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말-본색 15화

말이 없는 말본색

사랑하는 우리 댕댕이의 언어

by 나노

말은 참 귀하고 험하다.

살면서 내 말이 참 귀하고 무서운 것임을 느낀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이다. 당시 몇 개월 임시 담임을 해주시던, 도덕 선생님께서 '이해인의 말을 위한 기도'를 암송 숙제로 주셨다. 우리는 숨 쉬듯 거친 언어를 주고받았고, 그 말에 상처도 받지 않았다. 퉁퉁 튕겨 나가듯 거친 언어 배틀을 했다. 그런 우리를 지켜보던 도덕 선생님의 결단은 바로 '암송'이었다.

시는 너무 길었고 일기 같아서 재미도 없었다. 다만, 이 구절이 눈에 걸렸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 "



언어가 나무라니? 그게 열매를 맺는다고?

그때부터 말을 할 때, 조금 고민이라는 것을 했다. 말이 그렇게 힘이 있는 것일까? 처음으로 말을 함부로, 생각나는 대로, 느끼는 대로 쏟아내면 안 된다는 것을 눈치챘다. 말이 화살이 되어 누군가를 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달콤한 말로 기분을 좋게 하고 들뜨게 하지만 행동이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말은 거칠고 정이 뚝 떨어져도 행동이 따뜻한 사람이 있었다. 말과 행동이 함께 가는 사람은 참 드물었다. 그러면서 말만 넘치는 사람을 경계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준 상처를 위로받았던 대상이 '반려 동물'이었다. 특히 강아지들.. 강아지라고는 하지만 대형견이라고 불러야 맞다. 주로 시고르자브종과 진돗개를 키웠으니깐. 그 큰 덩치에도 주인 앞에서는 강아지로 돌아가니, 난 아무리 덩치가 큰 녀석이라도 강아지라 불렀다. 그리고 강아지의 '말 없는 말본색'을 살폈다. 눈빛과 몸짓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온전한 100%라 말할 수는 없지만,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는 그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함께 자라온 시간만큼 정확하게.


강아지는 거짓말이 없다. 언제나 진솔하다.

눈빛의 온도로 사랑을, 서운함을, 행복함을 표현한다.

몸짓으로, 꼬리의 흔들림으로, 감정의 강도를 드러낸다.

앞 발을 올리는 강도와 높이로 놀고 싶은 마음을 보여준다.

내 팔을, 손을, 얼굴을 핥아주는 강도와 횟수로 사랑의 마음을 들려준다.

때로는 '히융히융' 하는 애교로, '끙끙' 거리는 하소연으로, '컹컹' 짖는 화남으로 그 격렬함을 알려준다.


이보다 더 진솔하고 정확한 의사소통이 어디 있을까?



천둥번개에, 비가 쏟아지던 호우로, 우리 집 댕댕이는 아기가 되었다.

10살이나 되어서... 팔에서 떨어지지 않고, 품에 파고들면서 자꾸 만져달라 말을 했다. 평소라면 내가 쓰다듬는 횟수의 반절이나 나를 핥아주던 녀석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머리부터 꼬리까지 만져달라고 품으로 파고들었다.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가장 좋아하는 츄르도 뒷전으로 놓고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충분히 응석을 부린 후에는 입을 헤~ 벌리고 활짝 웃었다. 강아지와 인간의 언어가 다르다고 해서 녀석이 내 말을 못 알아듣지 않는다. "아이고 예뻐라." "무서웠어? 괜찮아." "사랑해" "다음 주에 또 올게" "간식 먹을까?" "간식 먹은 뒤에 피부약 발라야 해." "이쁜 얼굴에 이게 뭐야. 약을 발라야 더 이쁘지." 등등 이 많은 말을 다 알아듣는다. 뭐 언어 하나하나를 다 알지는 못했도, 상황과 표정으로 나와 거래를 할 수 있는 '인간력(?)'을 지니고 있다. 손바닥에 얼굴을 푹 넣는 모습을 보면, 사랑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으로 하는 대화를 좋아한다. "사랑해"라고. 그러면 어김없이 녀석도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사랑을 갑절로 돌려준다.


우리의 이 교감이 소통이 아닐 수 있을까?


'말 없는 말본색'은 충분히 가능하다. 눈빛과 몸짓으로 말본색을 파악할 수 있다.

언어의 나무는 말로만 열리지 않는다. 우리의 표정과 몸짓, 심지어 한숨의 크기로도 열매가 자라난다.

오늘 우리는 주변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말들에 어떤 표정으로 대답했을까?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4화말의  기초 대사량 올리는 비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