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불의 인생기!
현영기는 승근이다.
식구들에게는 영기로 불렸고 동네에서는 승근으로 불렸다. 집으로 배송 오는 우편물은 현영기로 적혀 있었고, 찾아오는 동네 할머니들은 현승근이를 찾아왔다. 이름이 두 개나 되는 경우는 종종 있을 수 있지만, 아내를 제외한 모든 것이 다 둘이니 참 유별나다 할 것이다. 두 분의 아버지와 두 분의 어머니, 두 분의 스승님과 두 아들과 두 딸까지. 둘 둘 둘 둘, 그 따불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1944년 4월 29일.
갑신년에 부친 현이봉과 모친 최순례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물론 주민등록에는 다른 년도에 등록되어 있으니, 따불의 인생 기본기를 갖추고 있다.) 형님 현00와 여동생 현00 2남 1녀를 놓고, 부친이 작고한 것은 영기가 3살 때 일이었다. 두 살 터울인 막내 현00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갑작스레 화병으로 급히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이 겪은 어려움이야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모친인 최순례는 생활력이 강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남다른 자식 사랑과 책임감으로, 앉은자리에서 자식을 굶길 수가 없었다. 타고난 손재주로 싸릿대와 댓가지를 엮어 광주리를 만들어 장터에 내다 팔았다. 어린 두 아들과 뱃속의 새끼를 위해서라면 양반 댁 규수의 체면도 주변 사람들의 뭇 뒷말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다만 홀시어머니께 잠시 애들을 봐 달라 맡기는 것이 영 미덥지 않았을 뿐이다. 홀시어머니는 큰 집 장손인 현왕석이만 덜썩 업고 다니며, 그보다 어린 둘째 아들 이봉의 자식들은 눈에 담지도 않았다. 앞세운 자식에 대한 서러움이었을까? 남편 잃은 며느리에 대한 타박이었을까?
하루 종일 장터에서 손발 떨며 장사를 하고 돌아오면, 어린 두 자식들이 어떤 날은 뱃골이 홀쭉해서 저녁밥을 허천들 듯 먹고, 또 어떤 날은 얼마나 먹었는지 장구통만한 배를 붙잡고 배앓이를 하였다. 굶겨도 속이 상하고 먹여도 애가 타는 말 못 할 시집살이를 꾸역꾸역 견뎌야 했다. 그러다 왕석이네가 가산을 팔아 전주로 이사를 나가면서 더는 의지할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두 자식과 뱃속 어린것의 입에 거미줄 치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이 개가(改嫁)였다.
상대는 황(黃) 가로 딸만 셋을 둬서 아들을 낳아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곳에서 먹을 만큼 사는 집안이라 자식 굶길 걱정은 없다 하니, 오직 그 말이 동아줄 같았다. 1940년 후반. 내 새끼 입에 먹을 것만 넣을 수 있다면 못할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순례는 5살 00와 3살 영기를 데리고, 단촐한 옷가지만 챙겨 산날맹이를 넘어 물어물어 황씨 일가를 찾아갔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완전 낭패였다. 아들 낳아줄 사람은 원해도 딸린 자식은 보지 않겠다는 일갈을 전해 들은 것이다. 이미 성사된 혼담에 이런 고약한 일이 있을까? 매파가 전하지 않은 자세한 속사정이 도리어 모두를 난감하게 하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할 때, 딱한 이들을 보자고 부른 것은 황인만이었다.
사정을 듣자 하니 모두 입장이 곤란하였다. 봇짐까지 싸서 어린 자식들과 산을 넘어온 순례의 뒷모습이 퍽 안타까웠다. 특히 저 멀리 아장아장 걷는 서너 살 남짓 된 어린것의 뒤태가 눈에 밟혔다. 저 어린것이 어찌 산길을 넘어 이곳까지 왔을까를 생각하니 마음 끝이 찡하였다. 참 귀엽고 한번 안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여 순례 모자를 집안으로 불러 만나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가까이서 보니 아기는 뽀얀 볼살에 귀티가 나고, 반짝이는 눈빛이 보통 영특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눈인사를 찡긋하자 언제 보기라도 한 듯, 인만의 품에 폭 안겨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인만은 이런 사내 녀석을 살아생전 품에 안아보는 것이 원이었으니, 묵직한 엉덩이까지 실퍽해서 마음에 쏙 들어버렸다. 그제야 뜯어보니 순례는 키도 제법 있고, 말랐어도 꼿꼿한 것이 자식 교육은 너끈히 할 사람이었다. 어린 자식들을 저리 잘 키웠으니 절반은 믿을 만하고, 대를 이을 똘망똘망한 아들만 낳아준다면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전처의 소생인 세 딸을 오롯이 키워줄 아내를 찾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아들 둘이 생긴 것이라 생각하니 도리어 결정이 쉬웠다. 다만, 그곳은 황 씨 일가 집성촌이라 안사람을 들이는 일도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었다. 집안 어른을 찾아뵙고 순례 모자를 품겠다고 하니 다들 염려하는 눈치였다. 허나 한번 결심하면 되돌리는 일이 없는 인만의 성품을 알기에 모두 그 결정에 따르는 분위기였다. 다만 한쪽에서 동네 아짐들이 집안사람 들이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며 볼멘소리를 하였다. 인만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황 씨 가문을 이을 수만 있다면 그 무엇도 아깝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아랫방에 웅크리고 있던 세 모자를 이끌어 안방으로 건너와 짐을 풀어주었다. 그렇게 황 씨 처마 밑에 이봉의 자식들이 터를 잡았다.
이튿날 아침. 인만은 오랜만에 뜨끈하고 짭짤한 된장국으로 조반을 받았다. 슴슴하기만 하던 기존 상과 달리 입에 착착 달라붙는 구수함이 제법 구미에 맞았다. 깔끔한 순례의 손길이 집안의 여기저기를 스치며 살림은 하루가 다르게 구색을 갖추어 갔다. 안사람이 난 자리가 이렇게 티가 났던가 싶을 정도로 자리를 찾아갔다. 큰 녀석 00는 고집이 보통이 아니었다. 5살이지만 제 입맛에 맞는 것과 싫은 것을 명확하게 표현했다. 눈치도 보통이 아니라 상대가 본인을 이뻐하는가 아닌가도 찰떡같이 알아서 사람을 가렸다. 둘째 영기는 붙임성이 남달랐다. 인만의 무릎에 폴짝 올라서 실룩샐룩 웃기도 잘하고, 배다른 누이들 품에 안겨서 까르륵 소리 내어 웃는 것이, 어린 나이에도 뭔가를 아는가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서서히 서로 깃들어 가던 중 순례는 셋째를 해산했다. 셋째는 순례의 첫 딸이었고, 인만의 여섯째였다. 내심 아들이기를 바라던 인만은 실망했지만, 그래도 이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는 달근달근하거나 싹싹하지는 않아도 우직하니 본인 자리를 알아서 찾아가는 사람이었다. 눈치 빠르게 제 자리를 지켜내는 것을 보는 일은 흐뭇하였다. 이것저것 일손을 돕는다고 드나들던 옆집 아짐들의 발길이 서서히 끊기고, 어느 순간 집안은 순례의 힘으로 저절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종친들도 그 현명한 처신에 더는 말씀이 없으셨다.
몇 해 뒤 인만의 첫아들인 임0를 낳았다. 그 뒤로 또 중0를 출산했다. 아들이 포원이던 인만에게 두 아들은 대단한 축복이고 선물이었다. 임0 뒤로 낳은 딸아이가 일 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되돌아간 것은 내내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순례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어머니를 하늘처럼 여기고 말씀을 목숨처럼 따랐다.
해소를 앓던 인만의 병세는 겨울을 지날수록 점점 더 악화되었다. 순례가 지성으로 탕약을 달이어 줘도 밭은기침은 더 심해졌다. 고작 대여섯 먹은 큰아들 임0에게 집안을 맡기기란 어불성설이었다. 그래도 순례의 큰아들 00와 영기가 있으니 다행이었다. 식구 11명의 살림을 꾸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이면 사내 녀석들은 보리밥을 양껏 먹고, 저보다 큰 지게를 지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귄 떨어지는 막내딸은 제 어미 옆에서 뒷설거지를 하느라 항상 분주하였다. 조막만 한 손으로 솥뚜껑을 닦고 설거지를 하는 것을 보면 퍽 암팡졌다. 황금 소 한 마리에 복돼지 2마리, 황금알을 낳는 닭 수 십 마리. 살림은 어지간하였다. 다만 몸이 성치 않은 인만이 일을 하지 못하니, 열 살 남짓한 큰아들 00와 영기가 땔감을 해온다 해도 군불을 지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열셋이 된 큰아들 00는 기술을 배우겠다며 가구 공장에 취직을 하였다. 제 한몫을 너끈히 하고, 어미를 닮아 손재주가 남달랐다. 제 밥벌이를 잘 찾아갔다 싶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믿고 맡길 사람은 영기뿐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기가 남달랐던 영기는 어째서인지 감기도 잘 앓고 입도 짧아 배앓이도 심하였다. 소여물도 잘 챙기고 땔감도 푸짐하게 들고 나지만 약한 체력은 항상 걱정이었다. 방에 군불을 지피고 꽁꽁 언 손으로 탕약을 들고 들어오는 영기의 두 손을 꼭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엉덩이 밑에 가장 따뜻한 아랫목으로 손을 넣어주고 눈을 지그시 바라보면, 그윽하게 응대하는 것이 참 영글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흐뭇하였다. 그리고 탕약을 한 술만 떠먹고, 순례 몰래 영기에게 주며 말하였다.
“이거 먹고 어린 동생들 잘 보살펴라.”
어찌 알았겠는가?
곧 떠날 아비가 어린 동생들을 당부한 것임을... 어린 영기가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다만, 그렇게라도 부탁하고 싶었던 인만의 간절함이었다. 제 키보다 높은 지게를 메고 한가득 땔감을 해오던 영기 녀석의 뱃보와 제 어미와 동생들을 지킬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영기의 가슴에 깊이깊이 남아서 ‘한평생 잊은 적 없는 약속’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