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
아버지를
작년 12월 말에 보내드리고...
일상은 온통 엉망진창이다.
이별은 언제나 준비가 없고. 거칠고 가혹하다.
오늘도 49제를 모시고 왔다. 매주 목요일마다 총 7번을 큰 제를 올리고 날마다 제사를 지낸다. 평소 아빠가 좋아하시던 음식으로 올릴 수 있어서 그게 큰 위안이 된다. 지금도 아버지를 챙겨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게 참 감사하다 .
그런데,
가장 서글픈 것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가 닿지 않는 것이다. 중간에 저승의 언어를 아는 스님의 표정으로 그저 조심스럽게 가늠할 뿐이다.
'아~ 싫지는 않으신가 보다.'
이렇게.
살아생전 울 아부지는 유난한 분이셨다.
잠시도 참지 못하는 급한 성격도,
지나가는 손님 한 분이라도 밥상을 챙겨드려야 하는 오지랖도,
본인이 못한 공부를 자식이 풀어주기를 바라는 헛된 꿈도,
마을 사람들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넓은 아량도,
그 어는 것 하나도 일반적인 것이 없었다.
그래서 참 대근했다.
그 뜻과 의중을 알아채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생과 사가 달라지고 나니 더 어렵다.
아무것도 안 들리고 안 보이는데...
어찌 의중을 알 수 있을까?
박목월의 '하관'을 가르칠 때,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이 구절이 막연하게 가르쳤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대한 인식! 허무함과 적막함의 정서!
이렇게. 참 야무지게도 지식을 전달했더랬다. 그래 이승과 저승은 다르겠지... 하며 머리로 이해하고 분석하고 정리했었다.
지금, 내가 당하고 보니 참 가슴이 미어지는 구절임을 알겠다.
나의 "아빠 아빠~"
소리가 더는 울 아버지께 닿지 않으니.
내 아버지는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
항상 손에 닿고 부르면 대답하고 두 눈 맞춰 그윽하게 봐주시던 울 아부지가, 이제는 없다.
스님께는 49일까지는 다 듣고 보고 아신다고 해주셨다.
그래서 내가 못 듣고 못 보고 못 만져도
아직은 이 땅에 계신다고 하셨다.
다만, 서로 다른 존재가 되어 닿지 못하는 것이라고.
허나 49제가 끝나면 그때는 그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다고 하신다. 다른 세상으로 온전하게 떠나시는 것이라고...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아직은 같이 있다는 말씀이 그렇게 위로가 되었다.
아직은 아직은.
이별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조바심이 난다.
뭘 더 해드려야 할까?
뭘 더 해드릴 수 있을까?
애가 탄다.
아둔한 딸년이 못 알아채고 더 못할까 봐.
이 순간이 이렇게라도 함께 흐르니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가도, 덧없는 생이 원망스러웠다가도, 아직은 뭐라도 더 해드리자 다짐을 했다가도, 아부지가 좋아하셨던 꽃을 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오늘 하루 해가 너무 아깝다.
하나라도 더 해드려야 하는데..
그저 평소에 좋아하시던 빈대떡을 지지고, 연근차를 올리고, 단팥빵을 드리고, 딸기를 더 사오면서...
산 자들을 위한 위로를 더한다.
죽은 존재가 어찌 이 모든 것을 받을까만은..
이 막내딸의 애달픈 마음만은 아실 것이라 믿어서
내일도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다녀올 것이다.
부디 울 아부지가 평안하고 더는 아프시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