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회사 만들기
어렸을 적 주식을 꽤나 했었다.
한창 돈 버는 데에 미쳐 있었는데, 과외 등 내가 시간을 쓰고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는 버는 돈의 한계가 보였을 때였다.
우연히 만난 학교 선배들이 증권사에 다니고 있어, 같이 모여 정보도 공유하고 같이 투자를 하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분석 기법과 전망은 다른 데서도 많이 다루니 그런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잘못 이야기하면 망신당하고, 자칫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어 추천 같은 건 잘 안 한다. 누가 물어보면 주식 모르고 안 한다고 한다.
그럴 때 본인이 신나서 내가 보기엔 소액으로, 자기 딴엔 주식을 가르쳐준다고 하고, 무용담까지 늘어놓는 친구를 보면 재미있다. 그냥 난 그런 데 관심 별로 없고, 대출받아서 하진 말아라고만 하고 만다. 레버리지 어쩌고 하면, 화장실로 피했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뭐든 직접 보고, 만져 보고, 겪어 봐야 하는 체질이라, 투자 대상으로 찍은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래서 요즘도 국내든 해외든 같이 일할 회사는 한번 찾아가 보는 편이다. 생각과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당시엔 내가 나이가 어리기도 해서, 중고 신입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고, 면접비까지 3-5 만원 정도 주는 곳이 많아서 은근히 재밌기도 했다. 더군다나, 최종까지 가면 고위 임원이나 사장을 만나서 회사에 대해서도 알고 이 얘기 저 얘기할 수 있으니 좋은 기회였다.
(언제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나보겠나. 우리 회사 사장님도 볼 일이 거의 없는데.)
회사 분위기도 보고, 고위직 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엿볼 겸 그렇게 해당 회사로 찾아갔다.
지금도 우리 대한민국 조선업은 훌륭하지만, (어려움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전 세계 1-3 위는 기본으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이 디폴트로 차지하고 있고, 10위 안에도 우리나라 회사들이 상당수 랭크되어 있었다.
그중 후발주자지만, 잘 나가고 있는 회사를 찾아갔다. 물론, 무작정 찾아가면 들여보내주지도 않으니 면접자의 신분으로 당당히 찾아갔다.
여느 대기업처럼 서울 도심에 위치한 높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이 회사의 첫인상은 좋았다. 깨끗한 로비, 상당한 미인 분이 프런트에서 상냥하게 안내를 해주셨다.
(이런 부분을 간과하는 회사는, 우리가 돈 주고 쓸 회사로 업무 미팅으로 갔는데도, 프런트 분이 휴대폰 만지작 거리다가 부르니 겨우 쳐다보는데, 만사 귀찮다는 듯 쳐다보시길래 무척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취준생 (취업준비생) 일 때는 어떻게든 붙으려고 자기가 준비한 내용만 생각하느라 주위를 못 보는데, 어차피 이 회사는 다닐 생각이 없이, 목적은 이 회사 가 어떤지 파악하려 온 것이라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 있게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래서 보험이 중요합니다. 믿는 구석이 있어야 마음도 편해지고 시야도 넓어집니다. 속된 말로 시도해보고 안되면, 이거 하면 되잖아하고 넘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런트까지는 좋았는데, 면접 장소를 중심으로 이동하며 본 분위기는 별로 좋지 못했다. 잘 되는 회사는 밝게 대화하고 소통하고, 뭔가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열정과 의욕이랄까.
그에 반해, 이곳 직원들은 다들 뭔가 고심이 있는지 인상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하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뭔가 눈치 보고 있는 느낌. 보통 저런 표정들이 많이 목격되는 건 회사에 안 좋은 일이 있거나, 그런 일이 있을 것이 뻔히 보일 때, 월급이 안 나오거나 자르지 않을까 하는 노심초사가 있다는 의미다.
물론, 회사라는 곳은 잘되면 사람을 더 뽑아서 일을 더 많이 해서 확장하고 더 많은 돈을 번다. 반대로, 안되면 조직을 정리하고 사람을 잘라서 인건비를 아껴야 하는 기본 속성이 있기 때문에, 한두 명이 꼬이거나 일부 조직이 re-structuring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큰 사업 하나가 완전히 망가져서 회사의 생존에 위협을 준다거나, 줄줄이 사업이 실패해서, 아예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으로 넘어갈 때 직원들은 무척이나 불안해한다.
다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최소 3개월치 월급 안되면 생활비는 확보하라고들 조언한다. (그것도 최소다. 1-2년 정도의 월급은 확보해서 예적금으로 갖고 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현실이 그러한가.
월급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거라고, 카드값, 대출 원리금 (원금과 이자), 자녀 교육비, 각종 세금, 경조사비 등이 빠져나가고 보면 남는 돈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아니, 마이너스 통장이 있고, 이걸 또 결국 한도까지 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다, 연초 성과급 등으로 빚도 갚고, 숨통이 조금 트이길 바란다. 몇천만 원 정도 시원하게 받았으면 하는데, 몇 백만 원 (혹은 격려금 조로 1-200 만원)을 받으면 퇴사를 결심하고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
잘 나간다는 그 회사의 많은 직원들이 그랬다. 분명 괜찮은 재무제표와 언론에 얼굴 비추기 좋아하는 자수성가형 사장의 환한 표정과는 많이 달랐다.
언론 플레이가 정치인과 연예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화장실에 가서도 볼 일을 보고 손을 씻으려 하는데 물이 졸졸졸, 이게 깨끗하게 씻으라는 건지 뭔지 물 아끼다가 깨끗이 못 씻어서 (요즘 말로) 코로나 걸리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변기 앞에서 인상 쓰고 있는 그 회사 직원들도 그렇게 시원해 보이진 않았다.
옛말에 아침에 약하고, 오줌발 약한 사람하고는 같이 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정력과 체력 그리고 기세를 이야기하는 건데, 이런 말을 조금 믿는 편이라 더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사장과 고위 임원 네 명이 앉아있는 최종 면접장에 들어갔다.
HR을 담당하는 경영지원 본부장, 사업본부장 등등이겠군. 이 짓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이제 통밥이 생겨서 얼굴과 하는 행동을 보고 하는 말을 조금만 들어봐도 저 사람이 어떤 직책을 맡고, 어떤 성향인지 어느 정도는 파악이 가능했다.
(사실 이 정도 다니면, 면접 채점표에 어떤 항목이 들어있는지까지 상당 부분 예상이 된다. 그때도 이미 면접 채점표가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짬밥을 먹어서 아예 면접 채점을 하다 보니 더 잘 알지만, 그닥 써먹을 데는 없다 ㅎㅎ)
“A 씨는, 발걸음이 아주 당당하네.”
“네, 인생 뭐 있습니까? 하고 싶은 말 확실히 하고, 할 일 똑바로 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허, 그 친구 우리 딸내미하고 맺어주고 싶네.”
‘아이고,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아무 말이나 막 던지지 마세요, 아저씨.
로또 되면 반 주겠다는 말하고 뭐가 다릅니까.‘
뻥카나 헛빵 많이 날리는 인간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가 잘 될 리가 없다.
그래도 목적한 바가 있으니, 이 회사 진짜 좋은 회사고 나 정말 다니고 싶어요 하며,
그렇게 스무스하게 면접이 흘러갔다.
처음엔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해 주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묻고 싶은 내용들을 던질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마침 어떤 사업에,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담당자로써 어떠한 역할 (contribution)을 할 거냐고 묻길래,
내가 알고 있기로는 R&R이 (Role & Responsibility) 이렇게 잡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에 맞춰 선행 사례에서 이렇게 문제 해결에 approach 했으니, 그리 먼저 대응해 보고, 안될 경우를 대비해 어떤 어떤 유관 팀과 Plan B를 어떻게 만들어 대비하겠다고 답을 드렸다.
그리고, 내가 질문했다.
지금 실제로 이 회사에서 수행하고 있는 B 사업이 어떠한 문제로 쉽지 않아 보이는데, 현황이 어떠하고 어떠한 대응 방안을 갖고 approach 하고 있느냐고 여쭤봤다.
한 수 배우고 싶다는 말을 얹어서.
To be continued
(쓰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져 다음 편으로 넘기겠습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