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tory in 강남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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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그래도 월급의 반은 저축하던 나였는데,
그녀를 만나다 보니,
진짜 참새가 황새 따라다니다 가랑이가 찢어져 갔다.
어떨 땐 월급을 거의 다 쓰고,
카드값은 이전보다 몇 배가 되었다.
하아, 어떡하지.
프랜차이즈 식당도 싫다고 저 난리인데,
맞춰주려면 돈을 더 벌어야 했다.
일 열심히 더 한다고 야근 수당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재를 받아야 해서 눈치도 보이고.
결국 그렇게 처음 해본 일은 대리운전 기사 일이었다.
'정말 내가 별 짓 다 한다.'
일주일 해보고 때려치웠다.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체력적으로도 힘든데,
술 진상 아저씨들 맞춰주고 대응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술 취해서 택시 타면 나도 저랬나 싶었다.
역지사지라고 그 다음부턴 절대 술 진상이 될 수 있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내가 술 마시고 맛이 가서 놀 때는 그렇게 재미있기도 했는데, 막상 술 마신 진상을 상대해 보니 정말 힘들었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놈
돈 못 내겠다고 버티는 놈.
깎아달라는 놈.
돈을 막 던지는 놈.
같이 한잔 마시자는 놈.
일주일 사이에 세상 이상한 놈들은 다 만난 듯 했다.
어린 시절 비슷한 경험을 했다.
대학 시절, 호프집 알바도 해보고, 전단지 알바도 해 보았는데, 대부분 돈이 되지 않았다. 몇 만 원, 잘해야 몇 십만 원.
그것도 좋다고 썼던 기억이 있지만, 금방 누구 말대로 탕진하기 일쑤였다.
그때 한 친구가 강남 나이트 클럽에서 금요일, 토요일만 알바를 같이 하자고 꼬드겼다.
시급도 더 세다고.
호프집, 술집 알바하고 뭐가 다르겠나. 하는 일은 비슷하고 돈을 더 주면 가는 거지 뭐.
하고 가봤다.
아이고, 여긴 뭐 당시 내 개인적인 느낌으론 완전히 개판이었다.
내가 클럽에 놀러 갈 때와 웨이터가 되어 부킹도 시켜주고 뒷치닥거리 해주는 건,
같은 장소였지만 입장에 따라 이렇게 달랐다.
그래도, 마약이나 도박처럼 죄를 지어서 깜빵 가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거라면,
몸 건강, 정신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 수준까지는 한번 해보자는 마인드가 있어 한 달을 채우기로 했다.
역시나 한 달도 겨우 버티고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 비슷하게 받는 것도 결국 내가 초짜라 얼마 안 되고, 팁으로 많이 벌어라고 하는데 내 성격상 취객에게 형님 하면서 입 안의 혀처럼 굴지도 못하고 호프집 알바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였다.
정산이라고 얼마 받고 그만두려는데 웨이터 부장 형이 나와 내 친구에게,
"너희들 누나들하고 술 마시고 노는 알바 해볼래?"
라고 말했다.
‘누나들하고 놀기 싫은데요.’
하려다,
돈도 더 벌 수 있다고 하길래 일단 해보겠다고 했다.
그땐 그게 호빠였는지 몰랐다.
보통 지저분한 일은 이미 지저분한 것이 알려져 있어 사람들이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제안할 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돌려서 뭔가 좋게 말하고 포장을 한다.
그것에 속지 말고,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때려치우는 게 좋다. 나중에 발을 깊이 담그면 담글수록 좋지 않은 일을 만나게 되고, 자칫 수렁에 빠져 후회해도 소용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너희들 호빠 한번 해볼래?”
했으면 안 했을거다.
“괜찮다”, “편하게 생각해”
를 안 괜찮게, 불편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인생에선 있다.
일주일 하고 때려 치웠지만, 그때의 추억도 100만 원짜리 소개팅만큼 강렬했다.
첫날에 주루룩 서서 초이스를 받고 같이 앉아서 술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나쁘지 않았다.
나이트보다 팁도 더 주고,
"넌 다른 애들보다 머리에 든 게 많네."
라는 칭찬 아닌 칭찬도 들었다.
며칠 동안은 먹고 싶은 술 원 없이 마시고,
이렇게 예쁜 애도 이런 곳에 지 돈 내고 오나 싶은 경우도 만나보고, 세상 구경 재미있게 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은, 여자 진상을 만나면서였다.
차라리 술집 여자 아이들은 조금 싸가지없어 보여도 대화를 하다 보면 사는 어려움도 컸고,
생긴 것과는 달리 순수했다.
나도 어린 시절 어렵게 자랐기에 힘든 인생에 공감도 해주며 한잔 하고, 끝나고 같이 우동도 먹고 그랬던 것 같다.
그 여자 진상 손님은 화장이 조금 과하지만, 나이 40 넘은 우리 주위에서 꽤나 흔히 볼 수 있는 아줌마였다.
도도하고 말투도 싼마이는 아니었는데, 술이 많이 들어가니 뭘 그렇게 희한한 욕을 하는지.
세상에 대한 분노가 커 보였다. 취해서,
"니가 내 인생을 알아?"
했을 때,
나도 내 인생을 모르는데, 오늘 처음 본 아줌마 인생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하려다 말았다.
취하셨어요. 이제 그만 일어나서 들어가세요.
하니 니까짓 게 뭔데 나한테 가라 마라야.
하며 난리를 친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기 하이힐에 양주를 붓더니 그걸 나에게 마시라고 했다.
돈을 준다고도 했던 것 같다.
그때 수표에 살짝 혹하기도 했지만,
가까이 들이 댄 하이힐에서 여자의 발냄새도 남자 못지 않다는 걸 알았다.
한번 마셔볼까 시도했지만, 가까이 가져 오니 코를 찌르는 그 시큼한 냄새란. 우웩.
결국 마시지 않고, 버티다 그 자리를 끝으로 짧지만 강렬했던 호빠 생활을 청산했다.
얼굴은 화장을 떡칠을 해서 분 냄새가 진한데,
어후 발 냄새는 이건 며칠 안 씻어서 무좀 있지 않고선 이런 냄새가 날 수 없었을 것 같았다.
독한 알콜로 나름 소독이 된 것일텐데 저 정도면.
으윽. 지저분한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하자. 웃기긴 한데 정신 건강에 해롭다.
쫌 씻지.
얼굴은 저렇게 화장하고 가리고 꾸미는데, 정작 기본인 깨끗하게 씻는 걸 안하다니.
더러운 사람은 옆에만 있어도 악취가 난다.
그것은 명품 백으로도, 화장으로도 가릴 수 없다.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다. 깨끗하게 살아야 할 이유다.
발 냄새 아주머니를 기억하며,
(그래서 그 후로 과한 하이힐이나 롱 부츠를 즐겨 신는 여자를 피하게 되었다. 당연히 깨끗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경험과 트라우마가 이렇게 무섭다.)
만일 그걸 마셨으면 어땠을까 돈 몇 푼 더 받고 병 낫을 거야 하며, 역시 더러운 곳은 돈이 조금 된다고 해도 갈 곳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멀쩡하게 생긴 회사 여직원도 이렇게 놀 수 있다는 걸 알고, 또한, 사정상 노래방 도우미같은 것도 밤에 알바를 하기도 한다는 걸 알고 나서는 관계에 더 신중하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경험을 해봐야 세상을, 그리고 세상의 비하인드를 알 수 있다.
뭐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소수가 그럴 수 있다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어렸을 때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았다면 그런 세상과 삶이 있는지도 몰랐을 거다.
그렇게 대리 운전을 실패하고는,
주말에 맥도날드 배달도 해보았다.
대학 때 캠퍼스에서 달달거리는 오토바이를 시속 50 키로도 안 되게 다닐 때와,
배달로 바쁘게 다닐 때의 위험도는 달랐다.
요즘 배민 배달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래서 잘 안다. 병원 응급실에 많은 부분을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조심히 잘 다닐 때는 모르지만, 다치면 진짜 크게 다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맥도날드를 배달시켜 먹는지 처음 알았다. 짜장면이나 치킨 수준까지는 아닌데, 정말 정신없이 배달했다.
꽤나 많은 배달맨과 오토바이가 있었는데,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중간에 식사라고 주는 햄버거를 먹으며,
'와, 이렇게 부려먹으려고,
빨리 먹고 일하라고 햄버거가 나온 거구나.'
햄버거의 역사와 이치를 깨달았다.
그래서 패스트 푸드 (fast food, 빨리 쉽게 만들고 빨리 먹고 치우는)
라고 부르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먹을 땐 맛있지만, 나중에 속은 안 좋고. 쌓이면 병이 되는.
그래서 당장 달고 좋아 보여도, 결과적으로 몸에 좋지 않은 것은 가까이 하지 않게 변했다.
맥 딜리버리도 위험하고 바쁜데 돈이 안 되어서 한 달 정도 하고 때려 치웠다.
노가다도 다시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그것도 대학 때나 할 일이지, 진짜 너무 힘들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힘들고 치질 걸린다고 엄살 피우는 연약한 사무직의 허리가,
나간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대 초반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이 좀 먹고 안정되게 살게 되었다고,
토요일에 일을 하면, 일요일엔 거의 몸져누워 있어야 했다.
일요일에 늦게 그녀를 만나면,
"오빠 요즘 왜 그래? 일 많아? 되게 피곤해 보여."
'너 만나려고 돈 벌다가 나 지금 죽어나고 있다.'
말은 못 하고,
그냥 일이 좀 많네 하고 말았다.
결국 몇 번하고 더이상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술집 알바와 달리, 이 노가다와 물품 분류 및 쉽게 말해 막일은 지금도 어쩌다 한번씩 한다. 몇 만원 용돈 벌이도 있지만, 한번씩 몸을 써서 땀 흘려 일하다 보면 개운하기도 하고 지금 일하는 곳과 내 인생에 감사한 마음도 생긴다. 한마디로 한번씩 그렇게 굴러 보면 정신이 차려진다.
몇 시간동안 몸으로 빡세게 일해서 6-7 만원 벌어서, 한 끼 식사로 10만원 넘게 써보면 그 간극도 느끼고 아까움과 삶에 대한 생각이 그야말로 피부로 와 닿는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특이한 놈이긴 하다.
회사 다니면서 취미로 한번씩 막일을 해보지 않나, 문인으로 등단을 하지 않나 하하하. 왜 요즘 다른 분들이 나에게 신기하다고 하시는지 다른 시각에서 조금 이해가 간다.
마지막 대안은 과외였다.
사실 그 당시에,
회사의 한 부장님이 내 학창 시절 과외 썰을 듣고,
본인 고등학교 자녀 과외를 부탁해서 하고 있기도 했다.
1명을 일주일에 2번만 2시간씩 보면 되니,
별 부담이 안되었고, 용돈 벌이도 돼서 했다.
그 과외를 늘렸다.
회사 다니며 과외까지 하니 피곤했지만,
앞선 알바보다는 편했다.
하지만, 급 회식이 있거나 출장이 있으면 스케줄링을 다시 해야 했고,
예전에 대학 때 과외할 때와는 많이 달랐다.
어느 날 금요일에 퇴근하고 과외를 가는데,
자주 가던 먹자 골목을 지나고 있었다.
남들 다 노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이 친구를 만나야 하나.
전의 여친과는 알콩달콩 삼겹살에 소주나 치맥만 해도 그렇게 편하고 즐거웠는데.
국밥도 먹고, 부대찌게도 먹고, 손 잡고 한강 산책만 해도 편했는데.
그렇게 예전 기억까지 소환되고 비교되며 갑자기 현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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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가 첫 회부터 보실 수 있는,
‘내 사랑 강남 싸가지’ 매거진입니다.
제 글 읽어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
https://brunch.co.kr/magazine/loveingangnam