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말-본색 22화

차마, 어찌 아니할 수 있겠는가?

유퀴즈의 '최부자댁'과 '치암최옹묘갈명'

by 나노





'유퀴즈'에서 조선 3대 부자 중 '최부잣집' 후손이 나왔었다. 독립운동을 위해 전재산을 후원하고 명예만 남은 가문. 현재는 그때의 기부금 목록과 독립투사들이 보낸 감사 엽서와 명함만 남아 있다.


"사방 100리 안에 굶는 이가 없게 하라."


이 감동적인 가훈이 훈장처럼 기억에 남았다. 이토록 존경스러운, 아니 경탄스러운 최 씨를 예전에도 본 적이 있다. 바로 박지원의 '연암집' 중 '치암최옹묘갈명'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나눔은 어려운 자가 더 어려운 자에게 베푸는 경우가 빈번하다. 매스컴에 나오는 몇 억 이상의 기부를 일상에서 목격할 일은 거의 없고, '99칸 가진 부자가 한 칸 집 내놓으라' 하는 심술궂은 졸부들만 보았다. 그런데 가산을 탕진해 버리는 수준의 나눔이라니. 이건 상상도 못 할 동화 같은 이야기다. 그 고전 책에나 있을 법한 사람을 구한말 역사 속에서 목도했고, 박지원의 묘갈명에서도 마주했다.


치암(癡庵)은 '어리석은 집'으로 최순성을 이르는 말이다.


어리석을 ‘치(癡)’ 자로 옹에게 별호를 붙이니, 옹 또한 그 호를 받아들여 늙어 죽도록 바꾸지 않았다.


박지원의 '치암최옹묘갈명'을 보면, 최순성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어리석다(癡)'라는 별호를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분명 '조롱과 놀림'의 말이었을 텐데, 그것조차 수용하는 인품의 넉넉함이라니... 참으로 놀랍다. 더욱이 그 '결점(缺)'을 '가득 참(滿)'으로 살려 주는 작가의 역공법 또한 대단하다. 왜 이 대목에서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가 생각나는 것일까?

묘하게도 사람들은 상대가 강퍅한 구석이 있으며 눈치를 살살 보며 비위를 맞추고, 온순하고 넉넉해서 온 품을 내어주는 사람이면 선 넘는 고약한 짓을 서슴지 않고 한다. 어떤 영화에 나왔던 그 대사, "배려가 계속되면 특권인 줄 안다."는 매콤한 조소가 일면 이해될 때가 있다. 종종.


돈을 잘 벌고 불려서 '많이 소유한 사람'은 존경하고 그 방법을 배우려고 줄을 서지만, 돈을 잘(!) 쓰는 사람을 닮거나 따르려 하는 사람은 왜 없을까? 돈은 애초에 융통되어 흘러야 하는 것인데...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면 안 되는 것인가? 그런 면에서 돈줄을 이곳저곳으로 뚫어 흘려보낸 최부자를 어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집안의 기둥뿌리까지 뽑아서 빈민을 구휼하는 것이 괴이하고 기벽 하며 어리석어 보였을 것이다. 만일 오늘날에도 재벌 4세가 가산을 털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본인이 평범한 소시민으로 생활한다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것이다. 그 상상초월의 인물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을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시절 최순성의 삶을 이해하고, 기를 팍팍 살려주는 우리 연암 박지원 님이 계셨다.


이 글은 '특이하다' 하며 읽다가, '특별하다'로 정리된다. 민생 구휼에 진심인, 위대한 실천가의 기벽(?)함! 너무 귀해서 흔하지 않고, 보기 어려운 선행을, 평범한 우리의 눈에는 특이하다로 규정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근일에는 '어른 김장하'님이 계셔서 가슴속 온돌이 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요즘 같은 세상에 치옹의 이야기가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그럼 '치옹의 특별함'에 빠져볼까요?


집 재산이 거만(鉅萬)이었지만, 죽는 날에 미쳐서는 한 냥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이 문구가 치옹에 대한 일부이며 전체인 설명이다. 빌 게이츠도 2045년까지 재산의 99%를 기부하고, 부자로 죽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으니... 치암 최 옹의 삶이 그렇게 이상(?)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빌 게이츠도 못하는 최 옹만의 넘사벽 행동들이 있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 참을 수 없는 급한 선행(수요보다 빠른 공급)

2. 가업 탕진한 종가의 아우, 새사람 만들기

3. 죽은 친구의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기

4. 아버지의 친구 돌보기

5. 목숨 걸고 전염병 환자 간호하기(먼 친척, 친구 등)

6. 선산에 객호 두고 돌보기



무엇 하나 보통인 것이 없다. 이 여러 행적 중에 하나 정도만 실천해도 우리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극찬할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동시다발적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다니. 홍길동이 의적이라 사랑받았다면, 치옹은 의선(義宣)으로 인정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도리어 '어리석다(癡)'며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묘하다.


치암 최옹이 남의 어려움을 급히 도운 것과 같은 경우는 그 자신이 의로운 일에 성급해서였다. 남에게 우환이나 상사(喪事)가 있으면 마음이 허탈하여 마치 허기진 사람이 아침을 넘길 수 없듯이 하고, 그 마음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마치 눈에 가시가 날아든 듯 여겨, 마침내는 성급하게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으며, ‘이 사람이 무슨 까닭으로 나에게는 알리지 않았는가? 내가 혹시 남들에게 다랍게 보였던가?’ 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돌아보아도 이런 일이 없으면 기뻐하며, ‘나는 지금 다행히도 먼저 소식을 들었구나!’ 하며, 허겁지겁 서두르기를 길 가는 사람이 해 지기 전에 대가듯이 한다. 남을 위해 시집 장가를 보내 준 것이 여러 집이고, 남을 위해 염(斂)하고 장사 지내 준 것이 여러 집이었으니, 이러고 보면 그가 아침저녁으로 솥 씻어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일이다.

출처: <연암집 제2권>,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 치암(癡庵) 최옹(崔翁) 묘갈명


묘갈명을 살짝 맛보면, 치옹(癡翁)이라는 놀림이 조금 이해 가는 대목은 있다. '의로운 일에 성급해서...'이 부분이다. 수요 없는 공급도 난처한데, 수요보다 빠른 공급이라니. 받을 생각이 없는데 먼저 주는 것은 '나눔'의 가치가 희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런데도 마치 허기진 자가 아침을 넘기지 못한 듯 갈급하고, 눈에 가시가 날아든 것처럼 촌각을 다투고, 해 떨어지기 전에 길을 서두르는 나그네처럼 급박하였다니. 솔직히 나눔의 과정에 '과함'이 있어 보이긴 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망설이다 차마 말 못 하고 때를 놓칠까?'를 염려해서라면, 이 또한 감동스럽지 않은가? 친부모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 구휼에 힘쓸 수 있을까?

그러니 이 '옹'이야말로 평범한 우리와는 삶의 기준도 판단도 다르다. 타인의 어려움을 보면 애잔해하고 안타까워서 전전긍긍하는 이 마음이야 말로 진정한 '이타적인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작가는 '고전에나 있을 법한 행동'이라 평하였다.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현대에서도 찾는다면, 15년을 열심히 모아서 '루게릭 병원'을 건립한 '션'의 마라톤 기부가 생각난다. 상상할 수 없는 큰 인류애와 그 기벽함에 대하여.


원문이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 보는 맛을 위해!

슬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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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치암(癡庵) 최옹(崔翁) 묘갈명

URL복사


세상에는 본래 남의 어려움을 급히 돕느라고 천 냥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의로운 일이라도 한갓 은혜를 베푸는 데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는 다만 한 고을이나 마을의 협객은 될망정 나아가 온 고장이 선(善)을 향하도록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치암 최옹이 남의 어려움을 급히 도운 것과 같은 경우는 그 자신이 의로운 일에 성급해서였다. 남에게 우환이나 상사(喪事)가 있으면 마음이 허탈하여 마치 허기진 사람이 아침을 넘길 수 없듯이 하고, 그 마음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마치 눈에 가시가 날아든 듯 여겨, 마침내는 성급하게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으며,

‘이 사람이 무슨 까닭으로 나에게는 알리지 않았는가? 내가 혹시 남들에게 다랍게 보였던가?’

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돌아보아도 이런 일이 없으면 기뻐하며,

‘나는 지금 다행히도 먼저 소식을 들었구나!’

하며, 허겁지겁 서두르기를 길 가는 사람이 해 지기 전에 대가듯이 한다. 남을 위해 시집 장가를 보내 준 것이 여러 집이고, 남을 위해 염(斂)하고 장사 지내 준 것이 여러 집이었으니, 이러고 보면 그가 아침저녁으로 솥 씻어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일이다.


반면에 비웃는 자도 있어 말하기를,

“너무도 하다, 옹(翁)의 어리석음이여! 남이 달라고 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베풀어 주기 때문에, 늘상 남을 급한 상황에서 건져 주어도 이렇다 할 감사도 못 받고 칭찬도 못 듣고 마는 게 아닌가?”

하였다.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그걸 가지고 무얼 어리석다 하는가? 혹시라도 마땅치 않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하여 늘상 자기 처자나 형제들에게 숨기고 몰래 베푸니, 이야말로 어찌 대단히 어리석은 자가 아니겠는가!”

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어리석을 ‘치(癡)’ 자로 옹에게 별호를 붙이니, 옹 또한 그 호를 받아들여 늙어 죽도록 바꾸지 않았다.

그러므로 잘난 이건 못난 이건 간에 옹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마치 옛일을 이야기하듯 하였으며, 몇 사람들이 앉아서 서로 이야기하다가 곧 크게 웃는 경우는 반드시 옹이 행한 무슨 일 무슨 일에 관한 것이었다.


종가(宗家)의 아우가 젊은 나이에 허랑방탕하여 전답과 가택을 다 잃고나니, 옹은 집을 사서 그의 선령(先靈)을 편안히 모시고 나아가 그를 대신해서 제전(祭田)을 다시 마련하자, 종족(宗族)들이 서로 옹을 말리며,

“한갓 재물만 허비할 뿐이지 아무 보탬이 안 될 거요.”

하였다. 그러자 옹은 정색을 하면서,

“제전이 있으면 비록 제사를 못 지내게 된다 할지라도 내 마음에는 제사 올린 거나 마찬가지요.”

하며, 그를 도와서 가업을 일으키게 하느라 천 냥이 들었다. 종족들이 자기네끼리 몰래 비난하기를,

“옹은 전에 이미 아무 보탬이 안 되고 그의 허물만 보태 주었는데, 지금 또다시 보태 주니 이 어찌 옹의 허물이아니겠는가?”

했는데, 과연 몇 해가 못 가서 재산을 다 말아먹고 말았다. 그래도 또 그에게 천 냥을 주었더니 마침내 가업을 일으키고 착한 선비가 되었다. 옹의 지극한 정성이 아니고야 이렇게 교화시킬 수 있었겠는가!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이는 그래도 종가의 아우이기에 망정이요. 옹의 친구인 아무 어른이 어질었는데 일찍 죽자 옹은 그분의 어린애들을 어루만져 길러 주었으니, 이런 일은 옛적에나 들었지 지금 세상에는 보지 못했소이다. 고아가 된 그 아들이 장성해서는 가난하여 결혼해서 가정을 이룰 수 없게 되자, 그의 재산을 마련해 주기 위해 수천 냥을 썼으니 옛적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가? 더구나 또 그를 대신해서 돌에 새겨 묘에 비를 세워, 그분의 어진 행실이 사라지지 않게 하였거늘!


아무 성씨인 아무 어른은 옹의 부친의 친구였는데 어진 분으로서 늙어 의지할 곳이 없게 되자, 옹은 반드시 새벽에 가서 밤새 안부를 묻고 손수 음식을 살펴 드리며, 또 매달 지급하고 남은 것을 따로 저축하여 세제(歲制)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였으니, 옛날에도 또한 옹과 같이 독실하고 후덕한 사람이 있었던가?”

하였다. 혹은 의아해하는 이도 있어 하는 말이,

“옹이 재물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의로운 일이라 할 수 있지만, 심지어 먼 일가붙이들이 전염병에 걸렸을 때에도 반드시 몸소 간호해 주었으니 그런 일도 의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이 어찌 먼 일가붙이뿐이겠는가? 오랜 친구가 열병에 걸려 곧 숨이 넘어간다는 말을 듣고, 옹은 손수 약을 달여서는 곧 단번에 땀을 내어 낫게 한 일이 있으며, 그의 종이 병들었을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네.”

하였다. 옹은 의원이 아니다. 그런데도 옹이 보살펴 주기만 하면 늘 살아났다. 옹은 이럴 때면 매양 분을 내어 말하기를,

“한 사람이 전염병에 걸리면 일족이 모두 달아나 피하는 바람에, 병자가 제때 땀을 못 내게 되니 병자가 죽지 않고 어찌하겠는가!”

하였다.


지금 가만히 그의 행적을 검토해 보면, 한결같이 모두 《소학(小學)》에 열거된 아름다운 말과 착한 행실이었다. 이 가운데 한 가지만 있다 해도 실로 월등하게 뛰어난 것일 터인데, 옹에게는 아침저녁으로 마시는 숭늉이나 국물이요, 좌우에 놓여 있는 옷가지나 그릇 같은 것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이 높고 원대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인 줄을 깨닫지 못하게 하였다. 대개 그의 자질이 돈후하고 독실하여 겉모습을 엄숙하게 꾸미는 따위는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고례(古禮)를 몹시 좋아하여, 관혼상제의 예식이 시속(時俗)의 눈에는 사뭇 괴이쩍게 보이니, 향리에서는 이로써도 더욱 옹을 어리석게 여겼지만, 옹은 그럴수록 스스로 기뻐하였다. 그의 담론과 행동을 보면, 예식을 도맡아 하는 가운데 날마다 익힌 게 아닌 것이 없었다.


선산의 묘목(墓木)을 기르기를 어린아이 기르듯 하여, 열매 맺은 잣나무 수만 그루가 묘역을 빙 둘러 있었다. 그리고 객호(客戶)들을 두어 수호하게 하며, 은혜와 신의로써 그들을 어루만지니 모두 서로 타이르며 다짐하기를,

“이는 효자가 손수 심은 것이니 가지 하나인들 차마 잘라 낼 수 있겠는가?”

하였다.

집 재산이 거만(鉅萬)이었지만, 죽는 날에 미쳐서는 한 냥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옹의 여러 아들들과 사이가 좋았으므로, 옹을 자세히 알기로 나 같은 사람이 없다. 그러니 지금 묘 앞의 비를 새기는 데 정분상 글을 지어 주기를 사양할 수 있겠는가?


옹의 휘는 순성(舜星)이요, 자는 경협(景協)이다. 시조인 원(遠)이 고려 때 양천(陽川)에 백(伯)으로 봉해져 그대로 양천 최씨가 되었다. 증조의 휘는 아무인데 증(贈) 집의(執義)요, 조부의 휘는 아무인데 증 좌승지요, 부친의 휘는 아무인데 증 호조 참판이다. 모년 모월 모일에 나서 모년 모월 모일에 죽으니 향년 71세였다. 모년 모월 모일에 아무 좌(坐)의 벌에 장사 지냈다. 네 아들을 두었는데 진사(進士)인 진관(鎭寬)과 진함(鎭咸)ㆍ진익(鎭益)ㆍ진겸(鎭謙)이다. 명은 다음과 같다.



숭산(崧山)에 선영 / 有塋于崇
군자가 봉해진 곳이로세 / 君子攸封
새파랗다 저 나무는 / 有樹如蔥
오립송(五粒松)이 아닌가 / 五粒之松
뉜들 차마 훼손하리 / 誰忍毁傷
그 얼굴을 뵈옵는 듯한데 / 如見其容
잊으려도 잊을 수 있을까 / 俾也可忘
온후하신 치옹 어른을 / 恂恂癡翁
효를 확대하면 충이 되니 / 推孝爲忠
벗에게도 충실했네 / 忠厥友朋
의로운 일 예절에 맞아 / 義行禮中
다 충심에서 우러난 것 / 罔不由衷
명성만이 드넓은 게 아니요 / 匪博厥聲
덕이 실로 몸을 윤택하게 하였네 / 德實潤躬
천 년 뒤에 그 풍모 상상하려거든 / 千載想風
여기 새긴 명을 보시구려 / 視此刻銘


향리 사람들과 먼 일가붙이들의 입을 빌려, 시원시원하고 의로운 일을 즐기며 남의 어려움을 급히 돕는 사람을 그려 내었는데, 옆에 있는 듯이 살아 움직인다.


9층의 누대를 오르면 한 층 한 층 높아질 때마다 곧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는 것과 같고, 동천(洞天)에 들어가면 물은 단지 맑은 원천 하나이건만 매양 한 굽이마다 전에 본 모습과 달라져서, 쏟아져 내리는 것은 폭포가 되고 부딪치는 것은 여울이 되고 멈춘 것은 못이 되며, 비단 무늬처럼 잔물결이 이는 것도 있고, 거문고와 축(筑)과 환패(環珮) 소리가 나는 것도 있는 것과 같다.


나무는 구부러진 것이 싫지 아니하고, 돌은 괴이한 것이 싫지 아니하고, 기슭은 비스듬한 것이 싫지 아니하고, 오솔길은 경사진 것이 싫지 아니하고, 띳집과 대울은 어리비치고 이지러져 가린 것이 싫지 아니하다. 그리고 가끔 밭 가는 사람이나 나무꾼을 마주치게 되면 그들의 여윈 얼굴이 기이하고, 말라서 뼈가 울뚝불뚝 드러난 것이 싫지 아니하다.


[주-D001] 치암(癡庵) 최옹(崔翁) 묘갈명 : 연암은 개성 사람으로 자신의 문생(門生)이 된 최진관(崔鎭觀)의 청탁으로, 1789년 가을에 그의 부친 치암 최순성(崔舜星)의 묘갈명을 지어 주고 비석에 새길 글씨까지 직접 써 주었다고 한다. 《過庭錄 卷4》 최순성에 대해서는 김택영(金澤榮)이 지은 전(傳)이 있다. 《崧陽耆舊傳 卷3 任恤傳 崔舜星》

[주-D002] 솥 …… 있다 : 음식을 곧 끓일 수 있게 솥을 깨끗이 씻어 놓고 기다리듯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기하고 있다는 뜻의 속담이다.

[주-D003] 마찬가지요 : 원문은 ‘猶’인데, 《연상각집》, 《하풍죽로당집》, 《운산만첩당집》, 《백척오동각집》, 《동문집성》 등에는 모두 ‘由’ 자로 되어 있다. 의미는 같다.

[주-D004] 아무 어른 : 《동문집성》에는 ‘고경항(高敬恒)’이라고 밝혀져 있다. 고경항은 본관이 제주(濟州)이고 자는 의중(義中)으로, 장창복(張昌復)의 문인이었다. 산중에 들어가 학업에 전념하다가 향년 38세로 병사하였다. 《崧陽耆舊傳 卷1 學行傳 高敬恒, 卷3 任恤傳 崔舜星》

[주-D005] 아무 …… 어른 : 《동문집성》에는 ‘임군 두(林君㞳)’라고 밝혀져 있다. 임두는 본관이 곡성(谷城)이고, 해동악부(海東樂府)를 남긴 저명 시인이자 학자인 임창택(林昌澤)의 조카였다. 《崧陽耆舊傳 卷2 文詞傳 林昌澤, 卷3 任恤傳 崔舜星》

[주-D006] 세제(歲制) : 관을 만드는 것을 이른다. 사람이 60세가 되면 죽을 때가 가까우므로 1년에 걸려 관을 미리 만들어 두는 법이라고 한다. 《禮記 王制》

[주-D007] 아름다운 …… 행실 : 《소학》의 가언(嘉言)과 선행(善行)에 소개된 모범적인 사례들과 흡사했다는 뜻이다.

[주-D008] 객호(客戶) : 그 고장에 2대(代) 이상 거주하고 있는 호구를 주호(主戶)라고 하고, 타향에서 새로 들어와 사는 호구를 객호라고 한다.

[주-D009] 백(伯) : 고려 말기에 공신들에게 내렸던 봉호(封號)이다.

[주-D010] 증조의 …… 참판이다 : 선계(先系)에 대한 기술(記述)에 착오가 있는 듯하다. 최순성의 선조 중에 집의(執義)를 증직받은 이는 증조가 아니라 고조인 천립(天立)이고, 좌승지를 증직받은 이는 조부가 아니라 증조인 일신(日新)이며, 호조 참판을 증직받은 이는 부친이 아니라 조부인 외형(巍衡)이다. 부친인 석찬(錫贊)은 벼슬을 하지 못했다. 《연암집》 권7에 수록된 ‘운봉 현감 최군 묘갈명(雲峯縣監崔君墓碣銘)’은 최순성의 계부(季父)인 최석좌(崔錫佐)의 묘갈명인데, 거기에는 최석좌의 부친이 증 호조 참판, 조부가 증 좌승지로, 선계에 대한 기술이 올바르게 되어 있다. 박철상, 「개성(開城)의 진사(進士) 최진관(崔鎭觀)과 연암(燕岩)」, 《문헌과 해석》 32, 2005. 10. 참조

[주-D011] 진관(鎭寬) : 대부분의 이본들과 관련 기록들에는 모두 ‘鎭觀’으로 되어 있다.

[주-D012] 진겸(鎭謙) : 그의 청탁으로 지은 독락재기(獨樂齋記)가 《연암집》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주-D013] 숭산(崧山) : 원문의 ‘崇’ 자는 ‘崧’ 자와 통한다. 숭산은 개성에 있는 산으로, 송악(松嶽)이라고도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4 開城府》 개성을 숭양(崧陽)이라 한다.[주-D014] 오립송(五粒松) : 잣나무를 이른다. 잣나무는 잎이 다섯 개씩 모여 나기 때문이다.[주-D015] 덕이 …… 하였네 : 《대학장구》 전(傳) 6장에 “부(富)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한다.〔富潤屋 德潤身〕”고 하였다.[주-D016] 환패(環珮) : 허리에 차는 고리 모양의 옥(玉)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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