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 Jan 08. 2023

난생 처음 당해 본 pick

나에게도 이런 일이

평범한 회사원.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 제 직업을 가장 여실히 느낍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쓰는 서류에 직업을 써야 해서, 이래저래 생각해보다가 그냥 ‘회사원’이라고 적습니다.


마치 어렸을 적, 학교 선생님이,


“느그 아부지 머 하시노?”


하고 묻거나,

집에 TV가 있는지, 집은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를 그것도 애들 다 있는 데서 물었을 때,


이런 걸 왜 묻지? 꼭 대답해야 하나? 하다가,

남들 다 대답하니까, 안 하면 안 될 것 같으니까 대답할 때의 기분이 듭니다.


요즘은 학교에서 이런 것이 없어진 것 같더군요. 비행기 탈 때 서류에도 직업을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까요? 꼭 써야 하고 쓰고 싶은 사람만 써도 좋을 것 같습니다.


뉴스를 볼 때에도 2000만 근로소득자라는 말에 나도 그중 한 명이구나 하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구나, 직장과 소득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는 한편, 그냥 그 중 한 명. 특별한 것은 없구나. 내가 회사원 되려고 태어나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나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밖이 얼마나 추운지 모르지.’

라고 말씀하신 한 부장님이 생각납니다.


그 분은 회사를 나가서 다른 일을 하시다 재입사하셨죠. 그러고 보면 지금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구요. 그렇게 월급이라는 금융치료를 받으며, 오늘도 구내식당 식판에 밥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아침에 출근할 때였습니다.


이제는 짬밥을 먹어 아침에 출근하며, 해야 할 일과 하루 scheduling을 합니다. 하지만, 신입 때는 그런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일 배우고 공부하던 시기라 지금과는 조금 달랐던 것도 같습니다.


전날 동기들과 술 마셔서 피곤한 상태로,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분명 매일 봤던 광경이었을 것인데, 아 이랬었나 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술 마시면 희한하게 이럴 때가 있습니다.)


까마귀 떼.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람들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중 한 명이었고요.


최근에 ‘동물의 왕국’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 초원에서 초식동물들이 떼를 지어 먹이를 찾으러 다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찌 보면 언젠가 한 번은 TV를 통해, 혹은 여행 가서 직접 볼 수 있는 장면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식을 하고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알람을 끄고,


‘아, 오늘 제낄까?’

라는 고민을 누워서,

개인적으로는 수백 번 했습니다.


아니다. 일단 얼굴 도장을 찍고 쉬던지 하자 하고 결국 일어나 출근하던 길이었습니다. 늦게 나오니 출근시간 막바지에 걸렸고, 하필 그때 양 방향 지하철이 동시에 도착해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긴 줄.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에는 한두 명의 사람만 보였습니다.


‘아, 나도 저 내려오는 사람들처럼 그냥 집에 가고 싶다.’

하며 편하지 않은 속을 부여잡고 있던 순간,


에스컬레이터 긴 줄을 참지 못하고, 계단으로 올라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갑자기 그 TV에서 보던 초식동물 떼가 연상되었습니다.


‘사람 진짜 많아.’ 라고 말할 때,

결국 그 많은 사람 중 저도 하나였습니다.




반복적인 일상과 코로나의 긴 터널에서, 운 좋게, 좋은 분들 덕분에 브런치를 만나고 작가가 되었습니다.

꾸준히 글을 올리고,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보고, 소통하며 재미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조회수에 놀라며,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돈 받고 하는 회사 일도 더 잘해야지 하다가도, 10년 넘게 하다 보니 의욕이 떨어지고 번아웃이 오기도 하는데, 돈도 안 받고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걸 보니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걸 신나서 계속하다 보니, 여러 분들 덕분에 구독자 급등 작가도 되어보았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 글이나, 맛집 소개 글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신기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금요일에 올린 글이,

(식판에 밥 타 먹으면 금방 배 꺼지는 이유)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177


조회수가 가파르게 올라가더니, 그 글 하나가 만 view를 훨씬 넘어 버렸습니다.


사실 써두고 올릴까 말까 고민하던 글이었는데, 세상 일은 참 신기합니다. 심혈을 기울인 글은 그 정도 호응을 받지 못하기도 하는데, 스스로 괜찮은 글인가 생각했던 글이 이렇게 호응을 받다니요.



이래서 세상은 재미있고, 남들 피해 주는 것 아니면 뭐라도 한번 시도해보고 꾸준히 해보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평범한 일상에 이런 놀라운 경험을 선사해주신 브런치와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고 나서도, 조회수가 계속 몇천 view 씩 올라가서 혹시나 해서 브런치 홈을 보니, ‘에디터픽 최신 글’에 제 글이 일빠따로 걸려있더군요 ㅎㅎ


황송하게도 이런 일이.

사람들이 자신의 원픽 (one pick - 제일 좋은 한 가지), 투픽 (two pick - 제일 좋은 두 가지)라고 할 때,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살다 보니 제가 pick이 되는 일도 있네요.

너무 평범해서 대학 때 미팅 나가서도 재밌고, 잘 생긴 친구들에 가려져 pick 한번 못 받아보던 제가.

10년 넘게 다니는 회사에서도 못 받아본 pick을 브런치에서 받아 보네요 ㅎㅎ


이래서, 인생은 살만한가 봅니다.


앞으로, 꾸준히 글 잘 쓰고, 읽고 배우렵니다.

그래서 나중에 비행기에서 작성하는 서류 직업란에 소설가 Novelist 라고 당당히 적을 수 있게, 문단에 등단하고 출간 작가가 될 날을 꿈꿔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2년 마지막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