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말-본색 16화

조사만 살짝 바꿔도 위로가 된다.

보조사의 괘씸한 쓰임

by 나노

작년 12월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가장 많이 들은 말.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내 주변 사람들은 이 공식 같은 말을 하지 않지만, 엄마 주변의 어른들은 단 한분도 빠짐없이 저 말씀을 꼭 하셨다. 근황을 묻고, 아버지 사인을 확인한 다음, 꼭 저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왜 저 공식이 생겼을까?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 "


이 말부터 틀렸다. 산 사람도 억울하다. 갑자기 우리 아버지를 빼앗겨서 나는 너무 억울했다. 우리에게 아직 최소한 3~4년의 시간은 남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에, 이별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이별을 준비할 수 없겠지만...

나는 너무 억울했다. 원통했다. 원망스러웠다. 그러니 우리 엄마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어른들이 하시는 저 말씀. "죽은 사람만"의 "만"은 틀렸다.


조사 1. 다른 것으로부터 제한하여 어느 것을 한정함을 나타내는 보조사.
예시) 아내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산 사람은 살아야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래서 '산 사람'이다.

산 사람이 살고자 하는 의욕을 잃으면, 그것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살아 있기에, 억울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겼어도, 떠난 자의 몫까지 더 열심히, 기필코 살아내야 한다. 그게 산 자의 책무성이다. 하기에 매 순간순간 절박하게 스스로와 싸우고 있는, 그 고통을 감히, 타인이 한 마디로 평할 수 없다.

만일 앞의 전제 없이, 이 말만 들었다면 힘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죽은 자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살아 있으니 살아야 한다라고 말을 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꼭 이 대목에서 엄마와 나는 눈이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침묵한다.


관용어라 하더라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고려한다면, 이미 힘들게 꾸역꾸역 견디어 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은 자의 억울함'을 언급하지 말자. 그 억울함은 유가족이 더 깊게 뼈에 새기게 느끼고 있으니.

제발,


"산 사람이 (잘) 살아야지."


라는 말로 대신해 주기를 부탁해 본다. 그래야 비로소 힘이 난다. 물론 응원과 격려의 마음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조사 하나만 바꿔도, 그 세심한 말본색이 진짜 힘이 될 수 있다.

지금 무심코,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우리의 말.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 산 사람은 살아야지"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소중한 것을 잃고도, 무연히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 큰 아픔을 준다. 그리고 그런 억울함을 들어줄 신은 이 땅에 없다. 허니 산 자의 마음이라도 세심하게 다독여 주길...




[사라지길 바라는 속담]

죽은 이만 불쌍하지 산 사람은 제살이한다.

[북한어] 죽은 사람은 더 이상 한세상을 누릴 수 없으므로 불쌍하지만, 산 사람은 결국 제 살 궁리를 다하기 마련이며 아무리 고생스럽다고 하여도 죽은 사람에게 비할 바가 아니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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