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in 강남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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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두병을 깠다.
귀하신 사또 님을 두 분이나 모시는 영광을 누렸다.
내 혀는 좋겠다.
주인 잘 만나서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한잔 두 잔 들어가며, 촉촉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하소연하는데,
맴이 찢어지며, 하마터면,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나만 믿어요."
가 나올 뻔하다,
(내가 임영웅도 아니고)
아, 이 분 만나면 데이트 비용만 월 200.
그럼 난 평생 잘해야 전세 신세야.
만원 아끼려고 구내식당에서 긴 줄 서서 밥 먹으면서 정신 좀 차려.
라는 마음의 소리가 정신줄을 가까스로 잡았다.
"저 화장실 좀."
화장실에 가서 세수까지 하고, 술을 깨려 노력했다.
다시 한번 휴대폰 속 지난번 영수증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자리에 오니, 그녀가 제법 취해 있었다.
"괜찮으세요?"
"네, 네, 괜찮아요.
저도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네, 그러세요."
마음의 안정을 겨우 찾고, 오늘은 말리지 말자 한 마디만 생각했다.
근데, 오늘따라 그넘의 스, 스테이크를 안 먹어서 그런지,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안주가 왜 이렇게 땡기는지.
몇 개 집어먹다 보니, 왜케 맛있나.
전에 압구정에서 밥 먹으면서 강남 사는 친구에게,
"야, 근데 여긴 뭐 이런 것도 이렇게 맛있냐?"
했더니,
"으이그, 강남에선 다 이 정도는 해. 이 정도도 못하면 장사 안되지. 임대료 감당 못해."
'응, 그래, 너 잘 났다. 니 X 굵다. 좋은데 살아서 좋겠다.'
잠시 후 있을 일은 까맣게 모른 채, 좋다고 먹고 있는 날 바라보니 옛날 일이 떠올랐다.
"오래 기다리셨죠?"
오잉!
화장실에 다녀온다더니, 소변보고 온 게 아니고 어디 샵을 다녀오셨나.
갑자기 더 예뻐져서 온 이 분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나중에 선배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남자는 화장실에 볼 일 보러 가지만,
여자는 그것만 하는 게 아니라는 말로 정리해 주셨다.
그 다음 들어온 2 연타.
"옆에 앉아도 되죠?"
헙!
네? 안 되는 건 아닌데,
그게 그래도 되는가 싶기도 하고.
내 대답을 들으려 물은 게 아니었다.
이미 그녀는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중무장을 하고 무소의 뿔처럼 전진하러 왔을 뿐이다.
나에겐 방호복은 커녕, 복대 하나 없었던 상태였고.
맞은 편 자리에서, 옆 자리로 와서 가까이 앉으니,
좋은 냄새와 함께 황홀해졌다.
전에 한 선배가 여자 분 냄새 맡으러 간다고 시시껄렁한 농담하는 걸 들으며,
저렴하다고 속으로 욕했는데, 지금 내 꼴이라니.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미 늦었다.
그녀와의 입맞춤은 달콤했다.
이번엔 내 혀가 주인에게 오랜만에 키스라는 선물을 했다.
그러고 손을 잡고 별 말없이 테이블 위 조명을 보니 희한하게 마음이 평온해졌다.
긴장감과 각오는 온 데 간데 없어지고, 이 공간에 둘만 있는 것 같았다.
잔잔하게 흐르는 재즈 선율.
내 어깨에 기대어 오는 그녀의 머릿결이 부드러웠다.
'무슨 샴푸 쓰세요?'
엘라스틴 쓰는 거 확인하려고 물어보냐! 넌 소중하니까, 하나 사주려고?
거기서 그런 말이 왜 튀어나와! 으이그.
다행히 그렇게 묻진 않았다.
잘 참았어.
이혼한 선배가 본인 인생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
바로 이 여자인가, 이건 데스티니. 라고 생각하는 찰나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술도 다 마셔서 나가려는데,
아, 나는 왜 계산대로 뛰어가고 있는 걸까.
이 여자가 나보고 계산하라고 떠민 것도 아닌데.
누가 내 급한 걸음 좀 잡아줘.
남자가 여자에 빠셔서 데이트 비용이 없어서, 타고 다니던 차를 팔아서 돈을 마련했던 걸 들으며 한심해보였던 적이 있었다.
오늘 보니 그게 나였다.
그렇게 마주한 계산서에는 30 몇만 원이 찍혀있었다.
와인 두병 마신 건 알겠는데, 안주를 왜 이렇게 많이 먹었나?
니가 먹었어.
알아.
급인정하니, 주섬주섬 좋다고 먹던 안주들이 생각났다. 먹을 땐 좋았지.
한판에 5만원인 안주를 아주 그냥 부페마냥 쌉쌉하셨지.
취해서 그랬는지, 한번 그만큼 써봐서 두 번째라 그런지 충격은 조금 덜했다.
계산을 하고 나가서 손을 잡고 걸었다.
'어떻게 하지?'
술 취하고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지,
막 갑자기 모텔과 호텔만 보이고,
이거 키스하면 사귄 건가. 사귄 날 바로 가도 되나.
"오빠 우리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이런 말만 생각났다.
심장은 두근거리고, 말은 안 나오고.
부장님이 소개해주신 건데 그러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여기 어때' 앱도 나왔는데, 입에서 그런 말은 안 떨어지고.
그러다,
하얀색 고급 벤츠 차 앞에 섰다.
"저 들어갈게요. 오늘 즐거웠어요."
"네, 잘 들어가세요."
대리 운전기사님이 오실 때까지,
정작 중요한 말은 하지도 못하고, 쪼다같이 쭈뼛거리고만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하시며 밤늦게 고생하시고 뛰어오시는 기사님이 미웠다.
오지 말지.
오래 기다리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빨리 오시나.
어디서 우리 지켜보다 오는 줄 알았네.
그렇게 젠틀맨쉽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다른 대리기사님과 함께,
나의 아방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마주한 한강.
아 오늘도 밥값 10만 원에, 술값 30 몇만 원, 대리비까지 50만 원 찍었구나.
합쳐서 100만 원.
내 3개월치 생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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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안블리 - 광고 아닙니다 ;; 인터넷에서 원피스 사진 찾다가 그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