 다 나섰어. 드물게는 중인이나 양반도 있었지. 이 사람들이 받든 깃발은 ‘평등’이야. 종과 상전, 백정과 양반, 여자와 남자,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서로 ‘접장’이라고 높여 부르며 만나면 맞절을 했다더구나.      

동학군은 ‘적과 맞설 때 지킬 다짐’에서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기는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 어쩔 수 없이 전투하더라도 사람 목숨을 다치지 않는 것이 으뜸이다, 마을을 지날 때 재물을 훔치지 않는다고 했어. 어려움에 놓인 이는 건져주고, 모진 벼슬아치는 끌어내린다고도 했지. 이처럼 동학혁명군 밑절미에는 목숨을 우러르고 여린 이들을 아우르려는 뜻이 고스란해. 


‘동학군 얼결이 바로 사랑이로구나’하고 받아들이면서 떠올린 노래가 있어. 찰리 리치가 40여 년 전에 발표한 ‘난 사랑을 느껴 I Feel Love’가 그것이야. 영화 ‘벤지’ 주제곡으로도 쓰여서 사랑받았지.

영화 <돌아온 벤지> 갈무리

난 어디에서든 사랑을 느껴.

사랑이 쏟아지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어.

사랑은 하루를 밝혀주는 아침 햇살처럼 

모든 이를 어루만져.


하루 내내 사랑이 느껴져.

약속처럼, 노래처럼

사랑은 익히 알고 있듯이 좋은 느낌이야.     


누구라도 어디서든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평화로운 누리가 아닐까.      


축구와 요리를 좋아하고 공부하기 싫다는 민호는 샤워하고 밥 먹을 때가 가장 평화롭다고 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세윤이와 채율이는 도서관에 가면 평화롭다고 하고, 나무를 깎아 뭘 만들기를 즐기는 지호는 목공소에 가면 평화롭다고 하더구나. 

도서관에 가면 평화로워 / 빛그림 책마을해리

예은이는 평화는 아름답다고 하는데, 침실에서 평화를 느낀다던 청윤이는 평화는 함께 먹는 밥이라고도 했어. 청윤이 말처럼 밥을 고르게 나눠 먹을 만큼 사랑 어린 땅에 평화가 오롯해. 나눠 먹기 못지않게 책을 나눠 읽기도 종요로워. 책에는 어진 마음을 살찌울 ‘뜻 밥’이 소복하거든.     

 

2014년부터 문을 연 청소년 동학 캠프는 2019년 7월까지 일곱 차례 열렸으나 지난해에는 코로나 탓에 걸렀대. 부디 코로나가 잦아들어 올여름에는 꼭 다시 열렸으면 좋겠어. 새로운 결이 담긴 평화그림책이 태어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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