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 토너먼트
모로코 vs 스페인 0-0 (pk 3-0)
포르투갈 vs 스위스 6-1
모로코가 이변을 일으켰다.
이번 대회 조별예선에선 이변이 여러 차례 나와 재미있었는데, 16강에선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그런데, 내가 지난 글에서 예상했던 대로 모로코가 끝내 해냈다.
같은 이변의 주인공 일본은 승부차기 끝에 크로아티아에게 패했는데, 모로코는 승부차기로 스페인을 넘어섰다.
두 팀의 차이는, 내 개인적인 느낌엔 단단함이었다.
똘똘 뭉친 조직력은 공통점인데,
일본은 조별 예선에서 독일과 스페인 강팀을 상대로는 이변을 일으키며 잘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약체라고 평가받은 코스타리카에게 1-0으로 질 때를 보면, 조직력이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이 있다.
보통 잘 안 풀릴 때인데, 한골 얻어맞으면 경각심이 살아나서 죽어라 달려드는데, 팽팽한 경기에서 긴장감이 이어질 때 불쑥불쑥 가벼움이 드러날 때가 있다.
크로아티아와 승부차기를 할 때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꾸 실축하며 무너질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 우리가 2002 월드컵에서 스페인전 승부차기 때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모습과는 비슷했지만, 첫 번째 킥커 황선홍 형님과 마지막 킥커 홍명보 형님의 안정된 눈빛은 찾기 어려웠다.
반면, 모로코는 그 조직력이 끝까지 간다. 체력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둘 다 그랬다. 실력이 부족해서 그리고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떨어져 실수는 할지언정,
확 풀어지거나 내려놓거나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승부차기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그런 모습은 결과로 나타나는데, 조별 리그 F조에서 이들은 단 한골만 허용했다. 더욱이, 전 대회 준우승팀 크로아티아, 4강 팀 벨기에를 상대로는 무실점.
vs 크로아티아 (0-0)
vs 벨기에 (2-0)
크로아티아의 모드리치와 일본전 골을 넣은 페리시치 그리고 벨기에의 루카쿠, 데 브라이너, 아자르를 떠올려 보라. 이들을 무실점으로 막아내 좌절시키다니. 이번엔 스페인까지.
8강전 상대인 포르투갈의 공격력은 훌륭하다. 조별리그에서 우리에게 일격을 당하긴 했지만, 우루과이와 가나를 꺾을 때를 보면 대단했다. 16강전에서 스위스를 6-1로 누른 모습을 보며 우리가 어떻게 이런 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이겼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공격력이 앞서 말한 스페인, 벨기에, 크로아티아보다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스페인도 조별리그에서 세계 최상위 골키퍼 나바스의 코스타리카를 7-0으로 눌렀다. 개인적으로 포르투갈도 8강전에서 스페인과 같이 될 것 같다는 예상을 해본다.
이번에 모로코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으로 인한 경기 후유증으로 피로와 부상만 없다면.
(우리가 2002 월드컵에서 8강전에서 스페인을 승부차기 끝에 이기고 4강전에서 독일에게 진 것처럼)
모로코의 단단함을 깰 팀은 4강전에서 만나게 될 지치지 않는 무서운 공격수 음바페의 프랑스라고 생각한다.
스페인은 2002년 우리에게 승부차기 끝에 졌던 악몽이 되살아난 듯, 이번에도 모로코에게 승부차기에 져서 짐을 쌌다.
스페인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승부차기에 참 약하다. 보통 지고 이긴 경기를 찾는 게 어려울 지경.
조별 예선 E조에서 일본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는데, 한 대회에서 두 번씩이나 이변의 희생양이 되어 안타까웠다. 거칠 것 없던 무적함대가 얕보던 영국 해군에 깨진 모습을 본 스페인 왕과 국민들의 마음이 이랬을까 싶다.
스페인 응원단의 표정이 그랬다. 믿을 수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약팀이 강팀에게 졌을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약팀은 질 가능성이 높고, 이길 이변의 가능성은 낮으니까.
세계 최고 수준의 프리메라리가를 갖고 있고, 2008 유로 우승, 2010 월드컵 우승에 빛나는 무적함대였으니 피파랭킹 22위 모로코에 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이변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에이 설마 했겠지.
두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자만과 흔들림이 첫 번째인데,
코스타리카에 대승했을 때, ‘거봐, 조별 리그는 무난하게 통과하고 우승까지 우리는 간다’ 하는 거만한 웃음이 보였다. 분명 프랑스나 아르헨티나보다 한수 아래인데 말이다.
그런 자만감이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에게 지면서 멘탈이 요즘 말대로 바사삭 깨진 것 같다. 스페인 친구들도 열정이 있는 친구들인데 (확실히 보통 침착하고 냉정한 독일 친구들과 다르다) 잘 될 때는 기분 좋게 난리인데, 안 될 때는 좌절도 깊게 하고 흔들린다.
2002 월드컵 우리와 승부차기에서 흔들리는 호아퀸이 실축한 모습을 떠올려보면 된다. 그 불안한 눈빛이 보였다.
두 번째로 공격진이다.
의외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스페인은 특급 공격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애매하니 훌륭한 미드필더 자원을 중심으로 제로톱 전술을 쓰는 경우도 있다.
(원톱이나 투톱 전방 공격수 없이,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 5명이 티키타카하다 기회를 잡고 잘 되는 사람이 튀어나가 골을 넣는 전술)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의 중심 공격수가 외국인인 것을 보면, 이해가 빠르다.
레알의 벤제마나 바르셀로나의 메시, 네이마르를 생각해보면 된다. 레알이 지구방위대 시절에도 중심 공격수는 호나우두였다. 라울이 아니라.
모라타나 토레스를 보면 라울이 떠오른다. 잘 하긴 하는데, 이거 참. 뭔가 애매해. 음바페 같은 맛이 없어.
마지막으로, 구 소련의 야신이 살아 돌아온 듯 활약을 펼친 모로코의 골키퍼 야신 보노 (Yassine Bounou)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스페인 세비야에서 뛰고 있는 이 골키퍼는 신들린듯한 선방에 이어, 승부차기에서 자신이 뛰고 있는 라 리가에서 경험이 있는지 스페인의 승부차기를 모조리 막아버렸다.
첫 번째 킥커가 골대를 맞히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스페인은 한골도 넣지 못하고 졌다. 심지어 그 대단한 주장 바르셀로나의 부스케츠마저 막히다니.
(Yachine : 구 소련의 전설적인 골키퍼. 월드컵 최고 골키퍼에게 수여하는 골든 글러브를 야신상이라고 부를 정도로 잘했다.)
포르투갈은 2001년생 곤살루 하무스 (Goncalo Ramos)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스위스를 6-1로 제압했다.
(자꾸 라모스라고 부르고 싶다. 하지만 스페인의 강력한 수비수 라모스와 헷갈리기 싫고, 포르투갈어의 R이 ‘ㅎ’ 발음이라 하무스라 부른다. Ronaldo 호날두.)
포르투갈 명문 구단 벤피카 소속의 이 친구를 보면서 포르투갈의 세대교체를 보는 듯했다. 우리 대한민국에게는 이제 어시스트 왕인 호날두. 선발 출전도 못하고 교체 출전해서 무득점. 그나마 넣은 줄 알았던 골은 오프사이드로 노골.
(83년생 수비수 페페도 골을 넣었는데 말이야.
지금은 친정 FC 포르투에 돌아와서 뛰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오래 뛰었다. 포르투갈의 2016 유로 우승 멤버)
이제 본 게임 8강이 곧 시작합니다.
며칠 후가 기대되네요. 매일매일 달려온 제 축구 경기 리뷰도 같이 쉬었다 재개됩니다^^
재미로 쓰는 제 리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대진표에 남아있는 우리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네요
(사진 출처 : 박메쉬님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