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말-본색 17화

호응은 소략하게 공감은 깊숙하게

험난한 세상, '나만의 전략'

by 나노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친밀하게 특별한 관계를 꾸리고 싶을 때가 있다. 상사의 마음에 방점 하나 찍어보겠다고 얼마나 동분서주 한가? 누군가는 보좌관을 자처하고, 누군가는 관심법으로 손과 발이 되어주기도 하고. 참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뭐 사회생활이 어디 뜻대로 되던가?

첫 직장에서 눈총을 제대로 맞았었다. 이러저러 다양한 이유로. 어떤 때는 술자리에서 상사가 주는 술을 잘 마셔서 미움을 사기도 했고, 과일을 잘 깎아서 돌려 깎기를 당하기도 했다.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흑장미도 죄가 되는가?

미운 것에는 이유가 없으니, 이런저런 핑계로 많은 미움을 샀다. 그러다가 때로는 뜻하지 않게 신뢰를 받기도 했고. 미움과 사랑의 온탕과 냉탕을 20여 년 오고 갔다. 그러면서 서서히 나만의 '사회생활 규칙'이 생겼다. 미움도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 생각하면, 그 많은 에너지를 받았던 것이 때로는 고맙기도.


소소하고 사소하지만

나만의 온도로 세상에 살아남는 비책!



1. 호응은 작은 목소리로, 추임새는 다양하게.


어떤 전문가는 상대의 이야기를 요약하고, 되물으면서 경청을 표현하라지만, 그건 좀 비일상적인 말본색이다.

특정 사안이 벌어졌을 때 신중을 기하며 듣는 방법이지, 무슨 24시간을 살면서 모든 대화를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말만 하나? 일도 해야지...

저질 체력의 소유자인 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대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대화한다. 1~2분 내에 끝나지도 않고, 우린 내일도 만날 동지들이니, 잘 듣고 있음을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

그때 "응. 그렇구나. 아. 그랬어." 식의 영혼 소멸의 추임새는 사양할 것! 이런 답변만 늘어놓으면 상대는 '내 이야기가 듣기 싫은가?' 하면서 멀리 도망가 버린다. 차가운 냉탕을 선물하며... 냉수마찰은 이제 그만!


경청을 알리는 나의 추임새는 이야기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속상했겠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다니, 그런 말을 한 거야? 용서할 수 없다. 진짜 행복했겠다." 등등 감정을 읽어주는 대화를 한다. 그러니 흥분과 몰입을 과장하는 "대박! 헐!" 이런 표현은 어지간해서는 안 쓴다. 과한 리엑션은 희한하게 거부감이 든다. 사람에 따라 온도와 강도가 다를 수 있지만, 내 경험에는 그랬다. 그래서 솔직하게 감정을 공유하는 말을 한다. 그게 나에게도 체력 갈갈(?)이 적기에... 그리고 호응의 정도가 강렬하면 주변 동료들에게 소란스럽다는 핀잔을 듣는다. 눈총으로... 내 사회 초년 시절이 미움의 굴렁쇠였던 것도 그 지분이 크다. 대화 당사자 외의 동료들은 지금 열일 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2. 어제의 대화는 단기기억에 꾹꾹 넣어두기


예전에는 기억 인출이 거의 99% 였는데, 요즘은 많이 떨어진다. 상담일지를 토씨 하나 안 빠지게 올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상담의 기억도 가물가물해서 대화가 끝나면 곧장 기록한다. 기록만이 살 길이다. 그렇다고 동료와 나눈 일상의 수많은 이야기를 어찌 다 기록하겠는가?

최선을 다해 최신값은 기억하려 아등바등해 보는 것이지. 그럼에도 인출 오류가 종종 나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빠른 사과와 진심 어린 후회를 표한다.

가끔 동료들과 대화를 하다가 피가 차게 식을 때가 있다. 어제 내 이야기에 극대노와 분노로 호응해줘 놓고 다음날 기억 못 할 때! 그러면서 "그랬던가?" 뜨뜻미지근하게 대답하면, 진심 많이 서운하다. 다음에는 말을 섞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최대한 24시간 내의 정보는 업데이트를 유지하려 마음을 쏟는다. 뇌의 노화는 막을 수 없지만, 마음의 온도는 지킬 수 있으니까! 기억은 마음 나눔의 기록이니까!! 노력 중이다.



3. 눈은 눈을 보고 어깨는 상대를 향해


회사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자투리 시간에 이루어진다. 잠깐의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 정보 공유의 대부분이다. 그러니 다들 할 일이 있어서 눈은 화면에, 손은 자판에, 얼굴은 정면에 둔 채로 대화가 진행된다. 한 번에 두 가지를 못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참 어렵다. 대화하면서 일을 함께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대신 짧아도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찰나가 있다면 '상대의 눈을 보고, 어깨와 상체는 상대를 향해' 앉는다. 그 짧은 몰입의 자세가 평소 내가 듣던 자투리 대화를 대하던 나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대면할 수 있는 그때에 충분히 경청한다.

경청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표정으로 눈빛으로 상대에게 충실함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러니 그게 1분이든, 10분이든, 1시간이든 중요하지 않다. 그 마음을 담아주는 나의 진중한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그렇다고 가시적인 행동만 취하라는 뜻이 아니다. 진심으로 상대를 담아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온도를 측정하는 센서기가 있다. 이 사람이 나에게 진심인지 아닌지가 바로 온도로 느껴진다. 말보다 행동으로, 표정으로, 눈빛으로, 손짓으로, 발걸음으로... 말본색을 제외한 모든 수단으로 '진심 센서'가 켜진다.

참 놀랍다. 말본색에 말 아닌 것이 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세다니!



[한때 세상을 지배한 호응어 '대박'에 대하여]

대박(명사):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

예) 대박이 나다.


요즘 우리는 대박을 '감탄사'로 사용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사전에는 명사로 적혀있다. 심지어 2021년 옥스퍼드사전에도 deabak 이 등재되었으니, 한국인이 많이 쓰는 한국어임이 틀림없다. 어서 감탄사로 신분상승을 꾀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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