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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Mar 28. 2023

고백

내 사랑 강남 싸가지 번외 편 (A-3)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08


나와 친한 여직원 H에게 들이댄다는 Z


연적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더군다나 여자가 싫다는데 계속 연락하면 이건 범죄일 수 있기 때문에 한 마디 해야 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근데, 가서 뭐라고 하지?


당신이 뭔데.


이렇게 나오면,

내가 무슨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공권력도 아니고, 남친도 아닌데 더군다나,


‘사귈 사이예요’

하면 심각한 상황에서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사귀는 사이라면,

“내 여친한테 왜 밤에 전화해, 이 XX야"

할 수 있지만,


"왜 내가 사귈 여자한테 밤에 전화해?"

라고 말하려 온다면,

내가 봐도 좀 이상한 놈으로 보일 것 같았다.


알았으니까, 일단 사귀고 나서 이야기해라.

이러면서 돌려 보내겠지.


그렇게 되돌아 오기는 싫었다.


결국,

상대방이 싫어하는 짓 하면 안 된다. 그건 스토킹이고 범죄다. 특히, 회사에서 그러면 징계감이다

정도로 이야기 해야 겠다고 생각을 정리하고 Z를 찾아갔다.




“저기 Z 씨 잠깐 얘기 좀 할까요?”


“무슨 일이시죠?”


‘여자가 싫다고 몇 번 말하는데, 왜 밤마다 전화질 해서 사람을 괴롭혀, 이 미친놈아.

너 싫다잖아. 이상한 짓 그만 안 할래!“


못 생긴 얼굴로, 뻔뻔한 태도로 날 마주하니 갑자기 그런 말이 튀어 나올 뻔 했다.


하지만 신성한 일터에서 교양 있는 성인이 그러면 안 되지.


“H 씨 일로 얘기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우리 다리가 예쁜 H 이야기를 꺼내자 뭔가 흠칫하고 따라 나온다.


"H 좋아해요?"


"왜 그런 걸 물으세요?"


"아니, 밤마다 전화를 한다는 얘길 들었어요."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일부 남자는 여자가 자기에게 빠졌다고 친구들에게 허풍을 늘어놓는 경우가 있다.

그 허풍을 깨버리는 방법은, 그 여자와 3자 대면해서 대놓고, 여자가


”니가 죽자 살자 매달리고 있는 거잖아.“


라는 이야기를 같이 듣는 거다.

그러면 보통 미안해라고 하던가, 미쳐서 횡설수설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던가 한다.

두 가지 다 패배 인정이다.


"예?"


"여자가 싫어하는데 밤마다 그렇게 전화하면 그거 스토킹이에요.

회사 인사팀에서 알면 징계 받을걸요."


"아니, 그게.

진심으로 좋아서 그런 거예요."


가만히 들어 보니 남자의 순정이 느껴졌다. 같은 남자로서 안타까웠다.

순간이지만 이 정도로 좋아하면 밀어줘야 하나.

코치를 해주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예전부터 자기 앞가림은 잘 못하면서, 친구들 연애 도와주던 버릇이 나왔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봄날에 혼자 연애소설 쓰고 앉아 있나. 갑자기 현타 오네요. ㅎ)


연적끼리의 싸움일 것 같은 험상 궂은 분위기에서,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녀석을 보니 대학 때 한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났다.


남자가 다수인 모임에 예쁜 여자애들이 들어왔다.

함께 들어 온 3명이 친구라는데 다 예뻤다. 모임의 남자 녀석들은 그 중 "현주"가 제일 예쁘다고 난리였다.


내가 보기엔 다른 친구가 제일 예쁜 것 같았다.

그런데, 다 예쁘지만 다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남자 녀석 중 "민우"가 "현주"가 진짜 좋다며, 자기를 밀어달라고 나대기 시작했다.

경쟁에서 선점 작전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어차피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 밀어주겠다고 했다.


고맙다고 사귀면 밥 사겠다고 한다.

ok.


같이 MT를 갔는데 다들 민우를 밀어줬다.

일부러 둘이 같이 앉게도 해주고, 게임을 하면 둘이 같은 편이 되어 손도 잡고 커플 게임도 하게 해 주고.

난 잘 되어간다 하며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그러고 있는데, 현주가 술 취했다며 앉아 있는 내 다리에 누웠다.


헛, 이건 뭐지.


하필 왜 내 다리에.

민우에게 눈치가 보였다.

근데, 내가 눕힌 것도 아니고, 현주가 와서 누운 건데 그냥 난처했다.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다들 와서 현주에게,

취한 것 같다고 나에게서 떨어뜨려서 한쪽에 따로 누워서 쉴 수 있게 데리고 갔다.


그렇게 마음 편하게 다시 원샷 전쟁을 하고 있는데,

얘가 다시 내 다리에 누웠다.


바보가 아닌 이상, 얘가 나한테 뭔가 있구나 라는 걸 느꼈다.


"취했으면 잠깐 나가서 바람 좀 쐴래?"

하고 말하니,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난다. ㅎㅎㅎ

이럴 때 보면 여자애들 중에 연기파 배우가 꽤 있다 ㅋ


나가서 산책을 하며 대화를 해보니,

자기는 민우는 별로고, 나에게 호감이 조금 있다는 말을 했다.


미안하지만, 사실대로 이야기해야 했다.

호감이 있는 건 고마운데, 난 너에게 호감이 없고 그냥 친구로만 보인다.

더군다나, 친한 친구가 좋아하는 여자하고 썸 타고 사귀는 건 좀 그렇다고 말해줬다.


그렇게 얘기해 줬으면 알아들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왜 자기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동시에 자기 매력을 어필하려는 게 보였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답 없는 설득의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예쁘고 좋다는 남자가 많은 애가 왜 평범한 내가 좋다고 이러고 있을까?

속으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우습게도 쫓으려 하면 멀어지고, 가만히 있으면 쫓아오는 역설의 순간이 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쫓으라는 말이 늘 맞는 건 아니다.


어떨 땐 아등바등 몸 달아서 쫓아 다니지 말고, 안되면 말지 뭐 라는 마음으로 가만히 있어야 할 때도 있다.


중간에 끊기 그래서 계속 들어주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 몰랐다. 단둘이 그렇게 따로 오래 있었으니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을 거다.


숙소로 돌아오니 민우가 원망 섞인 눈과 체념의 표정으로 날 맞이했다. 내 잘못도 아니었는데 무척 불편했다.


밥을 얻어 먹기는 커녕, 내가 술을 샀다.


그때부터 남의 연애사에는 되도록 끼지 않으려 한다.




근데, 또 지금 이러고 있다.


에고, 정신 차려야지.


사실 Z에게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미안한데 넌 걔 스타일 아니야.


걔가 좋아하는 남자는 너처럼 과도하게 키가 크지도 않고, 무대뽀 스타일도 아니야.

쉽게 이해되게 연예인으로 비교해 줄게 넌 최홍만인데,

걔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박서준이라고, 친구야.

최홍만 스타일 좋아하는 사람 있을 수 있어. 근데 걔는 싫다잖아. 우리 취향은 좀 존중해 주자, 응?


여자가 남자 얼굴 안 본다는 거? 경제력이 1순위라는 거?

그거 다 거짓말이거나,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그러는 거야.


경제력하고 성격 중요하지.


근데, 여건 되면 다 얼굴 보고 외모 봐.

남자가 너무 여자 예쁜 걸 봐서 그렇지,

남자고 여자고 똑같은 사람인데 잘 생기고 예쁜 사람 좋아하지, 못 생긴 사람 좋아하겠냐.


왜 남자 아이돌이니, 남자 배우 따라다니는 팬클럽이 있겠으며, 호빠가 있겠니.


얼굴이 다는 아닌데,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잖아, 친구야.

정신 좀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자. 쫌!


하지만, 그렇게 냉정하게 얘기하기엔 이 친구가 너무 낙담해 있는 것 같았다.


뭐라 얘기해야 하나 이런 분위기로 대화가 길어지는 게 싫어서 대뜸 이렇게 얘기해 버렸다.


"H가 저 좋아해요. 같이 우리 집에서 잠도 잤어요."


순간 침울해 있던 Z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예? 그런 말 없던데? 그럼 사귀는 거예요?"


"내가 얘기하면 믿겠어요? H에게 직접 물어보고 내가 한 말이 사실이면 이제 그만해요."


그렇게 냉정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Z는 H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고, 크게 낙담한 것 같았다.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H를 차지하기 위함이라기 보다, Z의 잘못된 행동을 좌절시키기엔 그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집에서 잤다.

사실 아무 일 없었는데, 그 말이 Z에게 주는 충격은 무척 컸을 거다.


"오빠, 인제 Z가 전화 안 하더라. ㅎㅎㅎ"


"좋냐?"


"좋지."


"으이그"


"근데, 오빠 쫌 질투 나지 않았어?"


"뭔 질투?"


"아니, 오빠 나 좋아하는데, 다른 남자가 또 나 좋다고 하니까 신경 쓰인 거 잖아,

그래서, 그렇게 달려가서 집에 같이 갔네 어쩌네 그런 말까지 한 거 아니야?"


"아닌데."


“그럼 뭐야?”


거기서 말문이 막혔다.

진짜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로 한동안 말없이 그렇게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왈칵 키스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키스를 부르는 입술이 저런 걸까.

작고 도톰한 그녀의 입술이 그토록 매력적으로 보일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린 길거리에서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


밤길 가로등 밑이라 더 그랬을까?


한 번의 키스론 부족했는지, 두 번째 키스를 했다.

첫 번째가 급작스러워 어색했다면, 이번엔 서로를 받아들이고 느끼며 자연스러웠다.


키스하며 느꼈다.


맞아. 난 널 사랑하고 있었나 봐.


가만히 안고 있다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손을 꼬옥 잡고.


“오빠 손 따뜻하다.“


“그래, 앞으로 우리 이 손 놓지 말자.”


“웅”



번외 편 A는 여기서 마칩니다.

번외 편도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본편 쓰다가 생각이 나면 이렇게 별도로 번외 편을 또 남기겠습니다. 제 글 읽어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



아래가 본 편 첫 화부터 보실 수 있는,

‘내 사랑 강남 싸가지’ 매거진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loveingangnam



(사진 : 네이버 융융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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