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前) 글을 먼저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렇게 일요일은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살고 있는 날이 일요일인지, 평일인지 조차도 구분이 가지를 않았다. 금요일부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에 눈은 이미 퀭해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오늘 일찍 침대에 누울 수는 없었다.
나는 집에 들어가기 전 집 바로 앞 편의점에 들려 시원한 음료수를 하나 사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시원한 콜라를 단숨에 들이켜고 싶었지만, 며칠 전 생긴 식도염에 치명적일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바나나우유를 집고 지폐 몇 장을 건네며 편의점을 나왔다.
나는 편의점에서 집으로 향하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선생님이 내게 첨삭해주신 내용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았다. 문항에서의 몇몇 문장은 부족한 시간과 급한 마음 탓에 부족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나는 그것을 다시 한번 고쳐서 내일까지 다시 첨삭을 받아야 했다.
나는 다시 한번 막막해졌다.
컴퓨터 앞에 앉아 문장을 수정하려니 어떤 것부터 고쳐나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그리고 마치 밝은 곳에 있다가 어두운 곳으로 이동할 때 차츰 별이 하나둘씩 나타나는 것처럼, 나 또한 어두운 방 안에서 글을 볼수록 오류와 허점들이 계속 하나둘씩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이 문장은 분명 고쳐야 해. 하지만 이 문장을 고친다면 맥락에 따라서 저 문장도 고쳐야 하지. 하지만 또 저 문장을 고친다면 전체 흐름이 이상해지잖아?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하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하지만 나는 오아시스로 향하는 이정표를 이미 보았어. 하지만 그 이정표가 알려주는 방향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잖아. 그럼 나는 다시 되돌아가서 새로운 길을 나아가야 하겠지. 그러나 나는 이미 너무 먼 길을 걸어왔어. 되돌아가는 것이 맞을까? 아! 아무나 내게 답을 알려주었으면…….
나는 결국 되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조금 늦더라도 올바른 길을 가는 게 맞겠지.
내가 썼던 내용을 거의 지우고, 다시 내 생각을 끄집어내어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이틀 동안 구상해놓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나는 금요일에 겪었던 혼란을 겪지는 않으며 수월하게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문장을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고쳐나가는 것보다 아예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 더 마음 편할지도 모른다. 아까 샀던 바나나우유가 냉장고에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잠시 의자에서 일어나 냉장고 한쪽에 있던 바나나우유를 꺼내, 노란 빨대를 꼽고 바나나우유를 조금씩 삼켰다. 예상치 못한 달콤함이 나의 입에 가득 퍼지고, 나는 시원함이 나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원래 바나나우유를 좋아하지도 않고 이것을 살 생각으로 편의점에 들린 것도 아니었지만, 어두운 방안에 켜져 있는 컴퓨터와 그 옆에 놓인 바나나우유는 나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 몸 안쪽으로 들어오는 시원함을 느끼며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새벽 3시쯤 되었을까, 모든 작업이 끝이 났다. 내용을 다 쓴 것이다.
나는 첫째 날 처음으로 타자를 칠 때 이 모든 작업이 끝난다면 난 바로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그럴 것이라고. 그러나 세 번째 문항까지 모두 완료하고 나서의 나는 거대한 피로감으로 그런 좋은 것을 생각할 체력이 남아 있지를 않았다. 그리고 나는 기절하듯이 침대에 누워 내가 무사히 6시에 일어나기를 기약하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월요일의 새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니, 사실 이미 6시간 전에 나의 월요일은 시작되었지.
지난날의 월요일은 늘 일어나기가 힘들었고 학교에 가기가 싫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힘들지만 빨리 일어나 누구보다 학교에 가고 싶었다. 어쩌면 학교에 가는 것이 더 편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6시에 일어나 내 방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보았다.
이제야 나는 '행복함'을 느꼈다. 금요일에 학교를 갈 때 마중 나왔던 그 똑같은 햇살을 다시 한번 온몸으로 만끽했기 때문이다.
늘 학교에 같이 가는 친구 B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 안에는 전화 연결음이 울려 퍼졌고, 밖에는 아침의 새소리가 반쯤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오랜만에 B군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나야."
"그래, 왜 주말 동안 연락이 없었어?"
난 차마 내가 가려는 대학에 자기소개가 있다는 걸 나흘 전에 알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는 말해야겠지.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응. 조금 바쁜 일이 있었어.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줄게." "그나저나, 오늘 비 온다는 소식 있었어?"
"아니, 오늘은 날씨가 맑을 거라고 들었어."
B가 대답했다.
"그럼 자전거 타고 가자."
"좋아. 늘 가던 대로 7시 40분까지"
"응, 그럴게."
B군은 나와 도보로 2분 거리의 아파트에 살았다. 사실 바로 옆집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나는 가방을 챙겨 여유롭지만 힘차게 B의 집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예정된 시간보다 3분 늦게 B가 나왔다.
우리는 평소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학교를 향해 발을 굴렸다.
나의 자전거와 B의 자전거가 멀어질수록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으며, 자전거가 가까워질 때는 다시 내 곁에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을 주게 하였다.
자전거가 횡단보도의 빨간 불을 앞에 두고 잠시 멈췄을 때, B가 입을 열었다.
"너 평소보다 피곤해 보여."
나는 과자를 몰래 먹다 걸린 아이처럼 흠칫 놀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조금. 학교에 가서 잘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주말에 도대체 뭐를 한 거야? 수험생의 표정이 드디어 너한테서 보이는군."
수험생의 표정! 수험생의 표정이란 무엇이었을까? 나는 나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말에 비친 나의 얼굴을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었다. 과연 B가 본 나의 얼굴은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는 나의 모습이었을까. 나는 부디 후자가 아님을 빌며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켜지는 것을 보았다.
"나 잠깐 편의점 좀 들릴게."
"등교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응. 근데 잠깐 사고 싶은 게 있거든. 먼저 올라가도 돼."
"좋아, 대신 늦게 들어오지 않도록 해."
"내가 지각하는 걸 본 적이 있어?"
"아예 안 나오는 건 봤지."
"그래, 이따 보도록 해."
나는 B가 뒤로 멀어지는 것을 보고 학교 바로 옆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냉장고에서 바나나우유를 꺼내 계산대에 놨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의 일이 반복되는 것만 같았다. 과연 어제 수정한 내용을 선생님은 어떻게 보실까. 아니, 정녕 이대로 나의 자기소개서 내용을 끝마쳐도 되는 것인가? 머릿속이 한창 복잡했다.
"학생, 1400원 나왔어."
오늘 카드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지갑 속에 구겨져있던 천 원짜리 지폐 한 장과 가방 속에 널브러져 있던 구릿빛 동전 몇 개를 꺼내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는 편의점을 나왔다.
편의점을 나와 바라본 후문 뒤로 보이는 학교의 모습은 기이하게만 느껴졌다.
어제 보았던 저녁노을과 산등성이의 구름은 온데간데없었다. 오히려 9월 아침의 학교는 겨울이 빨리 올 것이라는 걸 암시하듯이 차가운 기운을 뽐내고 있었다. 황톳빛 벽돌은 차가운 분위기에 압도당해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고, 차가운 가을비에 흘러내린 벽면의 페인트는 땅으로 꺼져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학교에 들어서서 바로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 드디어 어제 내용을 다 수정했습니다."
"그래, 정말 수고했다. 내가 내용을 먼저 한번 보고 이따 같이 교무실에서 다시 한번 같이 보는 게 나을 것 같구나. 혹여나 문제가 있다면 그때 다시 수정하면 될 거야."
나는 그래도 마음이 한 층 놓였다.
그러나 이미 나는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자기소개서에서 무엇을 더 고쳐야 할지 생각하는 것 밖에 없었다. 나는 그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뇌리에는 계속 그것이 스쳐 지나갔다. 무의식 속에 계속 자기소개서에 대한 걱정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학교에서의 8교시 정규시간은 모두 지나갔고, 나는 선생님께 마지막 조언을 듣기 위해 바로 위층에 위치한 교무실로 나의 발걸음을 옮겼다. 정규 수업이 끝난 학교는 조용했다. 단지 방과 후 수업을 듣기 위해 남아있는 학생들의 슬리퍼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와 책상 끄는 소리가 빈 공간에 울려 퍼졌을 뿐이다.
나는 교무실 문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 선생님 옆의 의자에 앉았다.
"그래, 잘 왔다 J군. 어제 보내준 내용을 보았는데, 큰 틀에서는 문제가 없을 것 같구나."
"그게 정말일까요?"
"응. 내용은 아주 좋아. 이러한 표현도 매우 좋고…. 이 정도면 감점될 일은 없을 것 같구나."
자기소개서에 드문드문 적힌 표현들을 가리키며 선생님과 나는 비로소 진정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5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말로 표현 못할 해방감을 느꼈고 대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오아시스를 찾은 것이었다.
나는 황량한 사막을 걸어온 거야.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지 모르는 사막에는 모래바람이 나의 피부에 상처를 남기고 지나갔지. 그리고 바보 같은 나는 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떠있는 것도 모르고 밤새 땅만 바라보고 오아시스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오아시스로 향하는 길의 잘못된 이정표를 곧이곧대로 믿고 사막을 횡단했어. 그러나 이 길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다시 돌아와 다른 갈림길로 향한 거지. 나는 주황빛의 사막에 서있는 이정표에 적혀있던 화살표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어. 그래야 이 길을 걷는 다른 사람들도 엉뚱한 길을 가지 않겠지. 그러나 잘못된 길로 가도 그건 '틀린' 것이 아니야. 오히려 갈증이 심해질 때 찾은 오아시스의 물은 더 맛있는 법이지. 나는 내가 한계까지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진정한 오아시스의 성수를 찾았고 그것은 내게 큰 행복감을 안겨주었어. 어디서도 표현하지 못하고 바꾸지 못할 경험을…….
"나흘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내가 말을 먼저 꺼냈다.
"아니야, 그대가 더 수고가 많았지. 정말 수고했다."
그리고 나는 가방을 챙겨 기쁜 마음으로 교무실을 나왔다.
정규 수업이 끝나고 나는 야간 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나는 야간 자율학습실로 올라가기 전 엘리베이터에서 복도 끝에 위치해있는 교무실을 보았다.
복도는 적막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공허하지 않았다. 내 주위에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나흘간의 여정은 일요일의 나의 말대로 모든 것이 '추억'으로 바뀌었다. 마치 석유가 옛날에는 쓸모없는 검은 물이었지만 지금은 금과 같은 가치를 지닌 것과 말이다. 나는 나의 첫 번째 문항을 작성할 때 이 지옥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느꼈다. 내가 왜 이런 경험을 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왜 바보같이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인가. 나흘 만에 대학 면접관의 마음을 만족시킬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작성하단 말인가! 그러나 자조와 한탄으로 가득한 날들은 다 지나갔으리라. 이 또한 모두 지나갈 테지만 이 추억만은 나에게 다신 없을 경험을 내게 안겨주었으리…….
나는 완성된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하루 더 단어의 선택이 맞는지, 적절한 표현을 사용했는지 다시 한번 검토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무 오류가 없다는 걸 확인한 나는 나의 자기소개서를 원서비 결제를 하기 전의 창에 작성했고, 나는 나흘간의 여정의 끝을 '원서 접수' 버튼 하나를 누름으로써 끝마쳤다.
그리고 나는 그다음 날도 밤 10시에, 야간 자율학습실을 끝마치고 학교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이제 집에 가도 다시 컴퓨터 앞에 앉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제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해야겠지.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상관이 없었다. 마치 한 여름밤의 꿈같았던 나흘은 이제 더 이상 기이한 모습을 자아내지도 않았고, 다만 나의 마음 한구석에서 영원히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이렇게 내가 다시 타자를 두드려 소중한 경험을 공유하는데 영감을 주고 있다. "이 얼마나 황홀한 경험인가!"
.
.
.
.
.
.
.
.
.
.
.
.
.
-끝-
※ 상기 글은 필자가 보고 느낀 것을 진솔하게 써 내려간 글이며, 특정 인물에 대한 비방 혹은 비난은 삼가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