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미안해. 식당 일 하느라 핸드폰 꺼 놓고 받지 못해 미안해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습니다. 그런데 요 며칠 가슴이 몹시 아픕니다. 세월호 참사 7주기를 앞둔 지난달 25일, 대법원이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를 아울렀던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이던 김혜진과 박래진에게 죄가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추모 집회 신고를 하지 않고 교통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를 했으니 벌을 받으라는 선고입니다.
2015년 4월 18일, 광화문에는 4월 16일부터 비를 맞으며 꼬박 이틀 밤을 새우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계셨어요. 16일 추모문화제를 마치고 청와대를 찾아가 항의하려 했지만, 경찰이 막아섰기 때문이죠. 18일 서울광장 범국민대회에 모인 사람들은 광화문에 갇힌 유가족도 만나겠다고 나섰지만, 경찰이 세운 일곱 겹으로 둘러싸인 차벽에 막혀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2018년, 경찰이 시위를 가라앉히려고 물대포에 최루액을 섞어 뿌린 건 잘못이라고 짚으며, 세월호 참사에서 나라가 시민 목숨을 지키지 못해 집회가 열렸으니 나라에 책임이 있다고 최근 법원에서 받아들인 점을 헤아려 판결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대법원판결은 매우 생뚱맞습니다.
저러니 참사 여덟 해째를 맞도록 배가 가라앉은 까닭을 밝히지 못하는 것일 테지요. 눈 벌겋게 뜨고 앉아 식구를 잃은 이들은 여태 배가 가라앉은 까닭을 찾아 길거리를 헤맵니다.
가방 고리에 달려 여러 해를 보낸 노란 리본을 내려다봅니다. 개나리만 봐도 가슴이 미어진다는 동무도 있습니다. 억울한 죽음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세월호가 가라앉은 까닭을 밝혀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아픔을 되새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꼬마평화도서관이라면 어디에도 있을, 빛깔이 노란 시집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를 펼쳐 듭니다.
최봉희 시인이 세월호 참사를 겪고 한 해 동안 아끼는 식구를 잃는 사람들과 시민들이 겪은 아픔을 담은 시집입니다. 시인은 80년 5·18 광주 항쟁 때 열일곱 살 난 아들을 찾아 거리에 나섰다가 계엄군이 내려치는 곤봉에 맞아 쓰러진 적이 있는 5.18 부상자입니다. 그때 그 아들은 자라서 열일곱 살 난 아이들을 잃은 단원고 실종, 사망 학생 아버지 또래가 되었습니다. 시집 제목이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인 까닭입니다.
시집을 펼쳐 드니 ‘노란 리본 금지령’이란 제목이 눈에 뜨입니다.
2014년 9월 16일, 세월호 참사 154일째
그날의 참상을 잊지 말자고
우리 함께 울면서 그 아픔 달래자고
대못 박힌 가슴을 끌어안자고
실종자 찾기를 희망하며
우리 모두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위태로운데도
가만히 있으라고 가르친 이 나라 교육부에서
누군가 세월호 법을 걷어찬 이후
이 나라 교육부에서
시도 교육청 산하에
노란 리본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노란 리본마저 가슴에 달지 말라고 가르치는
이 나라 교육법이 세월호에 있습니다.
리본 다는 것도 막은 적 있었군요. 그때 적잖이 흥분했을 터인데 까맣게 잊었습니다. 역사를 글로 남겨야 하는 까닭을 새깁니다. 이번 대법원판결은 리본 달기를 막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시인은 “아이를 잃은 엄마가 길거리 한복판에 얼굴을 내놓고 서명을 받으며, 삭발까지 하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것”을 보면서 “5.18 내 아픔이 4.16 유가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라고 시집을 펴낸 뒷얘기를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던 해 일흔여덟 살이던 최봉희 시인은 지난해 삼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만, 시인이 남긴 싯귀는 올해도 이 아린 사월을 타고 돕니다. 제 가슴에 깊이 저며 늘 맴도는 시는 ‘아빠가 미안해’입니다.
발 동동 구르며 지켜볼 수밖에 없어
아빠가 너무 미안해
수학여행 떠나던 날 아침
아빠는 일터 나간다고 널 보지 못해 미안해
아빠가 돈 잘 벌어오지 못해
가난하게 살아서 너무 미안해
아빠가 많은 시간 함께 보내지 못해 미안해
미안하다
자꾸 그 말해서 미안해
배 안에서 애타게 전화한 걸
식당 일 하느라 핸드폰 꺼 놓고 받지 못해 미안해
아빠가 밤늦게 집에 와서
기다리다 잠들게 해서 미안해
널 먼저 보내고도 밥 먹고
숨 쉬는 게 너무 미안해
아빠가 미안하다 오직 그 말뿐,
그 말 자꾸 해서 너무 미안해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이 시집은 값이 4,160원입니다. 4·16을 잊지 않으려는 뜻입니다. 작고 하찮은 속에도 4월 16일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최봉희 시인과 편집을 한 레디앙 대표 이광호, 디자이너를 비롯해 시집을 만드는 데 애쓴 모든 이들이 마음을 냈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시집을 덮으면서 우리가 하루빨리 세월호 참사를 빚은 까닭을 밝혀야 한다고 다집니다.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누리를 만들어야 하겠다고도 다짐합니다. 누구도 따돌리지 않는 누리 똑같이 누릴 수 있는 누리 그래서 누구하고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누리를 빚는 것이 세월호 참사를 기리는 뜻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