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홈런볼

한 시간의 피로는 홈런볼 한 알로 충분했던 시절

by 황신혜신


야간자율학습에 지친 몸을 이끌고

밤 10시 무렵 집에 오는 고3 언니.

아침 7시에 나가 밤 10시까지

15시간을 밖에서 너덜너덜.

공부를 했는지 자다 왔는지 알 수 없지만

15시간은 뭘 했든 길고 힘든 시간


엄마는 언제나 언니 책상에 홈런볼을 사다 놓았다.

딱 한 봉지.

씻고 자기에도 바쁜 늦은 시간이지만

배가 고파 잠도 잘 안 올 시간.

센스쟁이 엄마는

부대끼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달콤함으로

피로를 씻고 자라고 살포시

홈런볼 한 봉지.


말갛게 세수하고

대략 15-20개의 홈런볼을 천천히 음미하며

작은 입을 오물거리던 언니,

그걸 보고 나도 얼른 고3이 되었음 했던 나,

늦은 시간 다음날 도시락 반찬을 묵묵히 만드시던 엄마.


한 시간의 피로는 홈런볼 한 알로 충분했던 시절,

그립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에이스와 믹스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