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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도시

잔인한 도시의 시

by 황신혜신

시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하루 시인에겐 모두가 시가 된다.


시인이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창밖 사람들은

더 이상 익명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사연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하루시인은 스스로 묻고 대답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은행나무 몸통 중간 작은 잎에 말을 거는 것?

'너는 왜 그곳에 불현듯 싹을 틔웠어?'


시가 여기저기 쏟아져 내리는 밤길

하루 시인은 잰걸음으로 시를 쓴다.

톡톡톡 키보드를 치듯 리드미컬한 걸음이

A4 한 장을 금세 가득 채운다.


신난 하루 시인은

아스팔트 위에서 시로 뒹굴며

거리의 모든 존재에 말을 건다.

그들은 점잖게 존재로 답을 한다.


아! 시의 도시에 살고 있었네.

하루 시인의 감격이 가득한

늦은 밤 공원은 아름답다.


시로 걷던 시인은

불현듯 내일의 걱정에 압도된다.

일상의 걱정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거침없이 시를 몰아낸다.

......


초여름 출몰한 멧돼지에 받쳐 사망하듯

하루 시인의 시심은 즉각 종료된다.

그녀의 발걸음은 두터워진다.


공원의 너구리들은 심드렁하게 말한다.

시인이 또 죽었대.


잔혹한 도시의 시,

시의 도시의 결말.

삑! 호루라기 외마디 소리에

그대로 고꾸라진 하루 시인,

내일은 부활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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