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in 강남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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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연락을 하지 못했다.
뭔가 한바탕을 꿈을 꾼 것 같고.
사귀자고 하고 싶은데,
매달 200 씩 쓰면서 만날 자신은 없고.
키스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했나.
이게 사랑인가.
이번엔 내가 부장님께 물어보려다 겨우 참았다.
며칠 후 밤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요?”
‘자면 전화를 이렇게 받겠습니까?‘
영업하시고 있는 식당에 전화를 걸어 전화 받으신 분에게, 영업하냐고 물어보는 바보가 생각났다. 바로 나. 영업을 하니까 전화를 받겠지.
“아니요, 잘 지내셨죠?”
“아니오.”
‘헛, 뭐지?’
“무슨 일 있으세요?”
“왜 사귀자는 말 안 해요?”
올 것이 왔다.
“아, 그게...“
이걸 솔직히 다 말해야 하나.
부담스러운데, 좋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내 맘을 잘 모르겠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잘 돌려서 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대사를 정리할 틈을 주지 않고,
어퍼컷을 날렸다.
“실망이에요.”
“아니, 그게...
미안해요.“
아 이 답답아.
“뭐가 미안한데요?”
아, 시작인가.
그 전설의 공격.
1. 미안한 걸 알면서 그래?
2. 뭐가 미안한지도 모른단 말이야.
무슨 말을 해도 무조건 욕 먹는, 개미 지옥 같은 질문. 주식 시장에서도 개미신세인데 여기서도 이러고 있나.
노 코멘트하겠습니다.
묵비권을 행사해 봤자,
“왜 말이 없어요.”
한방에 무너지는.
미적거리자, 그녀가 답답했는지
갑자기 쏟아붓기 시작했다.
“저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다들 사귀자고 연락 계속하고, 난리인데 A 씨는 뭐예요? 그렇게 잘났어요? 왜 제가 매번 먼저 전화하게 만들어요?“
처음엔 죄인처럼 듣고 있었는데,
가만히 듣다 보니, 뭔가 말이 이상했다.
자기가 예쁘고 이래저래 조건도 좋아서 다들 쫓아다니는데, 니까짓 게 뭔데 회사원 주제에 날 안 쫓아다니냐는 말처럼 들렸다.
허허, 이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남자들이 다 쫓아다녀야 하는 건 아니잖아.
여자 뒤꽁무니 졸졸 따라다니는 걸 제일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가끔 그러기도 하는 나지만, 이렇게 욕 먹을 건 아니다 싶었다.
“좀 부담스러워요.”
“뭐가요?”
“아니, 너무 예쁘시고, 집도 부자시고. 제가 너무 부족한 거 같아요.”
그게 아니잖아. 멍충아.
100만 원을 이야기하라고, 직접적으로다가 대놓고!
“남자가 그게 뭐예요.
키스할 땐 언제고.
그럼 A 씨는 못 생기고, 못 사는 집 여자만 만나야겠네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이 희한한 논리에, 반박이 잘 안 되었다.
사실 남자가 여자에게 말싸움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이다.
나중에 나이를 먹고 여친에게 훈련을 받고 깨달았지만,
그냥 예하고,
말 잘 듣고, 싫어하는 짓 안 하면 된다.
거기다 가끔 이벤트와 좋아하는 것 추가면 굿.
친구와 2시간 넘게 통화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고 해서 커피 마시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는 여성 분들과,
친구들끼리 통화하면 5분도 못하는 남자가 게임이 되겠나.
“네, 그럴게요. 그럼
잘 지내세요.“
안 되겠다 싶어, 그냥 그렇게 저질러 버렸다.
“뭐라구요!“
흑흑흑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울음소리.
한동안 계속되고, 난 끊지를 못했다.
뭐라 말하기도 그렇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대학 때 과외했던 친구가 생각났다.
여고생 친구들 그룹 과외를 하던 때였는데, 한 친구가 유독 예뻤다.
난 선생이고, 넌 제자야
까진 안 갔지만, 과외에 충실하고 딴 생각 안 하려고 일부러 그 친구에게 말도 제일 적게 걸고 안전거리를 유지했다.
사실 나이 차이도 그렇게 많이 안 나기도 해서 더 그랬다.
그렇게 과외를 잘 하다가,
이 친구들이 시험을 잘 봐서 수업 끝나고 떡볶이 사주겠다고 해서 다 같이 분식집에 갔다. 그날따라 그 예쁜 친구가 옆에 앉아 말을 많이 시켰다.
“응, 맛있게 먹어.”
화기애애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그 친구가 말했다.
“근데, 선생님 나이가 22살이예요?“
“응”
“우리 친오빠는 20살인데”
“하하하 그래? 내가 고3 때 고1 애들은 나한테 말도 잘 못 걸었는데.”
그땐 어릴 때라 2살 차이가 컸다.
그런데, 이 친구가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헉.
당황해서, 내가 뭐 잘못했나 싶어서,
다른 친구들을 쳐다보니 자기들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적 잘 나와서 떡볶이 잘 먹다, 이게 뭐람.
깜빡하고 순대 안 시켜줘서 그런 건가.
남중 남고를 나오고 공부만 한 내 머리로는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다들 자기에게 잘해주고, 상냥하게 대하며 말 붙이려고 하는데,
난 말도 잘 안 하고 쌀쌀맞게 굴면서, 기껏 친해지려고 오빠 얘기했더니, 자기 오빠까지 싫어하는 것 같아서 서러워서 울었다는 거였다.
그때 곱게 자란 여자의 여린 마음이, 작은 상처에도 깨질 수 있다는 걸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못난 놈.
여자나 울리고.
허준의 선생님 이순재 님이 날 꾸짖는 듯 했다.
“우리 사귈래요?”
계속 울다가 그치고 적막이 찾아와서,
그 적막을 참지 못하고 질렀다.
“네?“
“네, 저도 B 씨 맘에 드는데, 솔직히 와인 바 다니면서 너무 돈도 많이 쓰고 해서 부담스러웠어요.
전 그냥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평범한 회사원이라 치맥이나 삼겹살 편하게 먹는 거 좋아하거든요.“
“저도 치맥 하고, 삼겹살 좋아해요.”
앙?
이래서 사람은 대화를 해봐야 한다고 했나.
너무 조건과 겉모습에,
그리고 와인바, 100만 원에 매몰되어,
내가 너무 섣부른 오해만 했던 건 아니었나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좌충우돌 love story in 강남은, 그녀가 결국 학교를 때려치우고 유학을 가며 끝났다.
꽤 긴 기간 만나서 어머님을 뵈었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반떼 몰고 다닌다고 하니, 우리 딸을 그런 차에 태우고 다니냐며 그랜져로 차를 사주시겠다고 했다.
당연히 사양했다. 데릴사위 될 일 있나.
(벤츠였으면 좀더 고민했을려나 ㅎ)
그 친구가 유학길에 가기 전 그 친구 아버님이 사우나에 가자고 해서 갔다. 신나게 등 밀어드리고 있는데,
나도 회사 그만두고 결혼해서 같이 유학 가라고 말씀을 주셨다. 유학 비용 다 대주겠다고 하시며.
물론 그것도 거절했다.
아무래도 남의 돈 받고 눈치 보며 사는 건 싫었기에.
가끔 회사 식판에 눈칫밥 타 먹을 때 후회는 되지만 ㅋ
맞지 않는 연인 간의 맞추려는 노력도 재미있었지만, 100만 원의 기억은 아직도 이렇게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 거액의 소개팅 얘기를 친구들에게 하면,
“잘난 척하더니 꼴 좋다.”
는 놀림도 많이 받았다.
그 뒤로 잘난 척, 아는 척, 있는 척은 하지 않는다.
이래서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운다고 하나 보다.
비록 수업료는 비쌌지만.
한 줄 요약
강남에서 소개팅 함부로 하는 것 아니다.
끝.
(처음 시작할 때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습니다.
추억 돋다 보니 할 말이 많았나 봐요. 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아니라,
읽어주시는 분들의 요청으로,
아래 6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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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네이버 정순봉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